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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1】6.25 전쟁시 인민군의 협력으로 예배 드렸다는 기독교의 뿌리 중화동 교회

◈ Travelog/⊙ 출사 여행지

by 순도리(칠이) 2013. 9. 1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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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 중화동 교회와 기독교 역사관



 

 

. 역사적 의미가 의미가 있는 중화동 교회에서


    ○ 백령도 최초의 중화동 교회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19세기의 바깥으로 밀려든 선교의 물결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 물결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 서해의 백령도가 속해있는 대청군도이다. 대청군도와 인근해역은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해상의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1816년 맥스웰(Murrey Maxwell)대령이 이끌던 선단에 클리포드(H.J.Clifford)해군 대위가 자비로 승선하여 각 지역의 언어를 수집하고 선교 가능성을 탐사하기 위해 백령도에 정박하여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1832년 칼 귀출라프(Karl F.A.Gutzlaff)가 영국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동인도 회사 무역선에 통역 겸 선상 의사로 승선하여 개신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그는 클리포드의 비망록을 기초로 하여 백령도에 정박해 있으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여러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전 백령도에 임시 정박하여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고 기다리는 역할을 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 후 1898년 백령도 진의 첨사 자문역으로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이 복음의 씨앗을 받고 그 곳에 유배 되어온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한학 서당에 증화동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1884년 9월 20일 알렌 선교사의 조선 입국보다도 50여년이나 앞서 복음의 씨앗이 백령도에 떨어졌고 조선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최초의 중화동 교회가 세워졌다는데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백령도는 많은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백령 기독교 역사관을 비롯하여 허득 참사 기념비 등 여러 선교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져 있고 심청전의 인당수가 가까이 있어 심청이의 유적지 이기도 하다. 특히 백령 기독교 역사관은 군비를 들여 지어진 역사박물관으로 백령도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유적지이다. 1884년 황해도 송천에 최초의 자생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형제가 1898년 중화동교회 설립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했던 것도 소중한 역사다. 중화동교회는 1898년 8 월 25일[음력] 중화동의 한문서당에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경조 장로의 집전으로 설립예배를 드리게 됐다. 백령도는 이 중화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됐으며, 지금은 해병대 백령교회 등 군부대교회를 비롯하여 10개 교회가 백령도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또 백령도 교회들은 힘을 모아 중화동교회 옆에 “백령 기독교역사관”을 설립하고, 지난 2001년 11월 20일 준공예배를 드렸다.

 

 

. 중화동 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중화동교회를 올라가 봅니다..

우선 들어가는 계단 옆으로는 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150여년된 팽나무”

 

이곳의 팽나무는 150여년 수령의 자생식물로서 자연 그대로로의 모습으란직하고 있는

백령도의 생태학적, 학술적 보존 가치ㅅ가 높은  이 고장의 귀중한 산림 문화유산 입니다.

내방객 여러분 들께서는 자생식물 보호에 협조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보호시설물을 훼손할시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 법률 제79조에 의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됩니다.

라고 웅진군 군수 명의로 안내 되있었다.. 

 

 

. 이곳은 교회 주차장 옆에 있는 교화 사택이면

앞에 보이는건물은 화장실입니다.. 

 

 

. 교화로 오르는 계단옆에 있던 팽나무에 왠 벌때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위험헤 보이는 계단 오름길 조심조심 오랄가라는 가이드 말에 바라 보게되었지요.

연실 들락날락 하는 말벌 벌때들 무섭더군요... 

 

 

. 팽나무 등지고 계단을 약 50여개 올라가면 중화동 교회

예배당을 만나게 된다.  

 

 

. 지금 까지도 울린다는 중화동교회 종소리

오늘은 한번듣고 싶어집니다. 옛날 생각하며..

이곳은 지금도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합니다.. 

 

 

. 계단 끝으로 교회 주탑을 만나면서 우축으로는 무궁화가 있으며

천연기념물 지정된 그곳을 들어가 봅니다. 

 

 

. 중화동 교회에 있는 무궁화는 기념물로 지정되있다.

