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5】11-4 서울 한양도성길 서울 성곽길 숭례문 돈의문 터 홍난파 가옥 인왕산 국사당을 갈으면서..
▣ 서울 성곽길 숭례문 구간과 인왕산 구간 일부
△. 오늘 포스팅 이동 경로를 정리해 본다. 소의문터[중앙일보 사옥] → 돈의문터 → 월암공원 → 홍난파 사옥 → 사직공원성곽 → 인왕산 선바위 → 국사당 → 독립문역 인왕산 아랬부분까지 이동한 경로로써 인왕산 개방 시간을 알려 드리자면 월요일은 휴무로 인한 통제하며 월요일 제외한 나머지 요일은 24시간 개방을 하고 있더군요. 이곳은 군경찰들이 근무하고 잇는 지역으써 사진 촬영을 제한을 두고있는 지역이다.
△. 이곳은 중앙일보사옥 건물로써 앞으로 도로 횡단을 하여야 합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고려삼계탕 음식점이 자리하고있는 골목길을 진행하여도 되지만 원래의 성곽길은 서소문 고가차도 시작점인 순화 빌딩과 정안빌딩 사이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공관으로 바져나와야 하기에 그길을 택하는것 보다는 앞전 소개된 구간으로 가는것이 좋을것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배재학당 건물을 보면서 진행하면 덕수궁을 만나게 된다. 지도를 확인해 보시면 정동교회에서 이화여고, 경향신문 사옥으로 진행 하면 되면서 길건너 돈의문터를 만나게 되면서 인왕산 구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럼 지금부터 갈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배재 대학교와 옆으로 있는 배재학당동관[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기념물 제16호> 1916년 준공된 배재학당동관은 현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학교로서 1886년 고종이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이다. 초창기 배재학당은 미국 문물 교류의 통로로서 수많은 근대 지식인을 배출하였다. 이승만, 주시경, 김소월, 나도향, 오긍선, 신봉조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누구나 알아 볼수 있는 학당으로 주변에 서울시립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 서울시립 미술관 정문 앞으로 지나갑니다.
△. 중부 등기소 멀리 보이는 십자가 올려진 힌색탑이 있는곳 정동 제일교회로써 100주년 기념 탑으로 보여집니다. 역사적인 교화로도 손꼽히는 정동 제일교회다.
△. 지금으로 부터 약130년전에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설비자인 아펜젤라와 스크랜턴 여사[모자] 선교사들어와 세운 정동제일교회 100주년기념 탑 입니다..
△. 뒤로 흰색 건물은 러시아 대사관 건물인듯 하구요, 주변에 유관순 기념관도 있습니다.
△. 덕수궁 주변으로 왔습니다.. 사진상 좌축으로는 정동교회 건너편인 정돋그장이 있는 장소이며 건너편의 돌담은 덕수궁 돌담입니다.
△. 도로 한 모퉁이에는 광화문연가 작곡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던 이영훈 작곡가 세상을 등지고 영면길에 들어간지 7주년 얼마전에 행사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래로는 추모 탑도만들어 놓았군요...
△. 다시 길건너편에 있는 정동제일교회 <사적 제256호>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회이다.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1895년에 착공, 1897년에 완공하였다. 인근의 배재학당, 이화학당과 더불어 개화기 미국 문물 도입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아펜젤라와 스크랜턴 여사[모자] 선교사 들어와 집에서 예배를 보면서 자리 하게된지 약130여년 지금은 주변으로 이화여고. 배재학당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 정동 제일교회 설림자인 스크린틴 여사가 설립한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등록문화재 제3호>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 교사(校舍)로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화학당은 1886년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이 창설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은 1887년 왕후가 지어준 것이다. 학교 경내에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터와 “한국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기념비, 유관순 동상, 손탁호텔 터 표석 등이 있다.
△. 이화여고와 창덕여자 중학교 앞으로자리하고있는 느티나무 세월을 견디기 어려워 바침목에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느끼게 하는것 같습니다.
△. 이곳이 경향신문 건물 앞 정동 사거리가 되는 지점으로 건너편에 강북 삼성병원이 보이는데 그곳이 돈의문터로 정문에 스템프 설치 되어있으며 삼성병원 내에 임시정부 주석이였던 김구선생이 머물던 경고장도 있는 곳이다.. 사진은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 여기까지 오면서 사진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경향신문사 앞으로 횡단보도 건너면서 만난 “돈의문터”테크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강북성심병원이 있지만 정문에서 스템프 설치 되어있었으며 병원원내에 임시정부 초대 주석이였던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이 있었지만 들어갈수 없기에 그냥 지났쳤으며 주변 개발 공사로 어수선하여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월암근린공원”을 만나며서 다시 사진을 남기기 시작 하였습니다.
△. 월암공원 올라가는길에 이정표 입니다. 방향은 위쪽에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되는데 아래쪽으로는 홍난파 가옥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이곳은 다시 월암공원길로 올라가는길 이곳에서 죄축으로 가면 홍난파 가옥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 서울 한양도성의 흔적들[월암근린공원 일대] 월암근린공원을 따라 최근에 성벽을 새로 쌓았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서울시 복지재단[구 기상청 건물]의 담장 축대 아래 묻혀있던 성벽의 일부가 드러났다. 홍파동 홍난파 가옥 부근 연립주택 건물 주차장 뒤편에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공원으로 올라와 지나다 보면 아래로 홍난파 가옥이 보인다.
