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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49-6 경주 남산 영산에 하늘 신의 성산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놓은 봉화골에서..

◐ Climbing[2012]/├ ②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2. 12. 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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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국립공원[칠불암]



 

 



    ◎ 산행장소 : 신라의 옛 수도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평야 남쪽에 솟아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3명 ◎ 움직임로 : 배리 삼릉 → 선각육존불 → 마애석가여래좌상 → 바둑바위 → 상사바위 → 금오산 → 용장사지 → 아영제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칠불암 마애불상군 → 염불사지 → 서출지 → 통일전 주차장 [총 도상거리 9.5KM 약5시간30분 소요]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9m이다. 절벽 바위면에 얕게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머리에는 3면보관[三面寶冠]이 높이 있으며, 이마에는 띠를 두르고 있다. 얼굴은 길며 웃음을 담고 있어 남성적인 인상이 뚜렷하다. 몸이 풍만하고 굴곡도 여실하다. 오른손은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다. 오른발은 의자 아래로 내려 연화대[蓮花臺]를 밟고서 반가좌[半跏坐]를 하고 있고, 손에 든 꽃 등으로 보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자세임을 알 수 있다. 천의[天衣]는 얇아 육체의 굴곡이 살아 있으며, 옷자락은 유려하게 흘러 대좌[臺座]를 덮고 옷주름은 고식[古式]이 아니며 자연스럽게 늘어졌다. 발 아래는 화려한 구름이 동적이어서 구름에 떠가는 자유자재한 보살을 묘사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 : 나룻배와 같은 형태로 온몸을 둘러싼 광배]에 3가닥 선으로 두광[頭光],신광[身光]을 표현하였을 뿐이며, 광배 자체가 감실[龕室]을 이루었다. 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으로 본 산행기

 

. 이곳을 돌아 들어가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느곳 입니다..

저곳을 돌아 들어가야 하는데 밑으로는 낭떠어지 조심스럽게 돌아 들어가야 합니다...

 


 

. 보물 제199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비석입니다..

 


 

. 신선암 암자는 없지만 불전함과 함께

어떤 신자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듯 합니다..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광배[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 이잰 관람을 마치고 다시 신선암 이정표 있는곳으로 그래야 칠불암으로 내려갈수 있으니까요.

이곳은 꼭들러봐야 할곳 문화재가 있는곳입니다...

 


 

. 칠불암 으로 내려왔습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좌우 앞뒤로 총7분의 불상이 있으며 그래서 칠불암 이란 이름을 갖이게 됐다 한다.

 


 

. 황법련화공덕비[黃法蓮花功德碑]

황법연화[黃法蓮花]란 과연 누구였던가 남산마을 전설에서 알수 잇었다.

 

칠불암 아래 남산리에 "황[黃]씨" 라는 성을 가진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1930년대의 어느 봄날, 황할머니는 산나물을 캐기 위하여 이곳 봉화골을 찾아 들었다.

한참동안 산나물을 찾아 헤메다가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시 쉬기 위하여 산 능선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 때 잡목과 칡넝쿨에 가려진 숲속의 큰 바위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불상의 머리를 발견하였다

 

수풀을 헤치고 좀 더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한 분이 아닌 일곱 분의 부처님을 접견할 수 있었다.

황할머니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제자리에 엎드려 108배를 하고는 황급히 동네로 내려와 집안 식구들에게 전하였다

 

이튿날 황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낫이랑 연장을 갖고 다시 올라갔다.

불상근처를 제초하고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런 후 아들과 함께 바로 옆에 작고 초라한 암자를 짓어 살면서, 석불을 닦고 손질하며 정성을 다하여 칠불상을 모셨다.

그리고 법화연이라는 법명도 가지게 되었다 관계 관청에도 이 사실을 알려 그 때부터 일곱분의 부처가 있다고 하여

"칠불암" 이라 불리어졌으며 일제에 의해 주변의 발굴조사도 이루어졌다

 

그후 관리하던 황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 김만춘이 관리하다가 1973년 작고하고

지금은 비구니스님 두분이 불도를 닦으며 암자를 관리해오고 있다.

황할머니는 죽어서도 멀리가지 못하고 이 근처 서남쪽 산기슭에 묻혀, 항상 칠불암을 내려다보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님이 사시던 집은 아랫마을 염불사지 곁에 있는데 손자 김덕봉씨가 살다가 몇년전에 세상을 뜨고,

현재 그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문화재임을 알리며

자세히 설명도 해놓았습니다. 꼭 읽어 보시길.... 

 


 

. 칠불암 마애불상군[七佛庵 磨崖佛像群] 국보 제312호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三尊佛]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화려한 연꽃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원래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이곳 주변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케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조각기법 및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문화재청

 


 

. 국보 제312호 비석이다..

 


 

. 오늘 산행에 있어 아직도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하여 칠불암 도착하여 보니

지금 점심 공양중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곳에서 점신공양 비빔밥으로 공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불사도 하였구요,,, 성불 하셔요..! 

 


 

. 그런대...??!!

불상군 옆 한컨에는 범상치 않은 삼층석탑이 있다.

이곳에 관한 자료는 찾을수가 없어 아쉽다 못내 않타깝다....

 


 

. 점심공양을 마치고 먼저 삼성각을 들러 봅니다.

칠성[七星]. 독성獨聖]. 산신[山神]을 모셔놓은 삼성[三聖]을 모신곳이다.

