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어사에는 100대 명산 금정산의 금샘을 품었다.
△.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산성 마지막 코스로 금샘과 범어사길을 준비 하는데 금샘을 찾는길로 준비하였습니다.. 고당봉 정상에서 약 350m쯤 떨어진 장소로 아래로 보이는 범어사 방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금정산성 고당봉에서 호포 갈림길 방향으로 하산하여 바로 우측으로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방향에서 다시 우축으로 200여m쯤 내려가다 보면 금샘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100여m쯤 내려가면 바위군 맨 끝에 우뚝 솟은 바위 정수리에 언제나 금빛 물이 고여 있다는 금샘이 있다.
△. 금정산 금샘의 유래 에 대해서는 1432년에 편찬된『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동래현조>와 1481년에 편찬된『동국여지승람』 「동래현」<산천조>에 기록되어 있다. 금샘 주위에는 낙동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낮에 햇빛의 열기로 데워지고, 데워진 바위가 밤이 되면 주변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으로 샘물이 차게 된다고 한다. 지금도 10월의 해 질 무렵에 금샘을 보면 물 안에 물고기 형상의 홈이 파여 있어 석양과 단풍빛이 반사되어 금빛 물로 변화하고, 바람에 파장이 일렁이면 마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노니는 것 같이 보인다.
△. 금샘은 샘 둘레의 곡선미, 물결의 금빛 파장과 함께 사방이 확 트인 아름답고 장엄한 풍광을 가진 곳이며, 부산의 진산이자 제일 명산인 금정산의 이름이자 범어사 창건 설화와 절 이름의 탄생 배경을 간직하고 있는 명소로,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채 신비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담아 왔다 지금도 범어사에는 금샘의 물이 마르면 큰 재앙이 온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62호로 지정 위험과 문화재 훼손방지를 위한 보호하기 위하여 안내문을 설치 해 놓았내요...
△. 백악기 말인 8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화강암체가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과정과 기후변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금샘은 그 자체로서도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토르와 암괴류가 이 일대에 자생하는 등나무군락지 등과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자아내고 있어 경관적 가치도 매우 뛰어난 곳이다. ※ 토르[Tor] : 차별적인 풍화를 받고 기반암과 연결되어 마치 탑처럼 지표에 드러난 암석을 “토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탑바위”라고 한다.
△. 어느 산객분 께서는 금샘에 금빛고기 있는가를 확인 하더군요...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참으로 신기하게 필자도 느껴졌습니다.
△. 오를때는 성곽안의 길로 올라지만 하산길은 성곽 외벽길을 선택하여 내려 왔습니다.
△. 하산길 북문 방향으로 바라보며 사진 한장 남겨 봅니다. 북문은 낮은 지역에 위치하여 원효봉 만이 눈에 뜨이내요.
△. 북문 주변으로는 습지가 형성 되있으면서 보전지역으로 관리하고 있었지요 북문 도착 하면서 뒤돌아 성곽 외벽길에서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을 바라 보며 인증 합니다..
△. 아마도 복원작업 중인 북문 주변에는 잘 복원되어 성벽임을 또렸하게 느껴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 북문 앞에서 금샘과 고당봉을 한번에 잡아 인증 합니다. 참고 하시면 금샘 찾는길 아주 도움이 될것이다.
△. 이쯤에서는 북문을 밖에서 사진 한장 남깁니다. 마치 그때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앞으로는 하산길로 범어사 방향으로 하산을 할것이다. 이곳부터는 갈맷길로 이어지는 곳으로 이정표와 안내는 갈맷길이 잘되있습니다.
△. 쓸쓸한 숲길부터 고즈넉한 성곽길까지…아쉬움 달랠 늦가을 “걷기 명소”라며 한국관광공사 에서 “걷기 여행길” 이라며 발표하였다. 금정산성 고개에서 동문을 지나 부채바위, 제4망루, 원효봉, 북문에 이르는 능선길은 부산 전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어 좋다. 산성 북문 고산습지에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있는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팔송까지 금어동천, 비석골 서어나무 숲을 호젓이 걷는 옛길이 펼쳐진다.
△. 부산 갈맷길의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물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다. 9개 코스에 263.8km의 거리로 제주올레길이 해안길, 지리산둘레길이 숲길 중심이라면 갈맷길은 부산 도심과 바다, 산, 숲, 강변 등을 속속들이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 북문 출발하여 약간 내려왔을 쯤 테크길이 나오면서 이곳부터는 범어사 돌바다 암괴류길이 이어지기에 약간의 조심성을 갖은 상태로 하산을 하여야 합니다. 즉 돌길이 이어지기에 발목 조심을 강조 합니다..
