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2.08.26】37-2 옛 산신신앙 부조가 있는 보현봉 뒷 일선사길로 돌아본 북한산성...

◐ Climbing[2012]/├ ② 서울시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2. 9. 4. 11:04

본문



▣ 북힌신 보현봉 사자능선



 

 




    ◎ 산행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2년 08월 26일 [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2명 ◎ 움직임로 : 구기동 → 전심사 → 사자능선 → 쌍사자바위 → 일선사 → 대성문 → 대성암 → 태고사 → 중성문 → 도리사 → 산성입구 [총 도상거리 11KM 약6시간 소요]

    ○ 보현봉 [普賢峰] 714M 북한산 대남문 밖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해발 714m이다. 비봉·문수봉과 함께 북한산 남쪽의 주봉을 형성한다. 명칭은 마주보고 있는 문수봉의 동남쪽에 있다 하여, 4대보살(미륵·문수·관음·보현)의 위치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대남문에서 보현봉을 거쳐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보현봉 능선은 추락 위험이 높은 암릉구간이 있어 등산 초보자는 들어서지 않는 것이 좋다.

▲ 민화를 연상시키는 인왕산 산신 부조.

    서울 근교에 무수히 많은 마애불과 마애상을 오늘 부터는 관심을 거져 보아야겠다. 인왕산에도 남녘에 3분, 북녘에 3분 등 모두 6분의 마애불이 있다. 석불도 있다. 북한산에도, 관악산에도, 불암산에도, 수락산에도 구석구석 마애불이 숨어 있다. 이런 마애불이 자리 잡은 길에는 전설과 역사도 심심치 않게 남아 있다. 그는 이런 길을 걷지 않고 어떤 길을 걷느냐고 반문했다. 100년 전, 200년 전의 할머니 어머니들의 정성이 깃든 토속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마애상들도 있다. 평창동에서 보현봉 가는 길에서는 마애불 한 분, 마애칠성님 부조, 북한산 산신 부조를 만나게 된다. 민간신앙[산신신앙, 칠성신앙] 자료로서는 더 없이 귀중한 것들이다. 오늘 산행에서 본 산신부조 칠성신앙 부조 같아 보이는것을 보았습니다..

 

 


 

사진으로 본 산행기

 

. 쌍사자바위를 뒤로 하고는 보현봉을 오르고 싶었지만 통제구역이라

그냥 구경만 하고는 우회 하기로 합니다...

우회길에서 자세히 보니 빨강색 점선부분에는 로프가 걸려있는것으로 보았으며

파란 천막으로 막사를 지어 놓은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무속인과 종교단체들의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 산행후 검색을 하여 보니 정상으로 오른 사진들이 있어 자세히 보니

정상부근에는 종교인들 소행 같은 십자가며 무속인들 소행인지 글씨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정리 하여보니 발강색 부분에 로프는 그분들이 걸어 놓은것은 아닌가 싶어집니다..

 


 

. 일선사 방향으로 우회길에 이것은 무었인가 하여 사진을 담아 보았지만

민화 같은 암각화만 있을뿐 별다른 장식은 없는것으로 보아 이곳도 무속인들이 옛부터 만들어 놓은

"산신부조" 같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7명의 산신이 있는것으로 보아 "칠성신앙" 의 "칠성 부조"

인듯해 보인다.. .. 주변을 자세히 살펴본다..

 


 

. 아래로 내려와 보니 이곳도 심상치 않은 자리와 지붕까지 만들었던 흔적이 있어 자세히 살핀다..

암각화는 인왕산에 있는 민화 같은 "산신부조"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있는 보현봉 "산신신앙"의 "산신부조"로 보인다.

그런대 주의에는 흰색 페인트 뿌려진것을 보면 십자가도 있는것으로 보아 무속인들과 종교인 단체의

자리 싸움도 있었던것으로 보여지며 아마도 이런것들 때문에 보현봉 출입을 통제 하는것이 아닌가도 싶어진다.

 


 

. 보현봉으로 오르는길은 통제구역이라 일선사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하고는 대성문으로 향할려한다.

일선사 들어오니 "보현약수"가 있어 목마름 해결하고는 그늘에 앉아 일선사의 산사에서 힘들었던 피로를 풀어 본다..

 


 

. 대웅전 [大雄殿]

 

일선사는 보현[普賢]보살과 문수[文殊]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깨서 교화시[敎化時] 좌우보처 하셨으며

십대원[十大願]을 세우고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할때까지 고해 중생을 제도하는 훌륭한 보살이시다.

일선사는 보현굴[普賢窟][서쪽50M지점]이라 [일명 다라니굴]이라 하였음

옛날에는 보현사 라고 하였으며 일선사[一禪寺]는 보현사라고 해야 맞을것입니다.

 


 

. 약사전을 바라 보며 오늘 일선사 사내를 간단히 둘러 보고는 휴식을 마무리 합니다..

이후 대성문으로 올라 산성계곡을 이용하여 하산 하려 합니다만

누구나 많이 포스팅한 대성문은 패스하며 산성계곡에 있는 태고사의 변화가 있는곳으로 이동 합니다.. 

 


 

. 태고사 있던곳 여전에는 가건물로 요사를 사용하며 대웅전불사를 하던곳에서 윗쪽으로 올라가

겉보양만 보이는 건물이 아직도 공사중이라 들어 가보지는 못하여 입구만 사진을 담아본다.

 


 

. 이곳은 산성계곡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바위 사면에 수많은 비석들을 볼수있는

용학사 부근입니다. 비문을보면 무엇때문에 이곳에 있는것 인지 알수는 없었습니다..