△. 홍파동 홍난파 가옥 <등록문화재 제90호> “봉선화”, “고향의 봄”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난파 홍영후[1898~1941]가 살던 집. 그의 대표곡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작곡되었다. 1930년대 서양식 주택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주변으로 그러니까 사직터널 부근에 “달쿠샤”가옥이 있으면서 황난파 가옥과 같은 분위기의 집으로써 독인인들이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인 가옥으로써 85년이나된 가옥이다.
△. 이곳부터는 인왕산 오르는 성곽길입니다. 오늘 이곳을 일부 올라갈것인데요 왜 올라가냐 하면 성곽길에서 자세히 볼수 있는 성곽축성 연대를 살필수 있는 곳이며 독립문역으로 가기 위한 선택입니다.
△. 오름길중에 뒤돌아 살펴 본다. 사직근린공원 부근 성곽 한양도성 전 구간중 성 안과 성 밖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성벽 안쪽의 넓은 길에서는 도심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편히 걸을 수 있고, 바깥쪽 오솔길에서는 담쟁이넝쿨과 고풍스러운 성벽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경 및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밤에 보는 성벽의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 인왕산 구간을 올라가기 위해서 선택을 합니다. 성내곽길과 성외곽길이 있는 곳으로 성외곽길을 선택 합니다.
△. 축성 시기별 축성 방법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 인왕산 구간에서도 시기별 축성 방법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곳부터는 성 안팎으로 길이 나 있다. 그래서 밖의 길을 택하여 성벽을 관람해 보면 걸었습니다. 성 바깥 길을 걸으며 성돌의 모습을 눈여겨보자. 태조, 세종, 숙종, 순조, 그리고 그 이후에 쌓은 성돌이 공존하는 구간이 꽤 길게 이어진다. 이렇게 보아도 그대로 느껴지게 된다.
△. 올라가던중 다시 성내, 외곽으로 넘어갈수 있는 곳이있습니다. 그곳에 올라서서 성벽과 멀리 남산을 바라보면서 사진 남깁니다.
△. 인왕산 순성길 해발 338m인 인왕산은 큰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정상에 가까울수록 험준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자연 암반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큰 바위들과 어우러져 끊어질 듯 이어진 성벽은 한양도성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인왕산 정상 가까운 곳에는 무악재와 안산[무악] 방향으로 길게 돌출된 곳이 있는데 이런 지형을 활용하여 곡성[曲城]을 쌓았다. 곡성이란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에 성벽을 지형에 따라 길고 두글게 내밀어 쌓은 성을 말한다. 인왕산 곡성은 현재에도 군사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오늘 성곽길은 여기 까지가 성곽길이였으며 다음으로는 하산길로써 독립문역으로 내려가기 위해 국사당과 선바위를 관찰하며 하산을 하겠습니다.
△. 국사당 지역의 바위들은 모두가 기가 쎄다는 설이 있어서 그런가 어떤 구역이던 자리 좋은곳에는 모두 기도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바위도 이름을 지워 줬으면 좋을것 같은데.. 이름은 잘은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아 보인다.
△. 선바위 가던중에 바위 위로올라가 잠시 휴식하며 바라본 성곽과 경북궁을 바라 본다.. 황사만 아니였다면 성명한 시내를 볼수 있는 자리다.
△. 또한 서쪽 방향으로 있는 안산 봉수대 뒤로 일몰이 이루어지고 있내요. 눈에 아름답게 보여 인증 사진 한장 남깁니다.
△. 이곳은 일재 강점기 당시 형무소로 사용되던 서대문 형무소 독립투사 들의 신음 소리 들리는듯 합니다.
△. 늦은 시간인대 기도를 위해 찾은 신도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말을 건내 보니 아직 시간이 되지를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합니다. 아마도 정성을 드린만큼 받기 위한것일까요...?
△.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중요민속문화재 28호> 조선 태조 때 남산에 세운 국가 신당이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을 헐자 이곳에서 제례를 지내던 무속인들이 인왕산 서쪽 자락으로 옮기고 사설 무속 신당으로 바꾸었다. 국사당 위쪽에 있는 선바위는 고깔 쓰고 장삼 입은 승려가 참선하는 형상의 바위이다. 불교를 배척했던 정도전이 한양도성의 경계를 정하면서 일부러 선바위 있는 곳을 제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기자암[祈子岩]아들을 기원하는 바위”이라고도 하며 일명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아태조와 아태조비 상이라고도 이야기 하더군요.