 

칠성 : 북두칠성을 말하며 별나라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다. 

독성 : 인연의 이치를 깨닫고 성인이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 존재다. 

산신 : 민족 고유 산악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재물을 담당한다.

 


 

. 왼쪽 벽면으로는 자유롭게 노니는 풍요로운 선녀상의 벽화도 함께 있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칠불암 종무소겸 요사체 아직도 공양중입니다..  

 


 

. 삼성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하산을 준비해 봅니다.

 


 

. 내려오면서 아직도 공양중이라 조심 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 추녀밑에는 잘 쑤워진 메주가 이뿌게 정돈되어 발효가 되고 있으며

그 향기 또한 풍요롭고 넉넉함이 느껴진다...

 


 

. 화장실 길에서 칠불암 한번 바라보고는 찰물암 현판을 담아볼려 다시 암자 앞으로 올라간다.

 


 

. 칠물암 현판이 있었지만 내부에는 요사체로 사용되는것으로 보여지며..

이곳에서 칠불암 불상군을 관리하며 모셔온것으로 보인다...

 


 

. 다시 옆에서 바라보니 앞뒤로 있는 불상 어떻게 모셔진것 인지는 알려진바 없으며

그져 알게된 사연만 알수있어 끝어진 신라역사가 수난세월의 아품을 알리고 있는 술픈현실이였다...

 


 

. 칠불암의 슬픈현실을 뒤로 하고는 내려서는길에 많은 사람들이 그 흔적을 표출한 모양인듯합니다..

 


 

. 계곡세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돌탑들 어느 누구의 기도와 바람으로

이렇게 많이 쌓아놓은 돌탑들이 있더군요....

 


 

. 돌탑들을 뒤로하고는 하산길을 이어집니다..

많은 수량의 흐름이 있을때면 그 아름다움을 함께줄것 같이 느껴주는 계곡길이 오늘의 남산 탐방길을 정리 하여준다.

보물처럼 보여지는 모든불상 들이 지금의 현실에 맞추어 진듯한 설명에 아쉬운부분이 있었지만..

중간에 끝어진 역사 어떻게 이어질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남산동에서 하산하며 불수있는 이정표 잘되있기에 누구나 쉽게 찾을수 있을것입니다... 

 


 

. 우리는 하산 하지만 저기 한분은 아마도 칠불암을 찾아 올라가는듯하여 보인다.  

 


 

. 이쪽 계곡은 "봉화골'이라고하여 남산동에서는 이계곡을 올라가면 칠불암을 오르는길밖에 없지만

통일전에서도 올라갈수있는 코스도 지도상에 있더군요...

 


 

. 어느 국립공원을 가더라도 쉽게 만나게 되는 인원체크 난간 이곳에도 설치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부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 하산길에 많이 만나게된 부분이였지만 사진에 올리기가 마음 허락치 않아 그냥 글로만 남깁니다..

욪요즘 가을철이라 어느 집안에서든 "시제"라는 행사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옛선조들이 자리가 깊던곳이였던 경주 땅에

많은 씨조들이 한결같이 한날 한시에 지내듯 많이들 모여 있더군요..

 

이렇게 남산 탐방을 마치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통일전 까지 마을 한복판을 지나는길에

문화재들 보여 몇장더 담아봅니다.. 다음 목적지는 통일전 앞에서 불국사로 이동합니다.

 


 

. 이곳은 남산동에 있는 [傳 염불사지 삼층석탑] 사적 제311호

아래 안내판과 함께 사진으로 올려봅니다..

지금은 염불사는 없어 보이나 발굴당시 사진이며 복원당시 준비 과정을 뒤판에도 설명이 잘되있습니다..   

 


 

. 지금은 절터를 복원하지 않은 상태 발굴은 된듯하더군요..

이후 한참을 마을길 지나갑니다.. 그러다 만나게 되는 통일전 부근에 "서출지" 있어 담아봅니다. 

 


 

. 서출지[書出池]

 

경주 남산 동쪽의 서출지[書出池, 사적 제138호] 주변에도 연꽃단지[1만3000여㎡]는 있다.

이곳은 정자와 어우러진 연꽃이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신라 무사가 연못에서 나타난 노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소지왕[신라 21대 왕]의 암살을 막았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서출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산책하는 맛이 새롭다.

 


 

. 신라 소지왕[21대]이 488년 남산 기슭에 있었던 천천정에 거동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그 중 쥐가 사람의 말로써,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고 하므로 이를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가 보게 했다.

 

그러나 신하는 이 연못가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고 있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 줌으로 왕에게 그 봉투를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분향하는 중이 궁녀와 서로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또 이 연못에서 글이 나와 궁중의 간계를 막았다는 뜻에서 못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음력 1월 15일에 까마귀에 제사밥을 주는 풍속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련 설명은 다음 포스팅으로~~]

 


 

. 경주 통일전 [慶州 統一殿]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회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통일을 향한 격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기록를 전시해 놓았다는 곳이다.

 


 

. 통일전 은행나무길

지금은 은행잎이 지나는 자동차의 바람결에 날리는 것을 볼수는 없지만 곧게 뻗은 도로가로

줄지어 서있는 은행나무 또한 아름답게 보입니다. 은행나무길은 약1.5km쯤 되어 보인다.

이곳 버스 정류소가 있으며 택시를 승차 하여 불국사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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