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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49-1 신라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과 지붕이 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을 찾아서...

◐ Climbing[2012]/├ ②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2. 11.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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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국립공원[금오산]



 

 



    ◎ 산행장소 : 신라의 옛 수도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평야 남쪽에 솟아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3명 ◎ 움직임로 : 배리 삼릉 → 선각육존불 → 마애석가여래좌상 → 바둑바위 → 상사바위 → 금오산 → 용장사지 → 아영제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칠불암 마애불상군 → 염불사지 → 서출지 → 통일전 주차장 [총 도상거리 9.5KM 약5시간30분 소요]

    ○ 경주 남산 [慶州 南山] 468M 사적 제311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외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있는 금오산[金鰲山]과 고위산[高位山]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르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산은 그리 높은편이 아니자만. 동서로 가로 지른 길이가 약4km, 남북의 거리는 약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이 곳에는 수많은 불적이 산적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신라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羅井], 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쳐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지[茸長寺址]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 곳은 122여 개소의 절터, 57여 개소의 석불, 64여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야외 박물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2000년 12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사진으로 본 산행기

 

. 경주남산 등산길로 지나면서 수집한 문화재들을 지도로 간단히 만들어 본것이며.

오늘 부터는 위에 있는 지도상 나타나 있는 문화재들을 소개 하겠습니다

 


 

. 경주남산 국립공원 삼릉지구 입구 입니다.

들어서는 입구에는 남산지구 문화재들로 구성된 지도가 있었으며

남산지역 탐방시에 찾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이정표 설명이 되어 있더군요.

황색으로 표기된 이정표는 문화재 있는곳 입니다.

 


 

. 경주 남산일원을 사적 제311호로 지정되었다는 안내문과 함께

신라시대의 왕도였던 경주남쪽에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등에 있는 122여 개소의 절터,

57여 개소의 석불, 64여 개소의 석탑 등을 야외박물관으로 소개하며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다 한다. 

 


 

.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배리삼릉 사적 219호,

 

경주시 배동 이 곳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왜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 18m이다.

 

○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헌강왕의 사위인 신덕왕[재위 912~917, 박경휘]를 추대하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61m, 높이 5.8m, 지름 18m이다.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하여 1953년과 1963년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는 깬 돌로 쌓은 횡혈식 돌방으로 밝혀졌다.

 

○ 경명왕[재위 917~924,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출처 : 경주시청]

 


 

. 배리삼릉을 지나면서 소나무숲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데스크 등산로가

이곳부터 시작된다. 따라 올라가다보면 안내문들이 많이 있어 간단히 소개 하자면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무속인들의 무분별한 장소에서 기도를 하는것을 재제하였으면 하는 안내문과 애완동물 출입을 삼가 하자는 안내문 이였습니다.

또한 요즘은 가을철 산불조심 강조기간[11월15~12월15일]으로 인화물질 소지하지 말자는 켐페인중이 였습니다..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三陵溪谷 石造如來坐像]

 


 

. 안내문 있어 대신 하여봅니다.

동국대 학생들이 주변에서 머리없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석조여래좌상 있는곳에서 좌축으로 50m쯤 오르면 만나게 된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

 

불상은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으며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되어있다.

풍만한 얼굴레 머리 위에는 삼면보관[寶冠]을 썼는대,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이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수있다.

입술에는 붉은색이 아직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위에서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각각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은 정병[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손가락을 꼬부려 밖으로 향하고 있다.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있는곳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런대 자세히 보면 색이 달리 보이는 이정표가 함께 붙어있는대.  

황색으로된 이정표는 문화재가 있는곳임을 남산 관리소에서 만들어 놓아 편리 하며 꼭 명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정상 등산로 옆에 있어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 탁본 그림이 있어 참고로 올려봅니다. [옮겨옴]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분의 불상이 두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앞쪽 바위면 가운대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 되어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菩薩像]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대,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술 2개로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마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위한 법당[琺堂]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 이곳에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이 선각되어 있으며 사진상으로는 분별이 안된다.

 

안쪽 바위면 가운대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袋座]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뭄 둘레는 신광[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부릎에 얹고 오른손으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분이 서있다. 보통 이 새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 이곳은 조금 아래부분에 있는 아마타삼존[三尊佛]이 선각된 부분입니다.

아래, 위 합쳐서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이 된것이며 방금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삼릉계석불좌상[三陵溪石佛座像] 보물 제666호 있는곳 입니다...

 


 

. 삼릉계 석불좌상 있는곳에서 앞을 바라보는 방향 전경 입니다..

 


 

. 삼릉계 석불좌상 으로 올라가 본다.

또한 좌축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보니 선각여래좌상[線刻如來座像] 있는곳이다. 그곳도  올라 보겠습니다..

 


 

. 삼릉계석불좌상[三陵溪石佛座像]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성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향마촉지인[降魔觸誌印]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라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불상의 상호[相好]는 파손이 심했기때문에 뺨과 코,입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가사[袈裟]는 왼쪽 어께에만 두루고 오른쪽 어께에는 노출된 편단우견[偏袒右肩]식으로 걸쳐는데.

이 가사는 얇게 뭄에 밀착하여 신체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 삼릉계석불좌상[三陵溪石佛座像]

 

광배는 간절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火焰紋]과 당초문[唐草紋]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連花座]는 상대[上臺]에 앙련[仰蓮]을 3단으로 새겨졌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中臺]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을 두었으나. 하대[下臺]]에는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절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된다.

 


 

. 불상의 얼굴과 광배등이 크게 파손된 상태였으나 2007~2008년

경주시의 의뢰로 국립 경주문화재 연구소에서 보수,정비 하였다.

 


 

.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座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座像]

 

불상은 높이10m 가량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파여 있는데,

위쪽에 불상이 조각하였으며,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다.

 


 

.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座像]

 

얼굴은  큼지막하고 넒적하게 표현하고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아 구분이 없다.

옷은 양어께에 걸쳐으며 양손의 손목까지 덮고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여 부릎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앞에 들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바위 속에서는 얼굴만 내민듯한 점이 특이하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삼릉계곡에 있으면서 기도처로 많은 무속인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보여지는 암자로

오늘도 기도를 위해 찾은 한분의 안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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