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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자연과 역사 신화와 전설이 깃든 현존 最古 사찰 강화 전등사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4. 6. 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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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전등사



 

    ○ 역사의 섬에 창건된 고찰 전등사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의 섬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손꼽힌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 전등사를 찾아 오면서 큰 도로가 입구에서는 주차료 3,000원을 징수 하더니

전등사 입구에서 주차해 놓고는 들어 가던중 또 입구에서 지난해 2.500원 받더니 금년부터는 3,000원 사찰 관람료를 

징수하며 총6,000원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이상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고찰이며 문화재란 생각에 조용히 입장 합니다... 

 

 

 

 

. 바리켓트 쳐 있는곳을 올라 오다보니 좌축으로는 상점이 보이내요.

늘 사찰 입구에서는 판매 하는것들은 모두가 기념품 위주로 되어있듯 이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팔찌, 목걸이, 염주 제품들이 눈길을 끊어 주내요,

그런대 한결같이 12지신 띠와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걸려 있더군요,,, 

 

 

 

 

. 또한 한켄에는 기념 손수건도...

물론 효자손은 필수겠죠....

 

 

 

 

. 전등사 들어 서다보면 입구로 보이는 커다란 성문을 하나 만나게 된다.

성문은 삼랑성[정족산성]중 서남쪽으로 있는 남문을 만나면서 성곽을 들어서야 합니다.

입구에서는 안내문도 있지만 “초롱꽃”이 반기고 있습니다.. 

 

 

 

 

. 안내문 한번 읽어보고는 성문을 들어 서게 됩니다.

그런대 이곳은 “루해종[樓海宗]”이라 편액되있는대 안내문에는 “종해루[宗海樓]”라 설명 되있더군요,

엣 글짜들은 모두가 우축에서 좌축으로 쓰는것을 늘 보아 왔지만 이곳은 반대로 쓰여진것을 볼수있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조금은 이해가 않되던 부분이였습니다.. 

 

 

 

 

. 계단 옆으로는 높은 산중에서 보던 “바위취”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바위취와 바위떡풀은 같은 종 으로만 알았었었는데 꽃 모양이 다르더군요,,

참고 하시면 됩니다..

 

 

 

 

. 삼랑성 종해루[三郞城 宗海樓] 사적 제130호

이 문은 정족산성의 남문으로써 성은 고대 토성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으로 불리고 있다.

이후 토성 자리에 표면이 거친 할석[割石]으로 성을 쌓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은 성 안팎을 할석으로 겹축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를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성벽이 꺾어 도는 곳마다 10여 개의 곡성을 이루며,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치성[雉城]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 정족산성 종해루 바로 옆으로 성곽길이 보인다.

 

 

 

 

. 이재는 종해루 정족산성 남문으로 들어섰읍니다... 

 

 

 

 

. 산딸나무 요즘 꽃을 피우고 있기도 합니다..

산딸나무는 꽃수술이 딸기같아 이름이 붙여진듯 하기도 합니다... 

 

 

 

 

. 조금 오르던길에 좌측으로 보이는 다리 교각이 하나 보인다.

역사적인 가치를 느껴지지만 예전에는 이 다리를 넘어가면 전등사 부도군 있는 곳으로 들어가던 다리 같아 보인다.

앞으로 들어가면 부도군을 만나게 된다.. 

 

 

 

 

. 은행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나무로써 2그루가 있으며

나무 둘레는 5m쯤 되며 수령은 약600년 길상면에서 관리한다고 합니다.. 

 

 

 

 

. 윤장대[輪藏臺]

윤장대는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을 넣어둔다.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 하도록 만든 일종의 장려각으로

불교경전은 사실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는 사람도 많다.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구로,

중국 양[梁]나라의 선혜대사[善慧大士]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 울창한 숲속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아주 좋은 풍경들로 시원함에 찾아 보는것도 너무 좋은것 같습니다.. 

 

 

 

 

. 아직까지는 정족산선[삼랑성] 내부이며 이재 부터는

전등사 대조루 있는 곳으로 올라가 들어서기만 하면 사찰 경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 조금 오르던중 산중에서 즐겨 보던  산부추 꽃을 피웠습니다.. 

 

 

 

 

. 또한 한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물론 야외 다원으로 보입니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들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 죽림다원으로 다원 풍경을 이렇게 사진을 남겨 봅니다..

 

 

 

 

. 대조루 들어서는 입구 한켄에는 붓꽃도 이렇게 피였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반기는듯 합니다..

