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영정[息影亭] 명승 제57호

○ 식영정[息影亭] 일원 명승 제57호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5-1 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창건하여 장인(丈人)인 석천 임억령[石川 林憶齡, 1496-1568]에게 증여한 것이다.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서하당[棲霞堂]이란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고 최근 복원하였다.
[서하당유고 棲霞堂遺稿] 행장[行狀]을 보면[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 爲終老計.]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하당과 식영정이 1560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1533-1592],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등과 함께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環壁堂]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성산별곡』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또한, 송강은 이곳을 무대로 하여 면앙정 송순[俛仰亭 宋純], 하서 김인후[河西 金仁厚],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承]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玉峰 百光勳], 귀봉 송익필[歸峰 宋翼弼]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이곳은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遊賞地]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부용당[芙蓉堂], 서석대[瑞石臺] 등이 있었으나 광주호가
생기면서 일부는 물에 잠기고 현재는 부용당만이 최근 새로 지었다.
식영정 옆에는 1973년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있다.
영일정씨종중 에서 관리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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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입구쪽을 바라봅니다.
식영정 입구를 들어서면서 우축으로 있는 "장서각. 고직사."는 정문에 열쇠를 걸어 놓아 그냥 지나칩니다.
오늘 관람 할수 있는 곳은 식영정에 있는 6개으 누각같은 정자가 있지만
"정서각. 고직사. 성산사.는 아적 복원이 안되어서인지 정문에 커다란 열쇠로 문을 걸어 놓았더군요
나머지는 관람하며 사진으로도 남겨 이어질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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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영정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이라고 하였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 되였지만,
200년 9월 국가지정 명승[名勝]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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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당[芙蓉堂]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遊賞地)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紫薇灘),
견로암(鵑로岩),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부용당(芙蓉堂, 서석대(瑞石臺)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광주호가 생겨 일대가 많이 변형되었으며 부용당 터에 부용당 건물을 최근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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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당[芙蓉堂]은 식영정 옆에는 1973년에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芙蓉堂]을 건립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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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정자를 지었는데, 없어졌다가 최근 복원되었다.
《서하당유고》 행장에 따르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명종 15]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정철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정철이 이곳 성산에 와 있을 때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다.
식영정 건너편에 있는 환벽당은 어린 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놓게 한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이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高敬命],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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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계곡을 형성한 자리에 부용당 자리 하여 숲을 이루고 있어 아늑함에 식영정 사선들이 모여
시조 경연을 하였을만 하다 생각이 주의 풍경에서 느낄수 있었습니다...성산사옆으로 오르면서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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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지 테마를 두고 여행을 한다면 유독 정자가 많은
담양은 정자를 찾아서 여행을 해도 훌륭한 여행지가 될거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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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영정에서 내려다본 부용당과 앞에 연지 연못이다.
배룡나무 꽃피우고 연지에 물이많아 연꽃이 피웠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곳이 없었을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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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별곡 시비 [星山別曲 詩碑]
1972년에 식영정 부속건물로 부용당[芙蓉堂]을 건립하고, 이때 함께《성산별곡》 시비를 세웠졌다 한다.
관직에 오르거나 급제시 심었다는 "배롱나무, 도 함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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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당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론내림길에는 지금에 돌계단으로 만들어 놓아 쉽게 오르 내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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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 정철의 성산별고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
당시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들이 모여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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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억령이 이름을 지었다는 "息影亭"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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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신선에 이많한곳이 어디있을까... 의심케 한다.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며 광주땜이 없을당시에 주변 풍경을 상상하게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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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영정[息影亭]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누정 중 하나다
식영정은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김성원이 지은 정자이다.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는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송강 정철선생이 수학 하던곳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정자가 있다.
김성원 또한 정철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다. 김성원의 사촌이 김윤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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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광주호에는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서석대(瑞石臺)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러 곳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광주호의 준공으로 거의 물 속에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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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마당 쪽이다 뒤쪽으로는 성산별곡 시비가 보인다...
그옆으로는 배룡나무가 관직에 오르때마다 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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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마당 한컨에는 심상치 않게 보이는 소나무 [좀 특이하게 보인다.]
식영정의 역사를 말해 주는듯 하다. 약300년 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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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 가는길에 또 부용당이 눈에 들어온다. 정자에는 부용당[芙蓉堂]으로 되있지만
연지와 함께 부용당[[芙蓉塘] [芙 : 연꽃 부, 蓉 : 연꽃 용, 塘 : 못 당]은 연꽃 연못이란 뜻으로 알려졌다.
식영정 일원에는 정서각, 고직사, 성산사, 등이 있지만 부용당 만큼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 되어 진듯해 보였다.
=♧===다음은 환벽당으로...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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