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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프랑스에서 돌아온 문화재 외규장각을 볼수 있는 강화 고려궁지 에서..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3. 1. 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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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고려궁지



 

 

. 강화 고려궁지 [江華 高麗宮址]

    사적 제133호 이곳은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1232년[고려 고종 19]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회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왕이 행차 시머무는 행궁을 건립하였고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1964년 이곳은 사적 제133호 "외규장각"로 지정되었고,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으로 보수 정비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강화동종 등만 남아있다.

 

 

. 강화 고려 궁지를 이렇게 바라봅니다.. 지금 보이는곳은 "외규장각" 이다.

 

 

 

. 울타리 옆길로 이동하여 고려 궁지 입구로 이동 합니다...,

지금 보이는 문이 강화 유수부 이방청 들어서는 문입니다.. 그런대 입장료 받아야 하기에 문은 걸어 잠그어 놓았다...

 

 

 

. 이곳이 고려궁지 입구 계단과 미끄러워질가 눈을 깨긋히 치워 놓았습니다...

 

 

 

. 문화재 알림과 안내 표지 잘 정돈 되어 있더군요... 

 

 

 

.  승평문[昇平門] 들어서는 입구 문에 현판된 글씨 입니다..

 

 

 

. 승평문을 들어서면서 먼져 안내문을 읽어 보도록 하겟습니다..

    ○ 고려시대[高麗時代] 이곳에 고려궁월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崔瑀]는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하였다. ○ 조선시대[朝蘚時代] 고려궁궐터인 이곳에 여러 관청건물을 세웠다. 1622년[광해군 14]에 봉선전[奉先殿:태조 영정을 봉안]을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 당시 소실되고 1631년[인조 9]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으며 1638년[인조 16]에 유수부 동헌을 개수하여 1654년[효종 5]에 유수부 이방청을 건립하였다. 1695년[숙종21] 장녕전[長寧殿], 1713년[숙종 39] 만녕전[萬寧殿]이 차례로 세워져 궁굴의 모습을 갖추었다. 1782년[정조 6] 황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왕립도서관인 외규장각을 건립하였으나 병인양요[1866]때 프랑스군 강화도 습격 하면서 외규장각 안에 보관중이던 서적을 약탈하고 건물을 불테었다. 1964년 고려 궁궐터는 사적 제133호 "고려궁지"로 지정 1977년 북원 정비되어 유수부 동헌, 이방청, 강화동종,과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이 있다.

 

 

. 이정표 보고는  발굴지 돌아 강화유수부 동헌, 외규장각, 강화동종, 이방청으로 돌아 보겠습니다.

 

 

 

. 발굴지 안내도 앞으로도 발굴할지역이 남아 있더군요..

어서 빠른시일내로 발굴이 완료되어 복원이 되었으면 한다.

 

 

 

. 앞으로 발굴 한다고 하며 벌목 작업을 하여 놓았더군요.

 

 

 

. 사진상 좌축으로 강화 유수부 동헌 그곳을 먼져 들러 보겠습니다.. 


▣ 강화 유수부 동헌[江華留守府 東軒]

 

 

. 강화 유수부 동헌 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유형문화재 제25호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유수가 업무를 보던중심건물이다. 1638년[인조16년]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였고. 1769년[영조 45]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顯允觀]이라 하였다. 명위헌[明威軒]이라는 현판은 영조 때 명필필인 백하 윤순[尹淳]이 쓴 것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치마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정비 되었다.

 

 

. 강화유수 오른족으로는 우연별장, 호방, 공방, 의 모습이다. 

 

 

. 강화유수 왼쪽으로는 좌연별장, 이방, 예방, 의 모습이다.

 

 

. 명위헌[明威軒] 이라는 현판은 영조 때 명필필인 백하 윤순[尹淳]이 쓴 것이다.

 

 

 

. 강화유수 집무실 같아 보인다. 명위헌 우축으로 있었다.

 

 

 

. 명위헌 건물을 외규장각으로 이동하며 담아 본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재판소 같은곳이여서 상상만으로도 그때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듯 하였습니다..

 

 

 

. 외규장각 마당에서 바라보니 건물 뒤편쪽으로는 비워 있는듯 하여 궁금해진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관람이 벅차다... 다음으로는 외규장각을 돌어가 본다.

 

 


▣ 외규장각 [外奎章閣]


 

. 외규장각[外奎章閣] 프랑스로 건너갔다

다시 귀환한 외규장각이 내부에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란의로 강화도가 보장지처[保障之處]로 크게 주목 받게되고 국왕과 왕실 기록물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1782년[정조 6]에 건립하였다. 왕립 도서관 역활을 하였으며. 왕실과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義軌] 등의 서적과 왕실물품을 보관하였다.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과 여러 건물들을 파괴하여 서적을 약탈하였다. 1995년 부터 2001년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2003년에 건물을 복원하였다.

