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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49-2 경주 남산에는 남신과 여신의 전설이 있는 남산과 망산의 유래가 있었다.

◐ Climbing[2012]/├ ②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2. 11. 3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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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국립공원[금오산]



 

 



    ◎ 산행장소 : 신라의 옛 수도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평야 남쪽에 솟아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3명 ◎ 움직임로 : 배리 삼릉 → 선각육존불 → 마애석가여래좌상 → 바둑바위 → 상사바위 → 금오산 → 용장사지 → 아영제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칠불암 마애불상군 → 염불사지 → 서출지 → 통일전 주차장 [총 도상거리 9.5KM 약5시간30분 소요]

    ○ 경주 남산 [慶州 南山] 468M 남산은 신라인의 숨결이 배인 ‘노천 박물관’ 신라인들은 남산을 ‘불국토’인 수미산쯤으로 여겼다. 마지막 신라인으로 유명한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도 “남산을 보지 않고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동서로 4㎞, 남북 8㎞로 뻗은 이 산에는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이 오롯이 마주 보고 섰다. 김시습은 금오봉의 이름을 따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이곳 금오봉 중턱 용장사에서 썼다. 옛 신라인들은 7세기부터 10세기 까지 약 400여 년간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 부처를 새겼고, 평평한 둔덕마다 불탑을 세웠다. 금오봉 8부 능선에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이 탑은 천연바위를 기단석으로 삼아 세운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정상부로 향하면 석불좌상, 마애불상, 반가상, 석등 등 불교유적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남산에는 잘 생긴 석불은 별로 없다. 만들다 만 듯한 미완의 작품들이 많다. 불상의 뒷모습 처리도 깔끔하지 않다. 그저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부처상이나 옆집 아줌마 같은 넉넉한 보살상, 깊이 새기지 못한 채 절벽에 윤곽만 새겨놓은 선각불 등등···. 이름없는 석공들이 무딘 정을 들고 마음을 새겼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본 산행기

 

. 상선암[上禪庵]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중턱에 자리 잡은 상선암[上禪庵]은 등산로와 경내가 이어져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는 사찰이다.

이 암자의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다. 광복이후 박배월 스님이 창건을 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 여러 스님들이 이곳에서 정진을 하였다.

그러나 이 절터에는 예전에도 사찰이 있었음이 여러 가지로 증명을 하고 있다.

길가에는 장대석 1매가 있으며 그리고 많은 와편[瓦片]이 아직도 출토되는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조선 순조 34년인 1834년에 강와 임필대[剛窩 任必大]가 서술한 유동도록[遊東都錄]에는 상선암에 올라보면

앞쪽의 하선암이 수석[樹石]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산에는 하선암[下禪庵]이라는 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선암에서 위로 올라가면 마애여래좌상을 참배할 수 있고 암자 등산로 서편에는 선각보살 입상을 친견할 수 있다.

 


 

. 선각보살입상[線刻菩薩立像]

 

상선암 요사 바로 옆 길가에 있는 보살입상은 지금은 풀에 덮여 않보이기도 하나 아주 자세히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상체[上體]와 발 부분은 모두 결실[缺失]되어 그 흔적 조차도 살필 수가 없다.

추정하기로는 이 보살입상이 넘어지면서 깨어지면서 손실되지 않았나? 추정을 할뿐이다.

그리고 이 보살이 여기에 있었다기 보다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뿐이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三陵溪谷 磨崖石迦如來坐像]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金鰲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상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았는데 깍아내다가 그만둔듯 거칠다. 높이7m로 냉골[三陵溪]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께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 엄자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三陵溪谷 磨崖石迦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 남산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입장금지 푯말이 붙어있엇더군요..

너무 어처구니 없어 자세히 읽어보니 마애석가여래좌상 주변 암반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으며,

 낙석의 위험이 있어 안전을 위하여 출입을 금한다고 합니다.. [~2012년12월3일까지]

 


 

. 출입을 금지한다 하여 망설이던중 상선암 암자에서 한분이 기도를 위해

오른는것을 보고 따라올라 접근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정도 보수 작업된 부분도 보였으며 완료되어 안전한것으로 보였으며

한분은 그곳에 자리하여 기도 드리는것을 목격 하였습니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문화재 손실도 중요하니 만큼 관계자 분들의 관심이 더욱더 필요한 부분인듯 하기도 하였습니다...

 


 

.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 있는곳을 상사바위 상단 부분에서 바라봅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있는곳에서뒷편으로 사진상 오른쪽 높은곳이 바둑바위와 금송정터가 있는곳이며..

마애석가여래좌상은 긍산 정상이 있는 남쪽 방향을 바라보고있어 아침 동이트면 하루종일 햇빗이 들는

자리로 명당이라 할만큼 좋은 자리로 보여집니다.     

 


 

. 너무 아름답게 보이는 터[址]이기에 눈을 띨수없어 높은하늘과 청명하기만한 주변을 한번더 담아봅니다.

멀리보이는 벌판뒤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벽도산으로 보여 지는곳 입죠.

벽도산 넘어로는 신경주역사가 있기도 한 방향입니다

 


 

. 바둑바위, 금송정터[琴松亭址]

 

어느새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금오봉 능선에 작은 봉우리 바둑바위다.

