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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시조 창작가 작품을 모아 전시 한곳 담양 한국 가사 문학관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6. 2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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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한국 가사 문학관[韓國 歌辭 文學館]



 

 




    ○ 한국 가사 문학관[韓國 歌辭 文學館]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한국 가사 문학관[韓國 歌辭 文學館] 전시관 내부에는 가사문학 관련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宋純]의 [면앙집俛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 및 친필 유묵[遺墨] 등이 전시되어 있다. 2000년 10월 완공하였다. 1만 6,556㎡의 부지에 2,022㎡ 규모의 한옥형 본관과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 1,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 5,000권 등이다. 주변에는 가사문학의 주요 무대가 된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연중무휴로 개관한다. 입장료 성인 기준 1인당 2,000원 입니다...

 

 


 

. 들어서는 입구 부터 심치 않아 보이는 동상과 정자 눈길을 끈다..

 


 

. 잠시 들어 오는길 정문을 뒤돌아 본다.

 


 

. 정자에서 않아 있으며 신선이따로 없어 보인다.

 


 

. 호수에는 비단 잉어 노릴고 폭포수 떨어지는소리가

너무 정겹게 보입니다..

 


 

. 호수가 수초도 꽃피우고 잉어도 신선을 즐긴다.

 


 

. 앞에 보이는 전시관이 "한국가사문화관" 입니다.. 안으로 들어 갈려 합니다.

 


 

. 정자 않에서 전시관을 바라봅니다.  시원함을 느낄수 있군요..

 


 

. 작은 분수대와 호수 뒤로는 물래방아도 보인다.. 저곳이 사진 명소 인듯 하던대.....

 


 

. 정자와 분수대 당시에는 없었을것 인대 이렇게도 만들어 놓으니 옛것 처럼 느껴진다.

 


 

. 정자와 호수.. 물속에는 금붕에 비단잉어들이 활기차게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 작은 공간에도 휴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곳들이 정겹다.

 


 

. 전시장 마당에 정자와 물래방아간 옛날에는 청춘 남녀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곳인대

이곳도 그렇게보인다. 의자를 만들어 놓아 사진 담는 젊은 연인들이 있더군요... 명소... 

 


 

. 물래방아 만들어놓아 제일 좋은곳으로 사진들은 많이 담을 장소로 보여졌습니다..

이후 본관으로 들어갈렵니다.. 우선 1층 제3전시실로 들어 갑니다..

 


 

. 대화금

입구 우축에는 영사실 가사문학관의 변천사들을 영상물롤 담아 영사실에서

방영 합니다만 우리는 개인 몇명이 있어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좌축으로 한바뀌 돌아 보겠습니다.

 


 

 


 

.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유품들이며

임억령은 전남 해남군 동문 관동리에서 태어나 7세에 숙부인 임우리에게 글을 배워

8세에 능히 시를 지을 정도로 남다른 재주를 지닌 인물이였다.

14세때 놀재 박상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수학 하였으며... 이후 1577년 담양부사로 담양성산에 내려와

3년뒤 식영정 중심으로 성상시단을 열어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서정시를 마음껏 펼처 보였다 한다...

 


 

 


 

. 소쇄처사[瀟灑處士], 양산보[梁山甫] 작품들이며 호는 소쇄처사[瀟灑處士]로

소년시절 한양에 있던 조광조의 문하로 수학하였으며 17세에 현량과 급제하면서

그해 겨울 기묘사화를 맞으며 어진선비들이 참화를 입고 스승인 조광조가 전남 능주로 유배되자

분통히 여기던 양산보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 하였다 한다.

낙향하여 지금의 소쇄원을 당시에 경영관리 하였다 하며 인근에 소쇄원이 있다.

 

제월당[霽月堂] :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

오곡문[五曲門] : 담장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이라는 뜻으로 소쇄원에 정자와 담장에 써있다.

 


 

. 제월당[霽月堂] 소쇄원에 있는 장자중에 소쇄원 주인인 양산보의 정자 누각에 현판입니다.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유물들이며 작품들입니다.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湛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장성군 황룡면 맥동리에서 태어나 김안국에게 글을 배우고 최산두를 찾아가 학문을 연찬 하였으며

31세에별시 문과에 합격한후 홍문관 박사, 세자시강원 설서, 옥과현감을 역임 하였다.

특히 전자는 소쇄원 시단의 훙성을 알게한 대표작으로 일컫는다.

 


 

 


 

.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의 작품들이며

호는 서하당[棲霞堂], 또는 인재[忍齋]이며 이곳 근교인 광주광역시 충효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창평의 성산에 식영정을 짓고 자연과 서적에 침잠하며 문인들과 활발히 교유 하였으며

한때는 천거에 의해 침량과 제원도찰방의 직책을 받았으나 노모 봉양을 이유로 오래 머물지 았았다.

임진왜란당시는 의병 활동을 하였으니 이어 정유재란 때에 노모를 모시고 동북쪽의 모후산으로 피신하던중

왜적에 의해 73세로 생을 마감 하였으며 유고집으로 서하당유고가 있다. 

 


 

 


.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사생활등을 기록한 일기로 현재도 모현관에 보관중 이라고 합니다.

호는 미암[眉巖] 시호는 문절[文節]이며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김안국. 최산두의 문인으로

1538년 별시 문과에 급제 하여 대사성, 부제학, 전라관찰사, 대사간, 이조판서를 지냈다.

유희춘은 담양의 의암서원, 무장의 충현사, 종산의 종산서원 등에 제향되어 있다.

 


 

 


 

.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유고집 유물들을 전시 하였으며.

호는 제봉[霽峯] 시호는 충렬[忠烈]로 광주광역시 압보촌에서 태어나

1558년[명종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선균관 전적이 되었으며. 이후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순

창군수, 승문원 판교,등을 거쳐 59세로 동래 부사직에서 물러나기 까지 많은 관직을 역임 하셨다.

그사이에 식영정을 무대로 문인 들과 교유 하며 많은 작품을 남기셨으나.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순절 하였다.

 

=⊙=== 1층 전시물 끝 으로 2층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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