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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명애와 지위로 영욕의 삶을 살았을 영산군 이전 묘역을 찾아가 본다.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7. 1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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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묘역



 

 




    ○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1490년[성종 21]∼1538년[중종 33].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전[李恮]. 성종[成宗]의 13남으로 모친은 숙용심씨[淑容沈氏]이다. 영산군[寧山君]은 왕자 시절부터 현명하여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로 인하여 여러 번 역모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 《연려실기술》에는 영산군이 중종을 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산군[燕山君]이 들에서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중종에게 말하기를, “나는 흥인문[興仁門]으로 들어가고 너는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가는데, 뒤에 온 자는 마땅히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라고 하자 중종이 매우 두려워하니, 영산군[寧山])은 몰래 중종에게 아뢰기를,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나의 말이 승마[乘馬]보다 매우 날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고는 진산대군[晉山大君]을 대신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고 좇아서 연산군보다 일찍 궐문에 도착하였다. 중종은 마침내 화를 면하게 되었다. 영산군은 이옹[李顒]의 옥사에 연루되어 정국공신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는데 《연려실기술》에는 이옹의 옥사는 중종 2년에 있었고, 영산군은 중종 8년에 막개[莫介]가 반역을 고발한 박영문[朴永文], 신윤무[辛允武] 등의 옥사에 관련되어 귀양갔다가 이홍간[李弘幹]이 아뢰어 석방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살해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배위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군수[郡守] 증 찬성사[贈贊成事] 심순로[沈順路]의 딸이다. 후취로는 경주정씨[慶州鄭氏]가 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燃藜室記述 璿源系譜紀略

 

 


 

. 조선 제9대 성종의 아들인 영산군[寧山君] 이전[李佺 1490 - 1538]과

그의 두 부인 청송 심씨와 경주 정씨의 삼위 합장묘이며 그의 4대의 가족묘역이다.

이 비는 충희공 영산군 신도비[忠僖公 寧山君 神道碑] 이다.

비의 내용을 보다 보면 얼마전에 국무총리를 지내신 이홍구 전총리가 후손인듯하다. 

 


 

. 영산군 이전 묘역

서울시 기념물 제26호 시대 : 16세기 지정 안내표지 입니다.

 


 

. 묘역 1단에 위치한 영산군 증손자 이종[李琮] 묘이다. [비문에는...]

신부인 현풍 곽씨 합폄[愼夫人玄風 郭氏 合窆]

창선대부 강진부정 이종 지묘[彰善大夫 康津副正 李琮 之墓]

 

※ 합폄[合 : 합할 합, 窆 : 하관할 폄] 둘 이상의 시신을 한 무덤에 함께 묻음, 한 무덤에 함께 묻다.

 


 

. 묘역 2단에 위치한 영산군의 손자 이경의[李鏡義] 묘이다.

 


 

. 영산군의 손자 이경의[李鏡義] 묘이며.  [비문에는...]

신부인 창원 황씨 합폄[愼夫人 昌原 黃氏 合窆]

신부인 곡산 노씨 부장[愼夫人 谷山 盧氏 附葬]

명선대부 덕원도정 이경의 지묘[明善大夫 德源都正 李鏡義 之墓]

좌측은 명선대부 덕원도정 이경의와 부인 창원 황씨의 합장묘이며 우측에는 부인 곡산 노씨의 묘이다.

 

※ 부장[附 : 붙일 부, 葬 : 장사지낼 장] 여러 사람의 시체를 한 무덤에 묻음.

 


 

. 묘역 3단에 위치한 영산군의 아들 장흥군 이상[李祥] 묘이다. [비문에는...]

현부인 죽산 안씨 부장[縣夫人 竹山 安氏 附葬]

정의대부 장흥군 이상 지묘[正義大夫 長興君 李祥 之墓]

좌측으로 정의대부 장흥군 이상묘이며 우측으로 부인 죽산 안씨 묘이다.

 


 

. 영산군의 아들 장흥군 이상[李祥] 묘 이다 이곳부터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 영산군의 아들 장흥군 이상[李祥] 묘의 문인석과 망주석 모습이다.

 


 

. 묘역 4단에 위치한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묘이다.

좌축으로는 충희군 영산군[忠禧公 寧山君]과 금릉군 부인 청송 심씨[金陵郡 夫人 靑松 沈氏]의 합장묘이며,

우축으로는 교성군 부인 경주 정씨[交城郡 夫人 慶州 鄭氏]의 묘이다.

 


 

.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묘 앞에있는 문인석과 망주석이다.

그런대 왜 문인석에는 구멍이 나있었다. 혹시 6.25전쟁 당시 흔적이 아닐까 한다.

 


 

. 소나무와 함께 어울어진 묘역 4대에 걸친 묘역으로

16세기~17세기까지의 묘제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전[李恮]의 묘역과 문인석, 장명등 등 묘역 내 부착된 석물들은

당대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므로 기념물로 지정 보존한다.

 


 

. 뒤로 보이는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묘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러면서 최근에 다시 만들어 놓은것 같은 묘비가 2개 보인다. 가까이 가서 알아봐야겠다.

 


 

.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묘 앞에 있는 묘비다. [비문에는...]

충희군 영산군 지묘[忠禧公 寧山君 之墓]

금능군 부인 청송 심씨 부[金陵郡 夫人 靑松 沈氏 祔]

교성군 부인 경주 정씨지묘[交城郡 夫人 慶州 鄭氏 之墓]

 

혼유석[상석]과 향로석이 그동안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듯해 보인다.

 


 

. 좌축의 신묘비에 비문에는

충희공 영산군 지묘[忠禧公 寧山君 之墓]

군부인 경주정씨 부[郡夫人 慶州鄭氏 祔]

가운대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의 묘비. 우축에는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 묘표다.

 


 

. 영산군묘 잉에서 내려다본 묘역입니다. [잉 = 용미, 묘지뒤 윗부분을 말한다.]

 


 

. 황색 표시된 곳에는 영산군 3번째 부인

함흥군 부인 황씨 지묘[咸興君 夫人 黃氏 之墓]

주변에는 문인석, 장명등, 묘비,등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묘이다.

좌축으로 보이는 곳이 영산군 이전 묘역입니다. 

 


 

. 숙용 심씨 묘표가 안치해놓은곳이다.

건너편 아래 쪽 100m쯤 전방에는 그의 어머니 숙용 심씨[淑容 沈氏]의 묘표[墓表]가 있다.

일본 도쿄[東京] 高橋昰淸[다카하시 고레기요]공원 한 편에 있던 것을 2001년 문중에서 찾아 왔다.

다카하시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대장상과 수상을 지낸 금융계 거물인데 1936년 암살당했다.

그의 저택 정원에 서 있던 숙용 심씨 묘표가 이 집이 공원이 되면서 공원 한 편에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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