△. 한참을 내려서면서 보게된 안내문 물론 오르는 사람들에게 알림 표지판이 겠지만 이 지역은 특색으로 암괴류 길로 되있으면서 보이지는 않아도 물 흐름 소리를 지나면서 쫑긋하게 귀기울여야 들린다. 암괴류길이 꾀나 길었던 것으로 기역된다.
△. 범어사 금강암 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범어사 주변으로는 많은 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지장암, 계명암, 원효암, 내원암, 청명암, 안양암, 대성암, 미륵암, 사자암, 만성암 등이 주변에 있더군요. 아마도 범어사와 연관이 있는 암자들로 보였습니다.
△. 금강암 들어가는 입구 계곡을 지나야 하기에 들어가는 입구도 수문을 만든 교각으로만들어 놓았더군요. 아마도여름 우기철에는 많은 물이 흐르는것 같아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서 잠시 자리하여 질퍽한 등산로길을 걸으면서 신발에 묻은 흙을 닦기 위한 시간도 보냈지요.
△. 범어사 돌바다[梵魚寺 岩海]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로도 잘 알려있지만 금강암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엄청난 바위 천지를 만날수 있다. 돌바다[암괴류]의 폭이10m정도 되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는 2.5km 족히 넘어 보이는 바위들이 많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돌바다[암괴류]는 주로 바위가 물리적 화학작용에 의해 절리[바위에 갈라진 틈]를 따라 물이 스며들면 얼고 녹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령에 의해 주저 앉으면서 만들어진다. 돌바다[암괴류] 밑으로 물이 흘러 대성암[大聖庵] 각해선림 구들장 아래로 숨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선의경지에 불심을 듣는다 해서 <금정 8경> 중 하나인 『대성운수[大聖隕水]』라 하였다.
△. 휴휴정사[烋烋幀舍] 옆으로 범어사 경내 우축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일상을 벗어나 많은 생각을 비우고 채울수 있는공간 템플레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범어사의 휴휴정사이다.
△. 휴휴정사 들어서면서는 고향의 느낌을 주는 담장 사이 길로 경내로 들어서면서 만나게 되는 나한전 마당을 지나게 된다.
△. 범어사 팔상 독성 나한전[梵魚寺 捌相 獨聖 羅漢殿] 부산 유형문화재 제63호 범어사 대웅전 서쪽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 불전의 하나로, 적어도 1706년 이래로 존속했던 위치에서 변함없이 존속해 온 건물이다. 팔상전[捌相殿], 독성전[獨聖殿], 나한전[羅漢殿] 새불전을 모셔 하나의 건물로 꾸민 특이한 불전이다.
※ 팔상전[捌相殿] :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장면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봉안, ※ 독성전[獨聖殿] : 홀로 깨달은을 얻었다는 나반존자[那般尊者]를 봉안, ※ 나한전[羅漢殿] :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16 나한[羅漢]을 모신 전각
△. 나한전과 지장전 사이에 있는 암석에 이름등을 새겨 놓았내요. 무슨뜻 인가도 궁금 하였지만 시간 관계상 패스 합니다.
△. 지장전[地藏殿]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놓은곳이다. 1891년[고종 28]에 양화 대사가 중수하였으나 1988년 불의의 화재를 만나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지장전 안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한 목조 시왕상이 있었는데, 매우 빼어난 조각이어서 절로 환희심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 화마에 사라졌다. 1990년에 대웅전 옆에 있던 탑을 일주문 옆 탑전으로 옮기고 지금의 자리에 지장전을 신축하였다.
크기는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새로 신축하면서 대웅전의 양식을 본떠 다포식이면서도 맞배지붕을 올리고 측면에는 풍파능을 달았다.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을 봉안하였고 문 입구에는 금강역사가 있다.
△. 대웅전 계단 아래 한켄에는 범어사 가람 전경도 설치 되어있다.
△. 범어사 삼층석탑[梵魚寺 三層石塔] 보물 제250호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 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통일신라 흥덕왕[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래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 대웅전 비로전과 미륵전 옆에서 대웅전을 바라 봅니다.
