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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5】05-3 부산에는 곡선미가 아름다운 성곽이 있는 금정산에 역사의 흔적을 따라서...

◐ Climbing[2015] /├ ⑤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5. 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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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진산이며 100대 명산 금정산[금정산성]



 

 

      ○ 부산 금정산성[釜山 金井山城] 낙동강 하구와 동래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금정산성의 성벽은 금정산의 능선을 따라 지형의 굴곡과 높낮이에 맞춰 쌓았고, 높은 봉우리들을 이용하여 봉우리 자체가 성벽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금정산에 언제부터 성을 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에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 때부터 이미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며, 또 일부의 유구[遺構]를 두고 신라시대에 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지금의 산성은 1703년[숙종 29]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667년[현종 8] 현종이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을 불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계책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성이 신라 때부터 있었던 성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금정산에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국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러 차례 대두하였으며, 1702년[숙종 28]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요청에 의해 성을 쌓기 시작하여 1703년에 준공하였다. 당시 완공된 성은 둘레 9,011보, 높이 15척으로,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을 둔 방대한 산성이었다. 특히 서문에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적대[敵臺]를 성문 양쪽에 설치하였으며, 서문 오른쪽에는 3개의 아치형으로 된 홍예수구[虹霓水口]를 설치하여 성안의 물이 밖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뒤 1707년[숙종 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고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다. 이후 1808년[순조 8] 금정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금정산성의 면모를 새롭게 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금정산성의 출입로인 장전동에 금정산성부설비[金井山城復設碑,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15호]를 건립하였다. 금정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는데, 평상시에는 중군[中軍], 승병장[僧兵將], 군기감[軍器監], 도계도[都計導], 군뢰[軍牢], 문직[門直] 등의 직책을 가진 자와 군병 등의 상비군 및 인근 사찰의 승려가,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등 3개 읍 소속 군사와 3개 읍 소재 사찰의 승려들이 군사로 차출되어 방어토록 하였다. 금정산성은 일제강점기에 관아 건물 등이 파괴․몰수당하였다고 한다. 부산광역시와 금정구에서는 매년 연차적으로 성곽, 성문, 망루 등 성곽 시설을 보수․정비하고 있다.

 

. 이곳쯤 오니 더위가 느껴집니다.

이잰 상의 하나 벗고 잠시 휴식을하며 이야기 합니다..

여기부터는 금정산성을 또렷하게 조망할수 잇는 지역이라 지나는 길에 뒤돌아 보면 아름다운 성곽을 조망한다. 

 

 

 

 

 

. 의상봉[義湘峰] 620m

금정산 제4망루가 있는 위쪽의 봉우리로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봉우리이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운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버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이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龍峰]이 되었다. 이 두봉우리를 합쳐 용호봉[龍虎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하여 오늘에도 부르고 있다.

 

 

 

 

 

. 뒤돌아 보게 되는 지점 멀리는 제3망루 있는 지점이며

지나온길이라 남다르게 느껴지는 곡선미가 또렸한 성곽길이다. 또한 금정산성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불쑥 솟아

있거나 탑처럼 보이는 바위들을 흔이 볼수 있는데. 이들은 성곽의 일부처럼 성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젠 제4망루 주변으로...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바람소리와 함게 어울어져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 으상봉이 앞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가야할곳 정상인 고당봉도 이젠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 제4망루 뒤편으로 보이는 의상봉

의상봉은 두개의 봉우리를 서로 일맥상통한 이름으로 아래로보이는 암봉은 용봉, 위쪽에 보이는 봉우리는 호봉..

그래서 용호봉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 금정산성 제4망루

제4망루는 중성과 합류되는 북문 남쪽 1.5㎞ 해발 620m의 능선 상에 위치한다.

담장을 쌓고 정면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망루로 복원되어 있으며,

이곳은 의상봉[義湘峰] 바로 남쪽으로 외성[外城]의 동측 성곽과 중성[中城]의 동단이 만나는 삼각점이기도 하다.

 

 

 

 

 

. 금정산성내에 있는 장대 방향 알림 이정표 있습니다.

장대란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지은 장수의 지휘소를 말하며,

금정산성 장대는 금정산성의 중앙에 솟은 구릉 정상[해발475m]에 산성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벽체가 없이 원기둥이 늘어서 있어 사방을 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703년[숙종29년] 건립된 것으로 「동래부지[東來俯誌]」에 기록되어 있으나,

“여지도”, “부산고지도” 등에 장대건물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문화재위원들의 고증절차를 거쳐 2009년 5월 25일 금정구민의 날에 복원되었다.

 

오늘 산행길에 장대 까지는 들러보지 못하였습니다.

 

 

 

 

 

. 일행은 먼저 의상봉으로 향합니다.

그사이 저는 망루에 올라 주변을 살피며 사진을 남긴다. 

 

 

 

 

 

. 이쪽 방향으로 장대가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복원까지 해 놓아다고 하던데... 바라만 보고 지나 갑니다. 

 

 

 

 

 

. 뒤로도 멀리 아침에 출발한 지점도 바라 보면서 올라오는 산객을 담았지요.

제4망루 지점에는 억새 군락지로 보인다. 

 

 

 

 

 

. 의상봉 아레로 바라본 제4망루 이런곳이면 이른 봄날을 상상해 보게 된다.

