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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9】갈매기 벗삼아 여생을 보내던 황희 선생 반구정과 기념관을 알아본다.

◈ Travelog/⊙ 출사 여행지

by 순도리(칠이) 2012. 8. 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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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반구정 [伴鷗亭]



 

 




    ○ 반구정 [伴鷗亭]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1449년[세종 31] 황희[黃喜]가 87세의 나이로 18년간 재임하던 영의정을 사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다. 전국 8도의 사림들이 선현을 추모하는 승적[勝蹟]으로 수호하여 내려오던 곳이었는데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그후 황희의 후손들이 복구하였으며, 1967년 6월 옛 모습으로 다시 개축하였다. 문산의 임진강변에 자리하여 앞에는 널찍한 모래톱이 있다. 맑은 날 정자에 오르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 반구정 옆에는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이 있다. 1452년[문종 2] 황희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하고, 1455년[세조 1]에 유림들이 그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반구정 옆에 앙지대(仰止臺)와 사당을 짓고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영당은 6·25전쟁 때 전소된 것을 1962년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2칸의 규모에 전퇴[前退]는 개방되어 있으며, 측벽은 방화벽으로 되어 있는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다. 기둥머리는 초익공의 공포형식이며, 단청이 단아하다. 내부에는 중앙에 감실을 두고 그 안에 영정을 모셨으며,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반자가 꾸며진 우물천장이다.

 

 


 

.양지대에서 반구정을 내려다 보며 반구정으로 이동합니다..

 


 

. 경기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 반구정 [伴鷗亭] 갈매기와 짝을 이루어 노릴던 정자 라는 뜻으로도 해석 된다.

 


 

. 반구정[伴鷗亭]은 안내판이 있어 읽어 본다.

 

조선초기의 명제상으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곳으로,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라고  이름을 이었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기암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푸른 물이 아래로 굽이쳐 흐르고

송림이 울창하여 좋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

 

미수 허목 선생이 지은 "반구정기"를 보면 "정자는 파주시 서촉15령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때 마다 백구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온다. 서쪽으로 바다는 30리이나" 라고 묘사해 놓았다.

 

내부에는 "반구정중수기" 와 "반구정기" 그리고 한글로 옮겨진 『반구정 중건에 붙이는 글』등 여러 개의 편액이 있다.

 


 

. 반구정을 올려다 본다...

이곳은 내려가는 곳으로 경사가 심해 올라보는 그림으로 나온다.. 뒤로는 양지대 입니다..

 


 

. 다시 올라와 반구정자 내부에 있는 편액들을 볼랍니다..

우선 한글로 본역되어 쓰여진 반구정 중수기[伴鷗亭 重修記]

 


 

. 남상집[南相集] 반구정 중수기[伴鷗亭 重修記]

 


 

. 우당[于堂] 윤희구[尹喜求]의  반구정 중건기[伴鷗亭 重建記]

 


 

.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

 


 

. 반구정자 내부에서 올려다본 임진강 서쪽을 바라보는 보고 있는 양지대[仰止臺]

 


 

. 방촌 황희 선생[厖村 黃喜 先生] 동상을 내려다 본다.

 


 

. 임진간 부근은 북한과 가까운 곳이기에 철조망 높으며 경계가 삼엄하다..

 


 

. 이재부터는 다시 돌아 나와 방촌 황희 선생[厖村 黃喜 先生] 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겨본다.

 


 

. 기념과 편액이다. "방촌기념관[厖村紀念館]"

 


 

 

 


 

 


 

 

 


 

 

 


 

. 나옹대사 [잠깐 나옹대사 츨생에 전설을 알아 본다.]

 

나옹대사는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와 신기리 부근에 있는 까치소 자갈밭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다 한다.

그의 발자취는 양주 회암사지 부근의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에 세운 비석에도 뚜렸이 남아있고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시대이기는 하나 고려 공민왕의 왕사라는 승려로서

최고의 자리에서 숱한 가르침의 말을 남긴 것이 나옹록, 가송집, 등 각종 문헌에도 나타납니다.

양주 회암사 뿐만 아니라 그가 입적한(돌아가신 곳) 여주 신륵사에도 찬란한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물론 창수면 장륙사를 창건하기도 했지만 양주 및 여주의 유적이 더 유명하지요)

 

나옹대사가 출생한 곳에 대한 전설

 

까치소 앞 자갈밭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고려시대 부역에 나가지 못해서 예주[지금의 영해]관청에 끌려가다가

까치소 앞에서 애기를 낳았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애기를 두고 관헌에 끌려갔다고 한다.