 

 

. 멀리 한컨에는 회하나무가 그 숫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 외규장각 최근에 복원되어 헌판이 또렸하게 되어 있었다.

 

 

 

.1782년에 황실 서적을 보관 하기위해 만들었다는 왕립도서관 치고 너무나도 작게만 보인다.

전시 되있는 외규장각을 사진으로 담아 보겠습니다.

 

 

. 행장들의 모습을 그려 놓은것을 보면 어마한 형렬로 끈임없이 이어진것을 보아

가름하기 힘들정도로 길어만 보였습니다..

 

 

 

. 물론 원본은 않이겠지만 이렇게 나마 볼수 있는 외규장각 먼길에서 다시 돌아온 보물이였습니다.

내부에는 신발을 벋고 들어가 더 가까이 볼수도 있었지만 신발과 발이 졌어서 이렇게만 담아봅니다.

 

 

. 외규장각[外圭章閣]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草住紙]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다. 병인양요 때에도 외규장각에 보관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프랑스 군의 눈을 자극한 것도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이었다.

 

 

. 학생들은 내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이 나오길래 간단히 여쭈어 보니 외규장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행렬인듯 하지만 그냥 봤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한ㅏㅁ을 망설이게 되어 간단히 설명만 해주고는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 빨리 돌아서 다른곳 까지 둘러 봐야 하기에 발길을 서둘러 봅니다.

 

 

 

. 저는 금연 한지가 15년이 되어 가지만 지금은 금연 구역이라는 표지가 새롭게 느껴지는군요..

당연히 이런곳에서는 금연이 되야 겠지요..

 


▣ 강화 동종[江華 銅鐘]


 

. 강화 동종의 원래의 것은 강화 역사관에 있으며 이곳에 있는것은 북원한 동종이엿습니다.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1711년[숙종 37]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이다. 높이 198cm 입지름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다. 몸통 중앙에는 굵은 줄이 들어있고, 그 아래에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문[城門]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 되었다. 종각[鐘閣]은 당시의 강화산성 남문 주변인 김상요 순절비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 때 고려궁지로 이전 되었다.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 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겨 보관 전시하고 있다.

 

 

. 강화 지역에서는 이곳에서 새해맞이 타종 행사를 하였군요..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 강화 유수부 이방청[江華留守府 吏房聽]

 

 

. 이방청 족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이방청 뒷뜰의 모습 뒷곁입니다.

 

 

 

. 눈이 치워진곳으로 따라 오다보니 앞마당으로 들어 갈수 있더군요.

 

 

 

. 이방청 앞마당입니다.. 이곳에서는 강화유수의 업무를 보던 행정실입니다.

 

 

 

. 건물은 너무커서 랜즈속에 들어가지 않으니 짤라서 담아 보겠습니다.

이방청 우축 입니다.

 

 

. 이방청 중앙 건물 'ㄷ"자 모양으로 되있었습니다.

    유형문화재 제26호 강화유수부의 행정 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곳이다. 1654년[효종 5]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1783년[정조 7]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수리하였다.이후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으로 정비되었다. 구조는 "ㄷ"자형 단층기와집으로 방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 규모다.

 

 

. 이방청 좌축 건물로 이곳은 부엌이 붙어 있더군요.

 

 

. 이방청 중앙 건물로 올라와 부엌방향으로 담아 봅니다.

 

 

 

. 부엌 건물에서 이방청 우축을 바라봅니다.

 

 

 

. 이방청을 돌아 뒷켠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축으로 보이는 문이 이방청 대문입니다.. 지금은 잠겨놓아 다닐수 없었다.

 

 

 

. 다시 이방청을 둘러 보고 있습니다..

 

 

 

. 이방청 대문입죠..

예날에는 저문으로 들어와 업무를 보기 위해 줄을 서있던 보습 드라마에서 본것 같습니다..

 

 

 

. 뒷켠으로 돌아 가는대 이곳은 부엌일을 보던자리 같아 보엿습니다.

부엌 뒤편입니다..

 

 

 

. 이방청 뒷켠으로 돌아 나가면서 동료 한분은 눈속을 파해치면서 뭔가 찾고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찾더군요..2개 찾아 하나씩.. 맛은 꿀맛 이였습니다.

 

 

 

. 뒷켠에 굴뚝도 에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엇습니다..

 

 

 

. 이렇게 강화 고려궁지를 돌아 보았지만

입장료 : 900원 으로 외규장각을 볼수 있엇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가 풀린듯 하다 다시 추워질 기세 입니다..

많이 추워진 날씨에 건강들 조심 하셔요.

 

졸려피곤해미안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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