 

“웅진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1호

 

백령도 중화동 교회 앞에 있는 연화리 부궁화는 높이가 6.3m이며 국내에서 제일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모습도 빼어나다. 꽃잎과 꽃술 부분이 붉은 재래종으로 섬바람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무궁화는 수명이 보통40~50년이므로 수령이 100년 안팎인 연화리 무궁화는

매우 이래적인 것이며 생활문화적 가치도 아주 크다. 

 

 

. 뒤롤 돌아가 교회의 주탑 십자가와 교회 종을 담아 봅니다. 

 

 

. 대한예수교 장로회 중화동 교회 현판을 담으며 본당 예배당을 들어가 봅니다. 

 

 

. 들어서면서 지금은 텅텅 비어있는 예배당의 지금의 모습은

아직예배보기 이른시간 오전 10시5분의  조용함에 예배시간을 기다린다.. 

 

 

. 피아노와 연단은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 교회를 재건축하며 새로운 건물에는 옛보습을 찾을수 없지만

어디선가는 그 모습의 향취를 느낄수 있기도 합니다.. 

 

 

. 성가 합창단의 자리 지금은 비여 있내요... 

 

 

. 즉 예수를 믿으라는 글귀 같아 보이내요...

좋은 말입니다.. 누구나에게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 약 1시간후면 이곳에 꽉체워진 교인의 에배 관경도 보고 싶었지만

여행사 스케즐 때문에 어서 서둘러 주차장을 향해야 한다. 

 

 

. 예배당 들어가는 문옆 벽쪽에는

성경책없이도 교회를 찾으면 누구나 성경책을 이곳에서 볼수있도록 구비 되여 있군요.. 

 

 

. 조용 하기만 한 예배당 창문으로 부터는 오전 햇쌀이

따뜻하게만 느겨진다..이잰 그날을 회상해 보지만 종교는 다르기에 여기 까지밖에 볼수가 없더군요...  

 

 

. 중화동 교회 100주년 기념비  

 

 

. 본당 주탑으로 십자가도 바라보며..... 

 

 

. 뒷편 마당에는 2001년에 약3역여원 들여 새롭게 지어 중공 하였다는 

백령 기독교 역사관을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마당에 있는 선교사에게 세레를 받았다는 7명의 신도들을 기리는 기념비도 있구요..

읽어보고 역사관을 들어 갑니다. 

 

 

 

 

 

 

△▼△. 백령 기독교 역사관 [白翎 基督敎 歷史館] △▼△

 

 

. “백령 중화동 교회 살립사”에 관한 이야기도.. 

 

 

. “백령도 기독교 역사 기념관[白翎島 基督敎 歷史 記念館]”의

이야기도 잘 설명 되있다 [클릭 하시면 큰 이미지로 볼수 있다..] 

 

 

 

 

 

 

 

. 한국 개신교 전래 역사

 

개신교가 한국인에게 전도하기 시작한 것은 1832년 7월 17일에 독일인 목사 귀쯔라프[Karl F.A. Gutzlaff]가

백령도와 군산만에 기항하여 주기도문을 한문과 한글로 번역한 때부터이다.

이때 감자씨를 도민에게 주며 그 재배법을 일러 주었고, 포도주 만드는 법도 알려 주었다.

또한 1873년에 로스[Ross]목사가 만주 전도여행 중 서간도의 한국인 부락을 방문하였고,

3년 뒤에는 한국 외초의 개신교 수세자[受洗者]인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 등이 만주 우장[牛莊]에서

머킨타이어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수정이 1883년 4월 29일에 일본에서 역시 세례를 받았고 농정신편[農政新編]을 저술했다.

이미 1875년부터 예수 성교[聖敎] 문답서를 비롯하여 신약성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는 일에

로스 목사와 협력하던 서상륜이, 1884년 초에 황해도 송천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를 세워 성서를 반포하기 시작했다.