관청의 사또가 옷자락에 피묻은 사연을 물어보고 난 뒤, 관헌을 꾸짖고 빨리 돌려보내라고 하면서 부역을 면제 하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낳은 애기를 두고 갔던 자리에 돌아오니 애기는 죽지 않고 수백마리 까치들이 애기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기가 자라서 나옹대사가 되었고 그 개울을 까치소라고 했다. 지금의 까치소는 강폭이 작아지고 흐르는 물도 깊지 않다.  

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신기리와 가산리의 경계지역이고 긴 다리가 놓여 있고 강폭이 좁아져서 옛날보다 물이 깊지 않다.

 

출처 : 영덕군 홈피에서 발취

 


 

. 고려시대 공민왕 12년[1363년~1452년] 조선시대 문종2년까지

생을 마감 하는날까지 [90세] 의 황의 정승의 연보를 잘 적어 놓았습니다..

 


 

 


 

. VCR 영상으로 볼수있는 공간입니다.. 사진으로만 담아 봅니다..

 


 

. 장수황씨[長水黃氏] 문중에서 보관중이던 유물들을 이곳에 옮겨 전시한 것들이 위 모록에 있는것들 입니다.

 


 

 


 

. 풍파존지수세간하사불능평거[風波存止水世間何事不能平去]

세상의 사이에 풍파가 머물러 있는데, 무슨일로 평평하게 하여 없엘수 없나

 


 

. 서각대[犀角帶]

코뿔소 뿔로 된 띠

 


 

. 황희[黃喜]선생 메달

 


 

. 옥벼루

 


 

. 옥서진 [옥으로 만든 종이 누르개]

 


 

. 분재문서

자손들에게 재산분활에 대한 내용을 적은글

 


 

. 산호영[珊糊瓔] 산호로 된 갓끈

 


 

. 파주 지역에 있는 황희선생 유적지들............

황희선생 영당지, 반구정, 황희선생 묘역,등이 있다.

 


 

. 황희 선생 유적지를 지도돠 함게 안내 되있다.

 


 

. 타지역에 있는 홯희 선생 유적지들....

광한루[남원], 소공대[삼척], 옥동서원[상주]등이 있다.

 


 

. 조그만 잘못으로 커다란 피해가 생긴다.

 


 

. 毫釐之差千里之謬 [호방지차천리지유]

 


 

. 백성이 오직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합니다.

 


 

. 民惟邦本本固邦寧 [민유방본본고방녕]

 


 

.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년 12월 11일 ~ 1682년 4월 2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및 유학자, 역사가이며, 교육자, 정치인, 화가, 작가, 서예가, 사상가이다.

 


 

 


 

. 소공대비[召公臺碑]강원도 삼척에 있다.[아래 사진 참고]

 


 

 


 

. 황희선생은 좌의정당시 호조판서 안순[安純]등과 함께 농업인들의 세법에 관해 상소를 올린 내용이

세종실록 39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3번째 기사 내용에 보면

추수기와 풍흉을 3등급으로 나누어 이에 따라 세를 징수하게됬다고 한다. 

 


 

. 세종실록 39권 일부 내용입니다..

 


 

. 업적을 보면 충효사상[忠孝思想], 법치사상[法治思想], 민본사상民本思想],

평등사상[平等思想], 언론자유[言論自由와여론존중[與論尊重]으로

오직 백성을 위해헌신 하겠다는 그의 숭고한 철학에서 필연적으로 정립 정치사상리라고 할수 있다.

 


 

. 윗 내용을 나누어 사진으로 올려봅니다...

 


 

 


 

 


 

. 세종대왕과 함께 18년의 업적을 남기신 명재상 황희 선생 입니다...

 


 

 


 

. 세종 31년 당년 87세로 관직에서 물러나 빈구정에서 갈매기 벗삼아 여생을 보낸곳 입니다..

 


 

 


 

. 황희 선생의 일대기를 간단히 정리해 놓았더군요...

 


 

. 문화재 등록되면서 입장료 징수 하며 관리원에 의해 관리 되고 있지만

황희 선생의 유물 5가지는 장수황씨 종친에서 관리 하던것을 이곳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었다.

 


 

. 이외에도 파주시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고 합니다..

차근차근 찾아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다음은 영당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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