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 소록도 [小鹿島]

○ 고흥 소록도 [小鹿島]
고흥반도 남단의 녹동항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400m,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남쪽의 거금도(居金島)와 인접하여 있으며 어린 사슴과 비슷하여 소록(小鹿)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연환경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지리산편마암으로 기반암은 풍화를 많이 받은 상태이다.
섬 전체는 기복이 작은 구릉성산지(최고높이 118m)로 되어 있다. 해안선의 드나듦이 많아
깊숙한 만(灣)과 돌출한 갑(岬)이 교대로 이어진다. 북서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한 암석 해안이나
나머지 해안은 조립(粗粒)의 사질해안(沙質海岸)이다.
1월평균기온 1℃, 8월평균기온 26.5℃, 연강수량 1,310㎜, 연강설량 1㎜이다.
고흥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나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오마리와 함께 1963년도양읍에 편입되었다.
현황2007년 말 현재 소록도가 속해 있는 도양읍의 전체 인구는 1만 2,609명[남 6,235명, 여 6,374명] 이고 세대수는 5,472호이다. 면적은 3.74㎢, 해안선길이는 14.0㎞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마늘·양파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소록도병원 전용도선과 일반용도선이
수시로 운항되었다. 2009년에 연육교 다리를 개통 하여 자동차 들도 수시로 넘나들수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녹동초등학교 소록도분교가 있다.
그 밖의 시설로 1916년 나병원[癩病院]인 소록도 자혜의원[慈惠醫院]이 처음 설립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
취락은 병사지대[病舍地帶]와 직원지대[職員地帶]로 나뉘어 있다.
울창한 산림과 바다가 어울려 경치가 아름답고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해안에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소록도해수욕장이 있고
남쪽 끝에는 소록도등대가 있다.
참고문헌
『2008년 고흥통계연보』(고흥군, 2008)
『전남의 섬』(전라남도, 2002)
『한국도서백서(韓國島嶼白書)』(전라남도, 1996)
『도서지(島嶼誌)』(내무부, 1985)
『고흥군지(高興郡誌)』(고흥군지편도위원회, 1983)
고흥군청 홈페이지(http://www.gohe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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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탄장[愁嘆場]
이곳 소나무숲 도로를 중심으로 직원지대와 병사[病舍]지대로 나누는 경계선으로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에서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한번씩 면회가 허용되었다.
이 때 미감아들과 부모는 도로 양옆에 갈라선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하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의미의 수탄장 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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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탄장옆 바닷길 멀리 보이는곳이 한센 환자들의 마을이다.
저곳에 소록도 국립병원과 중앙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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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좌축을 돌아 공원입구에 들어서면서 먼져 만나는 검시실..
치를 떨리던 곳인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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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대
이곳에서는 남성들 거사장으로 사용되던곳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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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대에서 거사[수술] 받은 환자의 애환이 그려진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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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부실 내부 청결을 위해 만들어 놓았지만 환자를 위한것 보다는
이사들의 청결을 위해 만들어 놓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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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부실 해부대.....!!
저곳에 시신이나 환자를 올려 놓고 해부및 수술을 하던곳이라고 한다...
상상만해도 꿈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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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 외부에는 울타리 담장을 놓이쳐 놓고 탈출을 막으며
외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이송하여 강금 하던곳 이라고 한다. 즉 구치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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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 내부를 살펴 본다. 1935년에 건립된 건물로써는 아직까지도 사용 가능한것으로 보여지며
보존을 위해 관리 하여서 인가 잘 보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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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 건물 내부에 송치실에는 전형적인 일제 치하의 구치소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
화장실 까지 방안에 설치 하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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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문 또한 음식물 투입창을 만들어 놓아
감옥과 다리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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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은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67호로 2004년에 지정되었으며
일반인 들에게 공개 되면서 중앙공원과 함께 관람을 할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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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을 나와 중앙공원으로 올라가면 되는대 다음은 소록도 자료관이 2곳이 있으면서
소록도에서 당시 사용되던 의료용품이나 의식 생활품들을 전시 하였으며..
또 한곳은 봉사관으로 봉사를 위해 오신분들 관리 하는곳도 주변에 있습니다. 오늘은 공원으로 바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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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입구 안내 표지판 연역과 주요 기념물들 소개 하였으며.읽어보고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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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중앙공원 [小鹿島中央公園]
1936년 12월 1일 착공, 3년 4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1940년 4월 1일 완공하고, ‘부드러운 동산’이라 불렀다.
당시 산림을 깎아 만든 공원의 면적은 약 1만 9,800㎡에 달했다.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 연인원 6만여 명을 강제동원하여 조성하였으며,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여 옮겨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광복 후 공원 명칭이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변경되었고,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면적은 약 2만 5,000M에 이른다.
솔송과 황금편백을 비롯하여 향나무,후박나무,삼나무,팽나무·히말라야시더,종려,치자·팔손이나무 등
잘 손질된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공원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은 구라탑[救癩塔, 1963년 건립]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詩碑], 공덕비 2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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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안 공적비[1971.4.15]
1966.4.15-1971.4.15일까지 소록도병원에서 봉사한 벨기에 다미안 제단의 의사
"반드르겐브록과 나베르 간호사 가이안마리와 이다크라센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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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탑[박멸탑] [1963.8.1]
한자를 풀이하면 '나병으로부터 구한다'는 뜻을 지닌 탑이다.