 

 

 

 

. 전등사 대조루[傳燈寺]

전등사 대웅전에 오르는 중정 바로 앞에 있는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을 오르는 문루의 역할을 하며 2층 문루

처마 밑에 전등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은 2층 건물로 그 풍채가 아담하나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1층 한옥이다.

1839년 승탄인이 건립하여 전등사의 정문으로 사용한 2층 누각으로 정면 5간, 측면 2간의 모조와가인데

각내에는 장사각, 선원보각, 취향당의 형판이 있다. 원래는 이층누각이었으나 퇴락되어 현재는 단층 건물로 남아 있다.

초립공집 팔작지붕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 대조루 들어서면서 죽림다원을 내려다 봅니다..

역시나 울창한 숲길 너무 인상적으로 힐링 되는듯 하내요..

이잰 대보루 문루로 들어가면서 바로 앞에 나타나는 대웅전을 맞이합니다..

 

 

 

 

. 전등사 대웅전[傳燈寺 大雄殿]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후기 건축물로서는 으뜸간다.

특히, 내부의 불단위에 꾸며진 닫 집의 화려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며,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데,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 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 전등사 대웅전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편액되있다.

 

 

 

 

. 전등사 대웅보전[傳燈寺 大雄寶殿] 나부상[裸婦像]

대웅보전은 자채만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이나 더 유명해진것은 대웅보전 지붕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으로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뿐 짓을 경고하며

죄를 씻게 하기위해 4귀에 각4개의 나부상[裸婦像]으로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 전등사 목불삼존불상

조선 광해군 15년[1623]에 조성된 불상으로 원만한 상호와 양감, 균형감, 조각 솜씨가 뛰어난 목조불상이다.

삼존불은 삼세불이라고도 하며,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세 명의 부처님을 말하는데

현세불인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모시기도 하고 과거, 현재, 미래불을 함께 모셔 삼존불이라고도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에 보관되어 있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25㎝이고 무릎폭은 88㎝로 원만한 얼굴에

유난히 큰 귀를 하고, 당당한 어깨와 가슴,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채 결과부좌하고 있다.

신체는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치고, 가슴께에는 군의를 묶은 자락 위에 3개의 꽃잎 모양이 있다.

[기도중 사진을 담지는 못하였습니다.]

 

 

 

 

. 대웅전 앞에서 적목당, 종무소 방향으로 담아 본다.

범종루도 보이며.. 차근 차근 설명 하도록 준비 하겠습니다..

 

 

 

 

. 이쪽은 종루로 표기 되어 있더군요,,,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과 근래에 만들어진 범종 등 두 개의 종이 있다.

이 두 범종을 보관하기 위해 종각과 종루로 이름을 달리하여 두 개의 범종각을 세웠다.

현재 대조루 옆의 종루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종이 있었으나 2004년에 명부전 앞의 종각으로 옮기고

지금은 일반 범종이 보관돼 있으며 조석 예불 때 사용된다.

 

지금 보이는것은 일반 범종으로 보관 보단 사용하는것으로 보이더군요,,

보물 제393호는 다음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 전등사 향로전

향로전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노전스님이 지내시는 곳이다.

또한 법당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조선 시대에는 상궁이나 나인들이 기도하던 곳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임법사실로 쓰고 있다.

불공용 제물의 저장고였으며 병인양요때 에는 중군의 거처였다고 전한다.

 

 

 

 

. 전등사 드므[청동수조]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6호

고려충열왕 때 정화궁주가 시주했다는 설과 조선시대 왕실의 원당인 전등사의 전각 보호를 위해

궁중에서 사용하던 것을 모냈다는 설이 있다.

드므에 물을 담았다가 목조건물인 법당에 불이 났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불을 일의키는 귀신이 와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수조 안쪽에는 물고기, 자라가 조각되어 있다. 

 

 

 

 

. 이곳의 계단을 이용하시면 삼성각, 취향당, 정족사고 등으로

올라갈수 잇는 계단이다.

 

 

 

 

. 전등사 약사전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법당 안의 불상은 역시 약사여래 좌상인데 약간 딱딱하지만 아담하고 그런대로 잘 조화된 모습이다.

불상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기에 속하는 석불로 볼 수 있다. 이 전각은 건축 양식은 조선 중기의 다포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달작집이다. 장대석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 기둥에는 약한 배흘림이 있다.

 

공포는 외 1출목 내 2출목으로 초제공과 이제공에 높이는 살미첨자의 끝은 모두 앙서로 되어있고 안쪽은 가둥위의

높이는 공포에서는 관형으로 되어 초각을 하였으나 기둥 사이의 공포에서는 교두형을 취하고 있다.

