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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일제 수난속 일본으로 건너간 숙용심씨 묘표 후손들의 노력으로 돌아온다..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7. 1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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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용심씨 묘표



 

 




    ○ 숙용심씨 묘표 성종[性宗]의 부인들 중에 SBS에서 방영했던 대하사극 ‘왕과 나’에서 성종이 ‘바람성종’ 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 중에 제 9대 성종[1469~1494년 재위]이 공혜왕후 한씨와 폐비윤씨, 정현왕후 등 계비 2명, 그리고 9명의 후궁 등 총 12명의 부인을 두었었다. 성종의 부인들로는 왕후 : 공혜왕후 한씨, 1계비 : 폐비윤씨, 2계비 : 정현왕후 윤씨, 후궁 : 명빈김씨, 귀인정씨, 귀인권씨, 귀인엄씨, 숙의하씨, 숙의홍씨, 숙의김씨, 숙용심씨, 숙용권씨 이고 이들 사이에서 16남 12녀, 28명의 자녀들을 얻었다. 이 12명의 부인들의 남편이었던 성종. 그들중 11번째 부인이며 후궁으로써는 8번째로 아들은 이성군, 영산군 두 왕자와 경순옹주, 숙혜옹주를 두었다.

 

 


 

 

. 성종왕의 후궁인 서자로써 2명의 아들중에 둘째 아들인 영상군 이전 묘역이 보인다... 

 


 

. 서울시 기념물 제25호 / 시대 : 16세기 전반

으로 지정 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  "『숙용심씨묘비환원기념비』"가 놓여 있다.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숙용 심씨는 본관이 청송으로 청성백 심덕부의 후손이다.

1465년(세조11)에 태어나 1515년(중종10)에 51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슬하에 이성군과 영산군 두 왕자와 경순옹주, 숙혜옹주를 두었다.

 

숙용 심씨는 죽은 후 서울 근교에 예장[禮葬]하였으나 묘가 실전되었다.

그러다가 부산일보 동경 지사장으로 있던 최성규씨에 의해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있는

한 작은 공원에서 묘비와 이에 부수되는 듯한 석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중 대표가 수차 일본을 방문하여 증빙자료를 제시하고,

현지 관청 공무원과 협상을 한 결과 2000년 7월 3일 현지 지방 관청의 허락을 받아

유물을 해체하여 귀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다. 내용은 길지만 여기에 가면 한번 다 읽어보시길 바람니다.

문화재가 하나가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지 일깨워준다.

 


 

. 성금비[誠金碑] 종친회와 종현 영산군 파종회에서 성금을 모금하여

귀환과 함께 이자리에 모시계 된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전 총리의 이름이 있다.

 


 

. 숙용심씨 묘표[淑容沈氏 墓表]

 

모표는 이수.비신.비좌로 되어 있고 이수와 비신은 백대리석 하나로 만들어

화강암으로 만든 비좌에 꽂아 놓았다. 이수에는 뿔이 없는

이무기가 보통인데 여기는 뿔이 있는 용을 구름무늬 속에 표현하였다.

성종대왕 후궁 숙용심씨의 묘가 실재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왕실의 유물이자 증거이다.

 

이 묘표는 일본의 수상[首相] 대장상[大藏相] 등을 지내다가

1936년 암살된 다카하시 고래키요의 기념공원에 있다가

2000년 후손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로 반환되었는데 400여년

일본에 있다가 돌아와 역사적 의미가 더 높다.

 

※ 이수[螭首] : 용을 새긴 형상. 비[碑]의 머리, 인장[印章], 궁전의 섬돌, 돌기둥 따위에 쓰인다.   

※ 비좌[碑座] : 비신[碑身]과 비대석[碑臺石]이 맞닿아 있는 부분, 농대석[籠臺石]. 비석의 받침돌.

※ 비신[碑身] : 비석의 중심을 이루는, 비문을 새긴 돌.