파란 잔듸가 멋지게 보이지 않을까...?

잘 정리되 있으나 걷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 앞으로는 초소 하나가 보인다.

이 초소는 성곽 보호가 우선이 아닌 산불 감시원으로써 요즘 건조 주위보호 인해 많은 인원이 배치 되어 있었습니다.

 

 

 

 

 

. 이젠 앞에 보이던 의상봉에 올라왔습니다...

좌우로 길게 연결된 성곽이 아름답게 먼져눈에 들어온다.

이쪽으로는 북쪽 방향 붕문 방향이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원효봉” 갈곳 입죠.. 

 

 

 

 

 

. 이쪽 방향은 지나온 방향으로

멀리 우축으로 높은 봉우리가 많은곳이 아침에 출발한 파리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어느사이 멀리도 걸었습니다.. 

 

 

 

 

 

. 이렇게 지나온곳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성곽길이 너무 아름답게 조망 할수 있었으며 박무만 아니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 일행 동료분은 이잰 가슴이 딱드인 다며 기분이 좋은듯 만세를 왜쳐 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런 기분은 누구나 알수 있을것이다.. 

 

 

 

 

 

. 의상봉은 우똑 솟아 잇는 작은 봉우리로써

바람이 불면서 위험하게 느껴저 아래로 바람 피해 정식으로 식사를 합니다.

식사는 어재밤에 출발 하면서 산해익 준비하여 도시락 조차도 찬밥으로.. 한끼를 허기짐을 달래봅니다. 

 

 

 

 

 

. 식사후 어느만큼 왔을까 뒤돌아 의상봉을 바라 봅니다.

두개의 봉우리가 또렸하게 보여진다. 호봉과 용봉이랍니다... 호봉은 용의 승천을 막고 있는 형상 이랍니다... 

 

 

 

 

 

. 원효봉 오르기전에 이런 안내문을 발견 합니다.

아마도 이곳에 분명한것은 김유신 솔바위가 잇는듯 하나 안내문에서도 그 위치를 알수 없다고 하니

아쉽지만 아마도 제가 보기에는 의상봉을 말하는듯해 보이내요... 

 

 

 

 

 

. 이잰 원효봉에 올랐습니다..

원효봉에서는 동래 방향으로 조망이 좋타고들 하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성곽길의 곡선미를 바라보는 것이 넘 좋았습니다. 

 

 

 

 

 

. 원효봉[元曉峰] 687m 정상에 도착 하였습니다.

다른곳과는 달리 암봉은 아니였으며 높이 솟은 봉우리로 조망터로써도 아주 좋내요..

오늘은 박무로 인한 시야 확보 어려워 그냥 희미하게만 보인다..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이야기 나누는 곳은 노포역 아침에 버스 도착한 지점을 찾아 봅니다. 

 

 

 

 

 

. 원효봉[元曉峰] 687m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元曉峰]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 볼수 있고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김유신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있어,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자리에 소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이 땅달보 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뿜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다.

 

 

 

 

 

. 원효봉 넘으며 다시 내리막 성곽길을 따라 하산합니다.

잘 정리된 등산로 처음으로 테크길을 만나게 된다. 물론 중간에 나누 계단은 있었으나 성곽길을 올라올수 잇었지요.  

 

 

 

 

 

. 이쯤에서는 가깝게 보이는 금정산의 정상봉 “고당봉”이 선명하게 보이며

북문 관리소 건물도 지붕만 보인다. 

 

 

 

 

 

. 봄철이면 늘 느끼는 질척거리는 등산로 오늘은 이곳부터가

등산화 밑창에 붙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 합니다. 얼음으로 나름은 좋았건만....! 

 

 

 

 

 

. 이런 평단길도 나오면서 휴식할 공간도 보인다.

이젠 앞에 보이는 봉우리만 넘으면 북문을 만나게 쉽게 갈수 잇는 장소입니다.. 

 

 

 

 

 

. 넘어서면서 보이는 북문이 남다르게 멋지게 보이는 장소다.

성곽길 따로 등산로 있지만 저러써는 성곽길을 들어와 인증 사진 남겨 본다. 

 

 

 

 

 

. 이쯤에서 바라보니 성곽에 깃대들을 꼽혀있다.

이것은 복원 작업중 임을 알수 있는 깃대로써 지금은 겨울 시즌이라 공사 중지 시점으로 보이며

봄이 되면서 복원공사는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 복원이 완료된 성곽을 다가와 북문과 함게 사진 남겨 봅니다.

이쯤에 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 왔더군요...

아마도 이시점은 오전11시경 넘은듯 한대... 

 

 

 

 

 

. 북문주변 한컨에서는 이미 자리하여 먹거리 펼쳐놓고 즐긴다

웃음 소리 허탈하게 들려오며 친구들인지 한무리 이루고 좋은 자리에서 자연을 즐긴다.

이렇하듯 우리도 자리펴고 앉아 즐기고 싶었지만 멀길 달려와 시간에 쪽기는 신세

부산동부터미널 16시20분 예약이 되있으니 모든 일정이 빡빡하게 움직여야 한다.

오늘은 이곳까지 포스팅을 준비 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금정산 금정[金井]을 볼수 있는 장소로 이동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불친님 깊은 감사드리며....

이젠 봄이 왔습니다.. “立春大吉. 建陽多慶하시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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