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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49-4 경주남산 [용장사지] 매월당 머물며 금오신화 집필 하였다는 곳에서..

◐ Climbing[2012]/├ ②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2. 12. 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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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국립공원[금오산]



 

 



    ◎ 산행장소 : 신라의 옛 수도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평야 남쪽에 솟아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3명 ◎ 움직임로 : 배리 삼릉 → 선각육존불 → 마애석가여래좌상 → 바둑바위 → 상사바위 → 금오산 → 용장사지 → 아영제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칠불암 마애불상군 → 염불사지 → 서출지 → 통일전 주차장 [총 도상거리 9.5KM 약5시간30분 소요]

    ○ 경주남산 [慶州南山] 000M 고위산[494m]과 금오산[468m] 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남북 8㎞, 동서 4㎞의 크기이며 완만한 동남산과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0여 계곡이 있고, 동쪽에는 낭산[狼山], 명활산[明活山], 서쪽에는 선도산[仙桃山], 벽도산([碧桃山], 옥녀봉[玉女峰], 북쪽에는 금강산[金剛山], 금학산[金鶴山]이 솟아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吐含山]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 숭산신앙(崇山信仰)·암석신앙(巖石信仰)과 연관된 불교문화는 남산에 집중,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절터 112군데(암자터 포함), 석불 80체,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의 유물·유적이 발굴되었다. 남산은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蘿井:사적 245), 신라 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昌林寺) 유적, 서쪽 기슭의 포석정지(鮑石亭址:사적 1),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화랑 김유신의 효와 충절을 엿볼 수 있는 경주천관사지(天官寺址:사적 340)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유물·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 간돌도끼[磨製石斧]·간돌칼[磨製石刀]·홈자귀[有溝石斧]·방적차(紡績車) 등과 함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또 진평왕(재위 579∼632) 때에 쌓은 남산신성(南山新城)과, 진덕여왕(재위 647∼654) 때 쌓은 것을 문무왕(재위 661∼681) 때 보수한 남산성(南山城:사적 22),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는 용장사(茸長寺)가 있다. 그 외에도 마애불(磨崖佛)·왕릉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금오산·고위산·도당산(都堂山)· 양산(楊山) 일대 즉 경주시 인왕동(仁旺洞)을 비롯한 4개 동과 경주군 내남면(內南面) 용장리(茸長里) 등 1,813만 4,635㎢의 지역이 1985년 사적 제311호 ‘경주남산일원’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남산 | 두산백과

 

 


 

사진으로 본 산행기

 

. 용장사지로 들어서면서 전망좋은 자리 있어 소나무 밑으로 들어가 조망합니다.

남산 서쪽방향으로 벽도산과 망산이 있는 방향입니다...

 


 

 

. 용장사지 다가오니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정표 있는곳에 묘지로 보이는 곳에

잘다듬어진 석조물 아무리 자세히 찾아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석조물이였습니다...

 


 

. 용장골 방향으로 바라보니 삼층석탑 머리 부분이 조금 보입니다..

급한 마음에 사진을 담아 보지만 아무레도 내려서야 잘 보일것 같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茸長寺谷 三層石塔]

삼층석탑 앞으로는 급하게 떨어진 암벽위에 자리 하여 만들어진 석탑이 어떻게 만들어 세웠을까.?

의심이 가게 하는 부분이였습니다..

당시는 어떤 자리가 만들어졌는지는 알수없지만 안내문에 보면 부근에 용장사지거 있었다는 글이 있으며

그후로 이자리가 변하여 이렇게 궁금증을 주는것은 아닌가도 싶지만 알수없는 궁금증이였습니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茸長寺谷 三層石塔]

석탑 머리 부분은 손실이 되어 그 모습은 다 볼수없었도 웅장함을 주는것이 관리가 필요한 부분인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보물로도 지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茸長寺谷 三層石塔] 보물 제186호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문화재청

 


 

. 검정색옷을 입은 사람이 아래로 바라보고 있는곳에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

보불 제913호 있는곳입니다.. 아마도 내려다 볼려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茸長寺谷 三層石塔]

이렇게 안내문을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참고 하시면 됩니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茸長寺谷 三層石塔]을

조망하며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이렇게 놓여진 자리가 불안 스럽게만 느껴지지만 천녀을 자리한곳이라

마음편히 자리를 뜰수있었습니다.. 다음은 마애여래좌상 있는곳으로 내려갈렵니다..

 


 

. 이렇게 안내문에는 마애여래좌상이있다고 설명되있지만 쉽게 찾아 볼수없을것입니다..

저도 쉽게 찾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자세히 보시면 찾을수 있을것 입죠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913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은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좌대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 처음보는것 석조물 같다...

사진 뒷편에 안내문이 있다.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맨아래 밑단은 자연 기단으로 원형 3단중에 맨위층인 3단에는 연꽃을 그려 넣었다.

그곳은 불상의 대좌 이기때문으로 보여진다..

아랫단은 기단으로 보아야 될것이다.

이곳에서도 아무리 찾아 보아도 용장사지는 보이지 않는것 같으나

자료 찾아보니 이곳 아래 용장골로 내려서면 근처에 있다고 한다..

 


 

. 석조여래좌상을 관람을 마치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길에서 우축으로 보이는 곳이 아영제

오늘 산행을 산행할 방향입니다.

이곳을 올라다시 550m쯤 올라가면 임도길로 아영제로 향합니다. 가늘길에 "삼화령" 있어 관람합니다.

 


 

. 삼화령[三花嶺]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는 높으곳을 의미하고 남산에는 새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 삼화령[三花嶺]

 

성덕여왕시정 생의[生義]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 오라" 하여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가서

풀어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스님은 나를 파내어 시원한곳에 있게 해주시오" 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놓은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 삼화령[三花嶺] 연화대좌[淵花臺座]

 

경덕왕때 향가,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忠談]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삼국유사]에 있는데 바로 그 부처님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비룩불은 없어지고 지름2m의 연화대좌만이 남아있으며 진입도로 아래쪽에 절터가 남아 있는데

그 곳이 생의사터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력은 절터 옆에 서있는 비석에 있으련만 이제비석은

사라지고 비석 받침만이 역사의 궁급증만 더해 주고 있다.

출처 : 경주 국립공원 안내문에서

 


 

. 삼화령에서 다시 용장사지 능선을 바라봅니다.

자세히 보면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이 보일것  같은대 아무리 찾아 볼려해도 않보인다

 


 

.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산 이무기 능선으로 용장골, 용장마을 내려가는 능선도 잘 보인다.

남산 산행시 용장골로 내려서면 삼릉골과 가까운곳이기에 이곳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음 목적지가 불국사로 정하여 그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남산동으로 하산 할려한다.

 


 

. 아영제 가는길에 조망이 좋은곳이 있어 남산동 통일전 있는 곳으로 늘어진 능선을 바라봅니다.

 


 

. 이곳이 임도와 아영제로 갈리는 갈림길이다. 아영제 오르며 담은 사진이다.

앞에 앉어 게시는분은 공원 관리소 직원분이며 요즘 산불 강조 기간이니 서로 조심 하자는 말씀을 하신다.

아영제 지나 봉화대 능선을 넘으면 칠불암 갈림길로 이어집니다.. 다음에도 능선과 칠불암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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