누구라도 신선이 되어 바둑 한 수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 전체가 보이는 금송정터[琴松亭址]와 그 옆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산봉우리의 바둑바위 부근에는 사방 5m 가량의 금송정터[琴松亭址]가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금송정은 옥보고[玉寶高]가 거문고를 타던 곳이며,

그는 신선이 되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전망 하기좋은 곳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은 쉼터로 많이 이용하며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전망대 이기도 합니다.

 


 

. 신선도 즐기고 전망하는데 많은시간 소비하였으니 능선을 따리 정상을 향하봅니다.

어느 능선 봉우리 한곳 그냥 지날수없을 만큼이나 소나무와 어울어지는 자리마다

나도 옛 선비가 되어 신선을 느낄수 있을것 같은곳 들이 자주 만나게 된다. 이잰 상사바위 옆으로 이동 합니다.

 


 

. 상사바위[想思岩]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백여 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 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낮는다."

 

"산아당[産兒堂]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있다." 

 

위의 글은 [동경잡기]에 실려있는 상사바위에 대한 기록이다.

상사바위는 높이 약13m, 길이약25m 가량되는 큰 바위로 이바위를 서편에서 보면 냉골 여울에 부리내리고

수십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첨탑처럼 보이고 동쪽에서 보면 산등성이 위에 직사각형으로 육중하게 솟아있어 염라대왕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상이다. 바위 중간쯤에 가로파인 틈에 덜을 던져 그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진고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상사바위 남쪽편에 아기를 낳는 듯한갈라진 바위인 "산아당"의 모습도 볼수있다.

 


 

. 동경잡기[東京雜記]는

 

신라문화원에서 발간한 [경주남산유적답사]라는 책에서 1669년 민주면[閔周冕]이 쓴 동경잡기[東京雜記]

라는 책으로 상사바위[想思岩]와 산아당[産兒堂]의 정보를 알수있었다.

 


 

.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나왔 있다는 산아당[産兒堂] 입니다..

 

"산아당[産兒堂]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있다." 

 


 

. 바위에는 "산신당[産神堂]" 이라 암각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아래 에도 글자가 보인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렇게 세겨져 있더군요.

"咸豊六年丙辰. 四月祈도明年. 丁巳五月十日. 巳時金應鉉 生."

[함풍육년병진. 사월기도명년. 정사년오월십일. 사시김응현 생.]

"산싱당 : 함풍6년 병진년[1856] 4월에 기도하니 다음 해 정사년[1857] 5월10일 사시[오전 09~11시]에 김응현을 낳았다."  

그외는 아들 육자매와 손주 이자매 이름이 있으며..

"甲子四月九日○刻" [갑자사월구일○새]

"갑자년[1924년] 4월9일 새기다." 라고 자세히 보시면 알아볼 글자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는 산신당과 산아당이 같이 사용되던때 같기도 합니다.. 

 


 

. 지나던 능선길에서 마애석가여래좌상, 금송정터, 바둑바위 있는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멀리는 높게 보이는 봉우리는 선도산 있는 방향입죠

산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경주벌판 그곳이 경주들머리 경주IC도 보이며 경주의 젖줄이라고 할만한 형산강도 보인다. 

 


 

. 금오산[金鰲山] 정상에 도착 [09시40분]

 

고위봉(495m)에 이어 남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 금오산(468m)이 금방 나타난다.

크고작은 바위들이 많이 솟아 있는 남산인데 뜻밖에 금오산 정상은 바위가 없는 평범한 사질 흙산이다.

 


 

. 남산과 망산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이었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노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 라고 해야 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 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참고문헌 : 경주시지]

 


 

. 바둑바위 부근에서 바라본 "망산" 이렇게 보면 서쪽으로 망산을 두고 남산은

남,북으로 능선을 감쌓고 있는듯하여 아늑함을 주기도 합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여신이 만들어낸 "망산" 정상에서 쉽게내려다 볼수있다.

 


 

. 금오산[金鰲山] 높이는 468m이다.

 

금거북이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금오산[金鰲山]이라 한다.

또한 금오산과 고위산을 두고 경주 남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 남산과 망산 사이로 환하게 열린 형산강과 경주평야의 풍경을 바라 보노라면

남산과 망산의 깊은 애절함이 있어서 인듯 마음이 절로 상쾌해지고 푸근해진다.

 


 

. 용장사지가 있어 용장골. 용장마을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경주 남산을 등산하는분 들은 삼릉계곡을 기점으로 바둑바위와 금오산. 봉화대능선.

고위산. 이무기능선. 용장마을로 산행과 탐방을 하지만 오늘 우리는 불국사 관람의 목적이 있어 

칠불암을 지나 남산동 톨일전으로 하산을할 계획이다. 포스팅이 계속 이어질것이다.  

 


 

. 금오산 정상석 뒷면에는 금오산 남산을 노래 하는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 남산중에 북쪽에 있는 봉우리 금오산을 지나고 있으면서 이정표 상으로는 서쪽방향이 "약수골" 이며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은 용장사지 지나 삼화령. 아영재를 이어 고위산으로 지나는길로 다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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