송천[솔내]교회를 일컬어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요람'이라고 백낙준 박사는 말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주재 의료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이 인천에 상륙한 때[1884. 9. 20]보다 수개월 전에,

한국 토착민이 솔선하여 세운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 전시관에 우리나라 선교사들의 역사를 볼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 귀쯔라프 선교사

1816년 중국 대사를 수송하던 영국 함대가 서해안에서 해로탐사를 하며 접근했던 곳이 바로 백령도다.

기독교 복음전파의 시작인 셈이었다. 이후 영국 런던선교회 파송 선교사인 귀쯔라프가 동인도회사

소속의 함선을 타고 들어와 통상에 실패하고 백령도에 들러 복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귀츨라프는 백령도 이외에도 고대도 원산 등을 돌며 쪽복음을 전했다.

 

○ 토머스 목사

1840년 9월7일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으며 런던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 부임하였다.

1866년 한국선교를 희망하여 내한 1865년에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 황해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를 했다.

이듬해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가 1866.9.2. 평양 대동강 양각도에서 순교했다.

토마스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 순교당한 첫 번째 선교사였다.

그를 처형한 박춘권은 1899년 세례를 받아 영수가 되는 이적을 낳았다.

1865년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 황해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를 했다.

이듬해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가 순교했다.

토마스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 순교당한 첫 번째 선교사였다.

 

알렌 선교사와 초대 당회장이였던 언더우드 선교사 등 이야기들을....

 

 

. 초대 당회장 언더우드 선교사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 감독하던 선교사 언더우드목사는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이었다.

그는 성경과 찬송가 번역, 대한성교서회, 황성기독교청년회 사업 등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평안도와 황해도의 교회들을 순회하는 도중에 1900년 9월 26일경 평양을 출발하여

진남포, 은율, 풍천을 거쳐 소래에 도착했으며,

6주정도 지나 1900년 11월 8일 목요일[음력 9월 17일] 언더우드 목사 내외는 여전도사 김씨 부인의

안내를 받아 중화동 교회를 방문하여 언더우드 목사의 집전으로 7명에게 성례식을 베풀었다.

이날 세례자는 허 득, 허 근, 허 권, 허 륜, 최영우, 김흥보, 허간 등이었다.

 

모두 담아 올려 볼수있겠지만 너무 잚은 시간에 많은것은 무리하여 이정도만 소개 하겠습니다. 

 

 

. 중화동 교회 뒷편으로 기념비 있는곳을 향하다 보면

향나무 한그루가 자리 하고 있으며 범상치 않아 보이나 자료가 없다. 

 

 

. 기념비와 초기에 사용되던 교회종과 함게 역사관 앞을 자리하고 있다. 

 

 

. 중화동 교회에서 연회리 중화동 마을을 바라본다.

백령도 남쪽 방향이다. 

 

 

. 중화동 교회의 관람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백령도 처음 들어왔을때 가이드 분께서 설명하시길백령도에는 기독교의 역사의 의해

불교 문화는 유일하게 백령도에 들어온 것은 용화사라는 사찰만이 들어왔으며

들어 오는 과정에서 어렵게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더만 중화동 같은 역사적인 교회로 인해 백령도 주민중에

많은수의 기독교 교도들이 많이 있는것 같더군요.

종교적인 성향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저는 무신자로써 불교, 성공회,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적 편향은 없다는것을

이곳에서 밝히게 되며 그 어떤 의미 보단 역사적인 편향이 있다는것을 알려 드립니다..

지금까지 보아 주신 분들에게는 감사드리며 다음 포스팅지로 이동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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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1일 일정 : 백령도 입항 → 뚝배기 음식점[중식] → 사곶비행장 → 자연동굴 → 심청각 → 백학펜션 → 선대암 도보여행

→ 장산곳 음식점[석식] → 백학펜션

 

○ 9월 1일 일정 : 두무진 유람선 → 장산곳 음식점 → 천안함 위령비 → 중화동교회 → 남,여 행위바위 → 천안함 피납지 전망대

→ 용트림바위 → 콩돌해수욕장→ 담수호 서해최북단백령도비 → 두메깔국수[중식, 짠지떡] → 백령도항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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