 


 

. 관세위 [제주가 손을 닦는곳 입니다.]

대부분 땡위에 바로 만들오 놓는것이 보편화 된것으로 알지만

이곳에는 기둥을 세워 그위에 올려 놓은것이 특이하다..

 


 

. 망료위 [제향을 마친후 축문이나 방을 태우는곳 입니다.]

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군요...

 


 

. 묘표는 이수[螭首] 비신[碑身] 비좌[碑座]로 되어 있다.

이수와 비신은 백대리석 하나로 만들어 화강맘으로 만든 비좌에 꽂아 놓았다.

 

묘표[墓表], 묘비[墓碑], 묘갈[墓碣]등이 있는대 어떤 뜻인가 알아 본다. 

※ 묘표[墓表] : 죽은 이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등을 새기어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이나 푯말 이다

※ 묘비[墓碑] : 무덤 앞에 죽은 사람을 기릴 목적으로 세우는 비석,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자손 관계, 나고 죽은 때 등을 새긴다.

※ 묘갈[墓碣] : 머리 부분을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비석,

죽은 사람의 이름, 세계, 행적, 출생 및 사망의 연월일, 자손의 대략적 상황 등을 새겨 놓는다.

 

더쉽게 알수있는 방법은

♧ 묘표[墓表] : 누구의 묘인가를 알리려고 세운 석물[石物]이다.

♧ 묘비[墓碑] : 옛 한나라나 당나라 구분대로 4품[品] 이상은 거북 등에

비신[碑身]을 얹고 용머리[龜趺螭首]를 장식한 것이다,

♧ 묘갈[墓碣] : 5품[品] 이하 벼슬아치에게 허용된, 아래는 네모지고 위는 둥글게 한 것[方蚨圓首]이다.

 

묘 옆이나 길 입구에 행장을 기록하여 세워 놓은것 비[碑]는 주로 신도비 이다.

 


 

. 묘표가 모셔진 곳에는 영단을 만들어 숙용심씨를 기리며

뒤로는 2번째 아들인 영산군 이전묘가 보인다..

 

영산군의 어머니 숙용 심씨[淑容 沈氏]의 묘표[墓表]는 일본 도쿄[東京] 다카하시 고레기요[高橋昰淸]공원은

다카하시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대장상과 수상을 지낸 금융계 거물인데 1936년 암살당했다.

그후에는 그의 저택 정원이 공원화 되면서 공원 한편에 남아있던 숙용 심씨 묘표가

2000년 문중의 노력으로 다시 찾아 왔다, 다시 돌아온 묘표를 아마도 아들 묘가 있는 부근인

이곳에 모셔진것 보여지는대 한편 으로는 의문이 든다. [궁금하다..?]

 


 

. 숙용심씨 묘표 있는곳에서 하나 아트센타를 바라 본다..

 


 

. 내려와 숙용심씨 묘표 지역을 한번에 담아 본다...

앞으로 뉴타운 지역으로 이지역 변화가 있을것 같은대 궁굼해 진다...

 


 

. 다시 코앞에 보이는 아들묘역을 이렇게 담아 보았습니다...

여전 모습과는 달리 보였으며 지역 개발로 이런 보습이면 차후에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조선 제 9대 성종의 후궁이자 영산군의 모친 숙용심씨의 묘 앞에 있던 모표있는 곳입니다.

숙용심씨는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원종공신에 오른 심말동[沈末同]의 딸이다.

성종의 후궁이 되어 2남2녀를 두었고 숙용심씨[1465~1515] 중종10년에 51세로 세상을 떠난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큐레이터의 대화 고고역사부 학예연구관 조원교 글에 의하면

국민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묘지명과 전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묘지명을 보면 국민대학교 소장품이 앞부분이며,

국민대학교 묘지명에는 숙용심씨 묘지는 양주 도봉산 무소동[無所洞]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오래전 부터 실존 상태라 찾을 길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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