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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강화 교동 4』시간이 멈춘 대룡시장에는 전방 주인들은 할아버지들이였다.

◈ Travelog/⊙ 출사 여행지

by 순도리(칠이) 2013. 8.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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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교동 대룡시장



 

 

. 전통 시장의 면모로 대를 이어온 대룡시장.


    강화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을 가면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 닿는다. 배에서 내리면 섬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교동도는 면적 46.9㎢, 인구 3600여 명이 살아가는 작은 섬. 하지만 경작지 면적은 강화군 내에서 가장 넓다. 호당 경지면적도 군내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교동도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철종의 사촌 익평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교동도에는 이런 역사의 흔적 외에도 우리의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 있다. 대룡시장 골목이다. 마치 1960년대의 영화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다. ○ 교동 유래 교동[喬桐]은 신라 경덕왕16년[757년]의 행정구역개편에 의해 호칭이 정해졌다. 교[喬]는 높을 고[高], 높이 솟은교 윗 상[上]의 뜻으로 어원은 어릴 요[夭]자로 (뜻은 : 구부러짐)와 [高]의 생략형으 한자로, 높고 상부가 구부러짐의 뜻이며 교목[喬木]은 키가 큰 나무를 가리키는데 아마도 고구려시대 부터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불리워 진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동[桐]은 오동나무의 동자로 동재[桐梓]는 오동나무와 가래나무의 뜻으로 곧 좋은 재목[인재]를 나타낸다. 교동에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읍내리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보인다], 좋은 인재가 많이 났기때문에 교동이란 명칭이 부처졌을지도 모른다.

 

. 교동 초등학교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서면 좁은 삼거리

좌축으로 “파마 대학 컷트”과 라는 간판을 만나면서 좌축으로 돌아서면서 만나게 되는 대룡시장 입니다..

그나마 시장에서 제일 젊은 부부가 운영 하시는것 같더군요,,  

 

 

. 대룡시장을 만나면서 입구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골목을 담아봅니다.

시장 건물들은 1960년대 건물이라고 하내요... 

 

 

. “교동 이발소”에는“지광석[74세]”할아버지가 운영하시면서

옛 모습을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있는 이발사 할아버지는 가위 밖에 없으면서

교동 주민들의 이용을 책임 지시는 분이다.

 

 

. 중앙신발 전방

문닫았다 이전방도 오늘은 휴일...? 

 

 

. 영원모타 이집도 문은 열렸으나 얼니이 밖에 없내요..

휴일...?? 

 

 

. “동산약방”사장님은 “나의환[82]”약사 할아버지 께서 운영 하고 계셨다. 

나의환 할아버지는 50여년간 교동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으며

동네 으원 하나 없는 교동에서 약사로써 조재해 주는 약이 잘 듣는다고 칭찬이 자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 도장집 할아버지는 “황세환[75]”할아버지는 한평 남짓한 시계수리방과 도장을 

40여년간 그 모습을 간직한체 대룡시장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중앙로 옆으로 이어지는 시장 골목

오늘은휴가 간듯 문을 닫아 놓았더군요... 뒤로는 교동 신발 전방도 보이내요.. 

 

 

. 골목 전방들은 문닫은곳이 많이 잇었지만

제일 다방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 창후 정육점 예전엔 푸주간 이라고 했던것 같더군요...

지금은 실향민 2세가 운영하는것 같아 보였습니다..[골목길에는 설렁 오늘 비가 오는 관계로 휴무..]  

 

 

. 강화상회 예전에 1박2일 프로그램에서

MC몽이 어린이 유치원 가방을 구입하였던 전방입니다...

내부는 들여다 보았지만 지금은 주인장님이 자리 비운 상태라 사진을 담지 못하였습니다..

여러가지 국민학교 시절 사용하였던 물건들을 볼수 있었으며.

학생들의 필수품들을 지금도 판매 하더군요... 

 

 

. 오늘은 아마도 휴일인듯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통닭하마리에 안주 삼아 고향을 그리는 푸념으로 일상의 피로를 이곳에서 풀지않았을까...? 

 

 

. 공휴일 인대도 손님은 없는대 입구에 바람막이 커텐은 펄럭이고 있더군요.

아마도 실향민들의 마음일것 같더군요.. 

 

 

. 시장을 돌아 보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 나갑니다.

저쪽 끝부분에 보이는 곳이 파마대학 컷트과 미용실 입니다. 

 

 

.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전방 잠시 동안 이지만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교동이발소, 시계수리전방, 동산약방,등 모두들 함게 지척에 고향을 둔 실향민으로 멀리 바라만보던 고향길을

등지지 못하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하시며. 지금은 젊은이 들은 자기 고향을 쉽게 등지고 있는 않타까운 현실을

왜면 할수 없다며 저에게도 고향을 물어 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면 저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생각케 하더군요...

지금은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 세월이 멈춘 대룡시장의 모습에 할아버지들과 지역 주민들의 모습이

잠시 나마 머물렀던것으로 끝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현실은 “남북통일, 북남통일”이던 어서 이루어 지길 바랄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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