 


 

. 신석현[申錫賢]이란 글씨가 무엇을 의미 하는것일까...??

 


 

. 총융사선정비[摠戎使善政碑]와 승도절목[僧徒節目]

 

중흥사지에서 대서문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용학사 앞 오솔길 주위에 지금도 많은 비석들이 서 있어 ‘비석거리’로 불리고 있다.

이 비석들은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총융사의 재임시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대부분 1800년대의 것이며 애민선정비․영세불망비 등이다.

 

예전에는 셀수 없을 만큼 많은 비석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높이 2m안팎의 비석 21개가 남아 있다.

대부분 기울어지거나 쓰러져 있고 옥개석은 땅에 떨어진 채 흙 속에 묻히거나 길섶의 경계석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은 "摠戎使柳公相亮愛民善政碑[충융사유공상량애민선정비]"

 "摠戎使趙公義復永世不忘碑[충융사조공의부영세불망비]"

 "摠戎使金公基厚愛民淸德善政碑[충융사김공기후애민청덕선정비]" 등이며

신헌․김문근․민겸호 등의 이름도 발견된다.

 

 


 

. 용학사 밑으로 비석들이 많이 있어 이곳을 "비석거리"라고 하더군요..

비석거리에는 도 하나의 귀중한 유적이 있다.

경사진 너른 암반에 ‘北漢僧徒節目’이라는 제목으로 319자가 새겨진 명문이 그것이다.

철종 6년(1885)에 새겨진 것으로 승도의 우두머리 격인 팔도도총섭의 교체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을 없애

산성 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촉구하는 규범을 담고 있다.  

 


 

.

 


 

. 북한산 산영루[山映褸]

북한산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산영루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많은 조선시민들이 지금은 주춧돌만이 남아 있는 이정자를 찾았다.

다산 정약용도 그 중 한명이었다. 다산이 산영루를 노래한 시한 수가 있다.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이에 날개 돋쳐 날아갈것 같구나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 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메어두고 애기 꽃을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대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산영루에서 가을해질녁 산사의 종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노래한 시였습니다. 

 


 

. 산영루터

 

‘북한산의 무릉도원’이라 불렸던 산영루가 나왔다.

<북한지>에 ‘산영루는 중흥사 앞에 옛날 작은 다리를 덮고 누각을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북한지>를 쓴 1745년 당시에 벌써 산영루가 없어졌다고 하니,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오래된 듯하다.

이후 산성을 축성할 때 다시 지어 1907년 사진엔 산영루의 모습이 다시 등장한다.

이 산영루가 있던 총융사 선정비가 있는 앞쪽 계곡 일대를 ‘무릉도원’이라 불렀으며, 북한산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으로 꼽았다.

지금은 장주형 초석 10개만 남아 그 옛날 풍경의 자취만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1910년 이곳을 방문한 독일인 신부는 깊은 계곡의 폭포수와 넓은 암반 등 주위의 경관이 뛰어나 “아름다운 조선”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지금은 1920년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 하며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시대에는 시회[時會]가 자주 열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누각은 화재로 소실되어 주춧돌 13개만 남아있었다.

 


 

. 용학사 자은 암자 같아 보였지만 이곳을 들어서면서 먼져 만나게 되는 이름이

암자가 사찰이였습니다..

 


 

. 암벽 앞에 모셔진 부처님들이 심상치 않아 보여 올라가도록 해보겠습니다..

 


 

. 용학사 대웅전 한컨에 자리 하고 있었으며

용학사는 암장에 여러 부처님들이 모셔진것이 특색이다.

 


 

. 용학사 미륵불 앞에서 암장에 모셔진 부처님들 을 바라 보며 담아 본다..

 


 

. 암자 앞에 모셔진 부처군을 보면 용왕님상.산신상.갑옷을 입은 삼군상등이 여러상의 모습있으며

암벽에는 선각화도 있었습니다.

 


 

. 극락왕생 전등을 이렇게 많이 있었으며 어떤 행사가 있어던것으로 보여진다.

 


 

. 줄지어 전등된것을 보면 엄숙해짐을 느길수있었다.

이렇게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용학사를 돌아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뜸니다. 

 


 

. 백운동문[白雲洞門] 용학사 오름길가에 있었습니다.

 


 

. 노적사 입구 이곳을 내려오니 계곡쪽의 모습이 서서히 눈길을 끌어주는군요..

아마도 힘든 모양입니다.. 시원한 계곡에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 중성문[中城門]

 

북한산성 축성은 제19대 숙종[肅宗37년1711] 다음해인 숙종38년[1712] 산성수비 보완대책의 일환으로 축조하였다고 하며.

1998년 문루와 성벽을 복원하였다. 현판은 신동영 전고양시장의 글씨이다.

 


 

.  중성암문[中城暗門]

 

시구문[尸柩門] 이라고도 하며 성문이 닫혀 있을때 통과하는 문으로, 성내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기 때문에 시구문이라고 불렀다 한다...

 


 

.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 들어가 자리잡고 물속을 들락 거리는것 참 시원함을 느낄수있었다.

저도 잠시 발 당그어 열기를 시키고는 다시 출발 합니다..

 


 

. 오늘 산행은 약11KM쯤 되는 거리를 쉬어가며 그늘에 잠시 누웠다가 물속에도 잠시 들어갔다가...

날씨 관계때문에 많은 시간 소비 하였습니다.. 이또한 철엽 이였던것 같았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