이 전각의 특징은 다포식 건축이면서도 창방위에 평방이 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 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 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 약사전과 명부전 사이로도 올라가는 길이있어 그길을 따라 삼성각으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명부전 뒤편으로는 지붕을 가르면서 매실 열매들이 잘 익어가고 있내요..

 

 

 

 

. 좌측으로는 약사전, 우축으로는 명부전의 뒷 모습입니다.

 

 

 

 

. 사찰 경내 지도를 보면 이곳이 “극락전”으로

흰색 연등들이 잇는 것으로 보아 극락 연생을 기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 전등사 삼성각[傳燈寺 三聖閣]

삼성각은 산신, 독성[나반존자], 칠성 등 삼성[三聖]을 모신 건물이다.

본래 삼성은 중국의 도가 사상과 관련이 있는 성인들이지만

이 땅에 불교가 전래하면서 불교 사상과 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삼성각 바로 옆에는 약수터가 있으며

약수터 윗 부분에도 동자승과 고승, 산신의 형상 조각물이 놓여 있내요... 

 

 

 

 

. 오늘은 유난히 매실 열매가 눈에 자주 띄이내요.

제철이라 그런가요 아주 탐스럽게 보이내요.. 

 

 

 

 

. 약사전 옆에도 이런 돌탑들로 자신의 마음을 기도 하는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정성 스런 돌탑들..

이잰 명부전으로 자리 옮겨 봅니다.. 

 

 

 

 

. 전등사 명부전

시왕전이라도 불리우는 명부전은 약사전 서남편에 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영조 43년[1767],

헌종 5년[1839], 고종 21년[1844]에 보수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내부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그 외에 시왕, 귀왕, 판관, 장군, 동자 등 29상이 모셔져 있다.

 

 

 

 

. 명부전 아래로는 정성스럽게도 부처들을 모셔 놓은곳에는

새들과 고양이들이 눈에 띄이내요..

누군가 먹이를 밑에 놓았더군요,, 

 

 

 

 

. 전등사 범종루[傳燈寺 梵鐘樓] 보물 제393호

중국 송[宋]나라 때[1097] 회주[懷州] 숭명사[崇明寺]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종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부평[富平]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종의 정상부에는 두 마리 용으로 이루어진 종고리가 있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가 있으며,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정사각형 안에는 명문을 새겼는데,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돠 북송 철종 4년[1097]에 주조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위에서 소개한 종루에 있던것을 2004년에 이곳으로 루각을 건설하여 보관하기 위해 옮겨 놓은것입니다. 

 

 

 

 

. 이재는 범종루 앞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며 사진을 담아 봅니다.

우축으로는 대조루 옆으로 “종루”가 보이며, 대웅전 멀리 옆으로는 “강설당”도 보인다.

 

 

 

 

. 다시 사찰내 풍경을 살펴 본다.

우축은“범종루”, 바로 앞으로는“적목당, 종무소”, 그 뒤로는“요사채”좌축으로는 사찰을 내려가는 길입니다. 

 

 

 

 

. 이곳은 종루 풍경 입니다.

한장 남겨보고... 

 

 

 

 

. 대조루 옆으로는 멀리 전망 할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내요. 

 

 

 

 

. 여기는 대운전,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 앞마당에

높게 만들어 놓은 계단과 화단을 만들어 놓았내요. 끝으로는 명부전이 입니다. 

 

 

 

 

. 대웅전 안내문 앞에서 읽어 보고는 추녀를 올려다 보내요.

아마도 신기함에 올려다 보았을 것이며 어디서나 볼수 없는 신비로운 전설을 느낄수 있는 전등사 대웅전을

마지막 사진으로 전등사 1부 답사는 정리 할려 합니다.

오늘은 이곳을 찾게 된것은 그동안 와이프 몰삼감기로 한달여 싸움을 하다 오늘이야 조금 거동을 할수 있기에

입맛을 디찾아 볼까 하는 마음으로 조금 걸으면서 분위기 전환 차원으로 찾은 강화 전등사 답사길 이였습니다.

몰론 아들놈은 덩달아 좋아라하며 가방까지 대시 매고 앞장서며 엄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을 다녀오며 조금씩 음식을 양껏 먹으며 원기 회복 하였답니다.

요즘 감기 무섭내요, 불친님들도 모두들 건강주의 하시길 바래 봅니다.

감사드리며 다음은 전등사 2부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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