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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방촌 황희 정승과 송강 정철 선생의 손때가 묻은 남원 광한루

◈ Travelog/⊙ 출사 여행지

by 순도리(칠이) 2013. 4. 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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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촌 황희 정승과 송강 정철 선생의 손때가 묻은 남원 광한루



 

 

. 아름다운 인연이 생각나는 보물 제281호 광한루 입니다..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보물 제 281호]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천거동] 규모 : 241.81㎡ - 본루 : 정면5칸, 측면4칸 팔작지붕 루 마루집 - 익루 : 정면3칸, 측면3칸 - 월랑 : 정면1칸, 측면3칸 조성년대 : 1419년 황희 광통루 축조 - 1434년[세종 16년] 부사 민여공 중수 - 1437년[세종 19년] 부사 유지례 단청 - 1444년[세종 26년] 정인지 광한루 개칭 - 1582년[선조 15년] 부사 장의국 대규모 개수 -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불탐 - 1599년[선조 32년] 부사 원신 재건 - 1626년[인조 4년] 부사 신감 중수 - 1855년[철종 6년] 부사 이상억 중수 - 1879년[고종 16년] 부사 이용준 월랑 설치 - 1931년 군수 백정기, 남원면장 양재영 및 진사 이수봉 등이 보수 완료

 

. 서문 주차장에서 상가 밀집 지역으로 들엇면서 서문 입구로 가는 길에 다마 본다. 

 

 

. 서문 매표소 입구  

 

 

. 입장료 어른 : 2500원 중,고생 : 1500원 매표 합니다. 

 

 

. 드디어 입장 합니다..

들어서면서 첫대면 하는 광한루원 지금은 산수유만개 멎지게 보인다.  

 

 

. 먼져 찾아보는 이정표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

광한루쪽으로 방향을 잡아 본다. 

 

 

. 이쪽 방향은 광한루원네 월매집 빙향으로 제일 나중에 볼것입니다. 

 

 

. 들어왔던 서문 우축으로는 장애인들 이용할수 있는 

보장구들 누구나 사용할수 있었다. 

어딘가 보니 장구를 갖추었지만 열쇠로 잠겨 놓은을 보았거둔요

그래서 저는 항상 이런곳들을 들여다 보곤 합니다..  

 

 

. 이곳은 성춘향 전시관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갑니다... 

 

 

. 마주하게된 광한루 오작교

호수에는 너무 맑은 물로 물고기들 놀고 있는 모습 까지 들요다 보인다. 

 

 

. 이른 시간이라 관람객들이 그리 많이 있지 않은 오작교 

 

 

. 이런 곳에서 풍광을 즐기던 선조들의 마음을 알수 있을것 같은 느낀을 준다. 

 

 

. 아직은 이른듯한 봄소식

아직도 나무잎을 나오지 않았지만 우축으로 커 보이는 왕버들 나무 보호수로 지정 돠어 있더군요, 

 

 

. 가로등 마져 춘향이의 전설을 담고 있었습니다.. 

 

 

. 오염되지 않은 호수가에도 이끼들은 이미 봄을 맞아하듯합니다.. 

 

 

. 저 멀리 보이는 원내 매점도 아직 문을욜지 않았군요...

잔잔히 흐르는 물가에 바람으로 만들어낸 반영 또한 아름답군요.. 

 

 

. 저곳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 있군요.. ?

왜그러지 얼른 다가가본다.

 

 

. 오작교에서 모두들 물속을 바라본다.

물가에는 먹이를 주어 그 먹이를먹을려고 다가온 잉어들 향동들이 엄청나다. 

 

 

. 바로 옆에 매점이 있어 그곳을 보니 먹이를 판매 하더군요.

저도 아들놈에게 한컵 사주었지요. 

 

 

. 모두들 잉어 구경에 빠져 들어갑니다..

엄청나게 크더군요. 

 

 

. 말로만 듯던 1M쯤 되어 보이는 잉어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엇습니다..뻐끔 거리는 큰 입을 별려 먹이를 먹는것이 아니라 흡수 하더군요.. 

 

 

. 먹이 주고 있는 가족들을 담아 봅니다..

매점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먹이를 준다. 배푸르게 먹었을것 같다.  

 

 

. 방장정을 바라본다.

저곳에서는 어떤일들이 벌어진곳인가 매우 궁금해 지기도 한다.

저곳도 넘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작교에서 바라본 광한루

그앞에는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거북이상 돌로 만들어 진것인지 생김새가 그런것인지

정말로 요상하게 만드러진 거북이다. 

 

 

. 이미 들어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춘듯하다. 

 

 

. 잉어때들 아직도 먹이들을 아침 식사중 구걸하는듯 하였다.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편액이 보인다.

광한루를 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광한루 안내 표지판을 봅니다.

광한루[廣寒樓]보물 제281호 남원시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 난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

세종 26년[1444] 정인지가 건물이 전설 속의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하여

광한루[廣寒樓]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후 선조 15년[1582]에는 전라도관찰사 송강 정철[47세 때]이 건물 앞에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가로질러 오작교라는

반월형 교각의 다리를 놓았다. 지금의 건물은 정유재란[1597]때 불에 탄 것을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북쪽 중앙의 층계는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고종 때 만들었다.

 

황희 정승은 새종때 두차레나 영의정에 올라 법치사상. 민본사상. 평등사상으로

14세기 후반에 15세기 전반에 왕도정치의 사상이 뿌리 깊게 깔려있던 오직 백성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숭고한 철학을 필연적의 정립된 정치사상을 갖춘 황희 정승이였다.

황희 정승의 영정은 경기도 파주 반구정에 모셔져 있다.

또한 송강 정철 선생은 담양여행 당시 보았던 주로 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식영정에는

성산별곡의 산실인 곳과 지금도 문중이 있는 지실 마을에는 계당매[溪堂梅]가 있는 영일정씨 종가집도 생각이난다.

송강 정철 선생은 충북 진천 문백면 봉죽리에 묘지와 신도비등이 있다.

 

그런곳 여행을 하여서 인듯 남원 광한루에서의 여행길이 많은 도움이 된듯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이어 집니다....

늘 건강과 행복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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