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덕령 [金德齡, 1567~1596]
본관 광산. 자 경수[景樹]. 시호 충장[忠壯]. 광주[光州] 석저촌[石低村] 출생.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부사 이경린[李景麟], 장성현감 이귀[李貴]의 천거로 종군 명령이 내려졌으며,
전주의 광해분조[光海分朝]로부터 익호장군[翼虎將軍]의 군호를 받았다.
1594년 의병을 정돈하고 선전관이 된 후,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다.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尹根壽]의 노속[奴屬]을 장살[杖殺]하여 체포되었으나,
왕명으로 석방되었다. 다시 의병을 모집, 때마침 충청도의 이몽학[李夢鶴] 반란을 토벌하려다가 이미 진압되자
도중에 회군하였는데, 이몽학과 내통하였다는 신경행(辛景行)의 무고로 체포 구금되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으로 옥사하였다. 1661년[현종 2] 신원되어 관작이 복구되고, 1668년 병조참의[參議]에 추증되었다.
1678년[숙종 4] 벽진서원[碧津書院]에 제향되었고, 1681년 병조판서에 가증[加贈]되었다.
영조 때 의열사[義烈祠]에 형 덕홍[德弘], 아우 덕보[德普]와 병향[竝享]되었고, 1788년[정조 12] 좌찬성에 가증되었다.
1974년 광주 충장사[忠壯祠]를 복원하여 충훈을 추모하고 있다.
생애와 도술을 묘사한 작가, 연대 미상의 전기[傳記]소설 《김덕령전》이 있다.
※ 석거촌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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