범어사 대웅전[梵魚寺 大雄殿] 보물 제434 경상남도 3대 사찰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중요한 곳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 대웅전은 조선 선조 35년[1602]에 다시 지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는 한 차례 보수 공사가 있었다. 또한....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梵魚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526호 삼존좌상은 범어사 대웅전의 주불로서 개금시[改金時] 복장에서 발견된 불상기문[佛像記文]과 불상기인발원축[佛像記因發願祝]을 통하여 석가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로 조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범어사 은행나무에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후 노슨 묘전[妙全]스님 께서 어느 갑부의 집에있는 것을 이식해 았기때문에 수령이 약500년 넘는다. 범어사 은행나무는 은행이 열지 않아 300년 전에 절에서 맞은 편에 수나무 한그루를 심어줘 그 후로 부터 한해에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고 한다.
△. 성보박물관앞 주차장에 도착 합니다. 범어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것들이 많이 있다. 기관별로 지정문화재 된것을 살펴 보면 범어사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를 비롯해 국가 지정문화재 9점, 부산시 지정문화재 35점. 문화재자료 16점 등 모두 60여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 범어사 조계문[曹溪門] 보물 제1461호
가람[伽藍] 진입로에 순차적으로 세운 삼문[三門] 중에 문으로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며, 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지붕을 받치므로 일주문[一柱門]이락도 한다. 조계문[曹溪門]은 기둥 2개만으로 지지가 되는 어느 사찰의 일주문들과 달리 자연암반 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서 3칸을 형성했다. 한국 사찰에서는 그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광해군 6년[1614] 묘전[妙全]화상이 창건한 후 숙종 20년[1694]에 수리했으며, 숙종 44년[1718]에 둘기둥으로 교체해서 자금에 이른다. 대웅전[大雄殿]을 지은 조헌[祖軒]스님이 도대목[都大木]을 맡았던 까닭에 두 건물의 법식이 거의 동일하며, 조선 중기의 다포식[多包式] 건죽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 범어사 당간지주[幢竿支柱]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 옛날에는 사찰의 입구에 도량의 경계를 표시하는 깃발이 있었다. 당[幢]이라고 불리는 이 깃발은 나무, 철 등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뜻하는 당간[幢竿]에 달렸으며 당간은 한쌍의 돌기둥 즉, 당간지주[幢竿支柱]에 의해 고정되었다. 고려시대 말기 또는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금정산에는 금샘과 범어사의 설화가 있습니다.
금샘 설화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예로부터 신령스런운 영산[靈山]임을 알려주는 것괴 함께 “금정산”이란 산이름과“범어사”의 절 이름,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설화는“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리 있다. 둘레가 10자[3m]남짓하며 깊이는 7치[21cm]쯤 된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빛나는 우물 곧“금정[金井]”이란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곧“범어[梵魚]”라는 절 이름을 지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범어사 찬건 사적』과『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데 신라 의상대사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동해에 왜인들이 10만 병선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량하려고 했다. 대왕이 근심에 싸여 있는데 끔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스님과 함께 금정산『금샘』에 가서 칠일동안 밤낮으로 기도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알려 주셨다. 대왕이 의상스님과 함께 친히 금샘을 찾아가 기도를 하니 땅이 크게 진동하며 부처님과 천왕과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 등이 현신하여 동해로 나가 왜적들을 격파했다. 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의상스님을 예공재사에 봉하고, 금샘 아래 호국사찰 세웠으니 곧 “범어사” 이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영남의 3대사찰 임을 알수 있는것 같다. <영남의 3대 사찰 : 혜인사, 통도사, 범어사>
또한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범어사 벚어날 무렵 당간지주 있는 주변으로 천연기념물 제176호 등나무 군락지가 있더군요 아마도 금정산에는 등나무들이 많이 보이는것 같기도 합니다. 이곳의 사진을 담았으나 잘 않나와 글로만 남깁니다.
△. 범어사 입구 매표소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운행되고 있더군요 삼신교통 90번 버스 범어사 주차장 ↔ 범어사 입구 범어사 주차장 08:11 ~ 20:11 까지 평일 15분간격 공휴일 4분간격으로 운행 되고 있더군요, 하산 완료후 뒷풀이 식사를 하기위해 범어사역 부근에 있는 남산새벽시장에 들러 간편 식사를 하였지요 이후 택시로 노포역 부산동부터미널 이동 16시20분 부산 → 고양터미널 25.100원×3인 귀가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1무2일 산행길은 장거리 였음에도 불과하고 고양에서 부산까지 가능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다음부터는 장거리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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