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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삼남지방 조운길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였다는 월곶돈대 & 연미정을 찾아서...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4. 4. 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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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월곶돈대 & 연미정



 

    ○ 월곶돈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년[영조 20]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하였고 1891년[고종 28] 조동면[趙東冕]이 중수하였으며 1931년 유군성[劉君星]의 특지[特志]로 보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6·25전쟁 때도 파손되어 전후에 중수하였고,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구조는 팔작지붕 겹처마로 10개의 기둥을 돌기둥 석주[石柱] 위에 얹은 민도리집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면적은 약 40㎡이다. ○ 연미정[시도유형문화제 제24호]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탐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월곶진지』,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강화군, 200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1. 문화재청 홈페이지

 

. 강화 염화강 관문격인 연미정 정자가 속해있는

월곶돈대를 찾아가 봅니다..

 

 

. 강화군에는 수많은 둘레길들이 있지만

강화 나들길중에 심도역사문화길 1코스에 속에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원래는 군사지역으로 민간이 통재구역이였으나 2008년 부터는 통재구역이 해재되면서

지금은 자유롭게 드나 들수 있는 곳입죠..

 

 

. 안내문에는 將武公[장무공] 황형장군과 연미정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놓았으며

황영장군께서 향년62세로 천수를 다하셨다 부음에 접하신 중종왕께서는 크게 슬퍼하시면서 시호를 장무로 추증하시고

연미정 3만여평 전지역을 하사 하셨으며 지금까지 후손들이 매년 음10월1일 자성에 제례를 거행 한다고 한다.

그래서 비석에는 “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장무공황형장군택지비]”라 쓰여있다. 

 

 

. 연미조범[燕尾漕帆] [화남 고재형의 시 1846~1916]

 

燕尾亭高二水中[연미정고이수중]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檻前通[삼남조로함전통] 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浮浮千帆今何在[부부천범금하재] 떠 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산시아조순고풍] 생각건데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 연미정은 “창원[회산] 황씨 장부공파 종친회”에서

매년 제례을 지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 월곶돈대를 들어가 보겠습니다.

들어가는곳은 이곳 한곳뿐입니다.. 들어가는 길은 염화강을 보고 서쪽면에 위치 하고 있습니다.

 

 

 

.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는 “꽃다지”꽃들이 피여 있더군요, 

 

 

 

. 월곶돈대 문을 들어서면서 동북쪽 방향으로 정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공부를 하던 곳으로 제비꼬리 닮았다 하여 붙여진 “연미정”이다.

 

 

. 연미정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들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은 약500년 이상씩 되어보이는 나무들이 연미정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으면서 연미정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더군요.. 

 

 

 

.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문수산 아래 마을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 월곶돈대 울타리 넘어로 보이는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면서

김포와 강화경계 지잠인 염화강[강화해엽]이 시작 되는 지점으로 강넘어로는 북한쪽 개풍군이 잘 보인다. 

 

 

. 이곳의 주변은 강너머가 북한 방향이다 보니

그동안 민간인 통재를 하였으며 지금도 사진 촬영을 엄격히 하고있는 지점이다.

 

 

. 이 방향은 앞에 보이는 진한섬은 남한의 섬으로 “유도”라고 불리는 섬이며

그 섬을 이용하여 들짐승 맷돼지, 노루, 고란이등이 북한으로 왕래한다고도 합니다..

뒤로 흼하게 보이는 섬들은 북한땅으로 개풍군의 모습입니다.

 

 

. 연미정[燕尾亭]이라 편액 되있었습니다. 

 

 

. 천장을 바라보니 다시 만들어진 것이 얼마 않되보이기도 합니다.

 

 

. 연미정 아래로는

“故功臣莊武公黃衡宅[고공신장무공황형택]”이라 새겨진 비석이 서있습니다.

국가적 공로가 큰 황형장군에게 하사 했다고 하였는데

그 증거임을 알수 있게 하는 비석이 아닌가도 싶내요.. 

 

 

 

. 연미정[燕尾亭]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였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염화강이 시작 된느 부분으로[강화해엽] 마치 제비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 지었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정학히 알수 없지만 고려 고종[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잇다고 한다.

 

 

. 이재는 월곶돈대를 나와 염화강변을 바라보기 위해 성벽을 접근해 봅니다.

그러면서 아래로 얼마전에 완공된 조해루를 바라 본다.

 

 

. 내려오면서 다시 뒤돌아 돈대를 바라 봅니다..

 

 

 

 

. 조해루[朝海樓]라 편액 되있으면서 얼마전에 복원 한다고 하더니

이렇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아마도 2012년 초에 완공 된것 같았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어 있다...

 

 

. 인천 강화군의 관광명소인 강화외성 내 문루[門樓]인 조해루[朝海樓]가 연말까지 복원한단 계획하에.

인천시 강화군은 지난해 말 시작했다가 일시 중단한 조해루 복원 공사를 이달 중으로 재개,

5.4m의 높이의 홍예를 포함, 높이 13m,면적 45.56㎡의 1층짜리 목조 누각 형태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총 사업비 20억원이 투입되며 문화재청과 시의 지원을 받는다.

강화군은 강화 유적 복원사업 일환으로 지난 2008년부터 이 일대 발굴조사를 벌이다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정자 연미정[燕尾亭] 주변에서 조해루 터를 발견했다.

조해루는 숙종 5년인 1679년에 지어져 강화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검문소의 역할을 했다.

 

 

 

 

. 조해루 한컨에는 조금 늦은감을 느낄수 있는

냉이꽃들이 활짝피여 있내요...

 

 

 

. 강화나들길 갑곶돈대를 출발하여 월곳돈대까지 염화강변의 철조망 길을 따라

월곶돈대까지 올라와 이곳을 정점으로 다시 강화외성 북문 방향으로 연미정의 주인격인 황형장군묘를

지나면서 강화버스터미널까지가 니들길1코스로 구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강화도에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산적해 있으며 몇번을 찾아 다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문화탐방길

이곳을 이어서도 자주 다녀 볼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응원 부탁드리며 마무리 할렵니다.. 건강 하시고 늘 즐거움을 함게하시는 행복한 시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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