하단에 '한센병은 낫는다' 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이 탑은 1963년 국제워크캠프 대학생 133명이
오마도 간척공사 근로봉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미카엘 천사장이
악마인 한센균을 창으로 박멸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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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탑[救癩塔] 구원할 구[救], 문둥병 라[癩], 탑 탑[塔]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 라는 문구를 적어 놓은 구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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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수녀 공적비[1972.5.17]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온 파란눈의 천사, 20대 후반에 소록도에 와서
40여년간 환자들을 돌보았던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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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공원에는 여러나라 에서 나무들을 옮겨와 공원을 만들었으며
원생들의 산책로로 사용 되었던곳이라고 하며.. 이곳에는 특히나 소나무의 종류들이 다양하며
현재 비공개 지역에는 천연기념물 제488호 수양매[垂楊梅] 매화꽃도 있다고 한다.
꼭 보고 싶었는대 통재구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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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周防正季 수호마사토] 원장 동상.
제4대 원장 수호 원장[1933.9.1~1942.6.20] 악질로써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을 동원하여 내의 각종 공사를 추진 하였다.
또한 기금을 강제 징수하여 1940.8.20. 자신의 동상을 세워 매월20일을 [보은감사일]로 지정하여 참배하게 하였다.
수호원장은 환자들을 강제노역, 가혹행위등으로 환자들의 불만을 사던중 1942.6.20 감사행사때 환자인 "이춘상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후 "이춘상"은 일본으로 끌려가 사형에 처했으며 원장 동상은 태평양전쟁 물자로 징발 철거 되었다.
수호원장 동상 자체 높이는 3.3M 단올 포함한 전체 높이는 9.6M 였으나 지금은 동상은 없고 받침만 남아 있다.
섬의 중앙에 위치한 중앙공원은 당시 일본인 원장인 수호마사토[周防正季]가
1936년부터 3년 4개월 동안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 만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동상을 세워 환자들에게 참배를 강요하였고 공원 안의 관상수들은 일본, 대만 등지에서 들여왔으며,
환자들이 직접 육지에서 일일이 옮겨와 심고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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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피리 시비.[1972.5.17]
시인 한하운[韓何雲]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니리
당시 한센병[나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 시인이 집필한 시 이며 1972년 5월 17일에 시비는 세워진 게 아니라 누워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이 바위의 다른 이름은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다.
예전 환자들이 공원을 조성하면서 완도에서 바위와 돌을 운반하여 왔는데,
당시 일본인들의 채찍이 얼마나 모질던지 목도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서 죽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서있지 못하고 누워있는 보리피리 시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씹으며
시를 읊던 시인의 고통이 아로 새겨진 듯하다.. [자료관에 보면 시인의 사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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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 설인 한세병 환자분들이 성모 마리아[천주교]앞에서
환자들의 애절함을 기도 드렸다고 하던곳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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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예수"
환자들이 기독교 의식으로 기도 드리던곳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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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중앙공원 일부를 공개 하여 산책을 하며
예전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스럽던 모습들의 한을 였볼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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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무척 궁금했었지만 가까이 보니 "대추야자수꽃"[종려나무] 더군요...
야자나무꽃은 많은 병리에 약재로도 사용하지만 독성이 강해 복용을 금하고 있으며..
열매 또한 식용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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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건너 녹동항 예전에는 그곳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지만
연륙교 소록대교를 개통 하면서 많은 사랍들이 소록도 공원을 찾게 되는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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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대교
고흥군 도양읍 녹동리와 소록도를 연결하는 길이 1.160M 왕복 이차선 교량으로 2001.6.21~ 2008.6.20 완공
2009.3. 2 개통 되었으며 현수교 양식으로 건설된 이 교량은 교량 상판을 잡아맨
케이블을 지탱하는 높이 87.5M의 주탑 2개로 탑사이 250M 교각사이 110M로 건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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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비 안내문에서..
소록도 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다.
1945년 8월 15일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 당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1945년 8월 22일 이였습니다.
참사 56년만인 2001년 12월 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 전원생 및 언론기관과 관심있는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대 유골발굴 작업을 실시 하여 다수의 유골을발굴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살당했던 형장에 추모비를 세워 84명의 희생의 헛되지 않음과 지구상에 있는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 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를 2002년 8월22일에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록도를 아끼시고 한센병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신 여러분에 다시는 이 세상에
이같은 죄악이 저질러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시고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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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공원 주차장에서 공원 까지는 약1KM쯤 되는길을 소나무 숲속에 만들어 놓아
걸어서 왕복 하여야 합니다. 이 통로가 "수탄장"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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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관람후 소록대교를 넘고 있습니다.
처음 개통시는 인도가 없다고 하여 군민들의 언성이 놓아 다리 가에 도로 표시[노랑색줄]만 그렇놓고
인도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군청에서는 지금 둘레길을 준비중 이라고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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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대교 우축으로는 녹동항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정상에는 전망대도 보인다.... 항구와 다리 아름다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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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곳을 고흥군에 있는 팔영산 산행후 찾게되였지만.
얼마전에는 소록도 들어가는것 조차 쉽게 여기지는 못하였으나 요즘은 소록대교 개통한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오는곳으로 유명을 달리 하고 있는 공원입니다.
관람시간 09:00~17:00 까지로 되어 있으며 계절에 따라 약간은 변화가 있어 보였습니다.참고 하시길....
=♡=== 소록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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