△. 국사당[國師堂] 내부에 무신도[巫神圖] 중요민속자료 제17호
1. 아태조[我太祖] :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국사당에 고려 공민왕 본조 승 무학, 고려 나옹상들이 걸고있다”고 나온다. 2. 강씨 부인 : “아태조비[我太祖妃]”라고도 한다. 아태조 그림 바로 옆에 위치하여 함께있는 것으로 보아 “아태조 내외분”이라고 부른다. 3. 호구아씨 : 어린 여자아이 둘을 앞에 세우고 뒤편 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국사당에 어린 여아상이 있는데, 여아는 홍역신이며, 신전에 지분들이 놓이고 매우 문란하며, 기도가 매우 성하다고 했다.” 고 했다. [小兒女像 女兒則以爲痘神云, 神前設脂粉之屬] 즉, 호구아씨는 홍역을 관장하는 신이다. 4. 용왕대신 : 파도무늬 위에 기룡남신상[騎龍男神像]이 그려져 있다. 신장상과 같이 이 용왕상도 용을 곁들여서 신격이 선명하다. 5. 산신 : 호랑이를 타고 앉은 기호노인상[騎虎老人像] 뒤에 동자가 선도[仙挑]인 듯한 것을 들고 서 있다. 6.창부씨 : 광대씨[廣大氏]라고도 한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자세로 피리를 불고 있는데, 창부가 춤추는 모습 또는 줄을 타며 춤추는 모습이라고 한다. 7. 신장 : 신장은 또한 인간의 집터, 일터, 그리고 죽은후의 무덤터를 정해 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지리천문신장, 천문신장, 상통하달천문지리신장, 또는 지관선생 등으로도 불리운다. 8. 무학대사 : 아태조상 왼쪽에 있다.『오주연문장전산고』 “화동음사변증설[華東淫祀辨證說]”에 보면 국사당 무신도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국사당에는 본조승무학[本朝僧無學]외 여러 신상을 걸어두었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무학대사임을 알 수 있다. 9. 곽곽 선생 : 곽곽 선생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과 『수경[水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경학[經學]과 역수[易數]에 능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晋]의 학자 곽박[郭璞]이 점복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처럼 모셔지다가 곽곽으로 와음이 된 듯하다. 곽곽 선생은 맹인[盲人] 풀이의 대상신으로 안질[眼疾]환자들이 특히 신봉한다고 한다 10. 단군 : 목판에 채색이며 화상에 “檀君天神”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단군은 개인 신당에서 모셔지기도 하지만 명산의 산신당에서 모셔지거나 도당에서도 모신 인간에게 복을 주며 나라를 보살피는 신으로 모셔진다. 구한말 대종교[大宗敎] 계통의 인쇄 간행물일 가능성도 있다. 11. 삼불제석 : 제석은 산신[産神], 수신[壽神], 농신[農神]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12. 나웅 : 나옹은 고려 공민왕때 왕사[王師]였던 고승이다. 무학대사의 선배라는 이야기도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국사당 무신도로 언급되었다.무당의 영험을 더해주고 도의 경지에 들도록 도와주는 신이다. 13. 칠성 : 칠성은 도교신[道敎神]의 수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칠성 또한 민속에서 수명신[壽命神]으로 뿌리 깊은 관념을 두고 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이다. 14. 군웅대신 : 군웅은 액을 막아주는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굿거리 군웅거리에서는 복숭아나무 가지에 버드나무 화살들로 동서남북의 액을 쏘아 쫓는 행위를 한다. 15. 금성님 : 이들 부부가 산속(産俗)에서 아이의 수호신인 '삼신할망'의 신력에 굴복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병상은 천연두신임을 알 수 있다. 16. 민중신 : 국사당 관리자들이 민중전이라 하지만, 원삼에 족두리 차림의 주신과 그 아래쪽 좌우에 도 동녀[童女]를 배치한 것은 호구아씨신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이어서 호구아씨로 추정된다. 17. 최영 장군 : 전국적으로 특히 경기도 일대에서 최영 장군은 매우 주요한 신으로 신봉된다. 개성 덕물산[德物山]의 주신[主神]이기도 하다. 국사당의 주신[主神]으로 여러 신격 가운데 무당과 치성자들이 가장 중요시한다. 무력을가지 무신[巫神]으로 인간을 수호하고 무당의 영험을 관장하는 신이다.
※ 출처 : 문화재청. 서울시청
△.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국사당은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여러신을 모신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세운 “굿당”에 속한다. 원래는 남산꼭대기에 있었던 것을 일본인들이 강점기 당시에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전을 강요하자 건물을 해채하여 1925년 현재의 인왕산 기슭에 옮겨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인왕산을 택한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에 속한것으로 알진곳으로 조선태조 때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으로 알려진곳이다.
이렇게 하여 서울 한양도성길 남쪽 을 완주 하였습니다.. 도성길 걸으면서 많은 문화재며 성곽등을 살피면서 또 다른 면모를 느낄수 있는 성곽길이였으며 나머지 구간 인왕산. 창의문. 북악산. 숙정문. 와룡공원. 낙산. 흥인지문 까지 지난해 돌아보았지만 다시 한번더 가보며 세로운 문화잴르 찾아보는 시간도준비해 보겠습니다. 그 동안 길고긴 여정을 끝까지 읽어 주신 서울 한양도성길 남쪽구간을 따라온 모든 불친님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성곽길도 잘 보아주시길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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