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서울을 둘러쌌던 도성이다. 태조 4년[1395]부터 약 3년에 걸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석성과 토성으로 성곽을 쌓았고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쳐짓는 등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다.
성에는 사대문[동:흥인지문, 서:돈의문, 남:숭례문, 북:숙정문]과
사소문[북동:홍화문, 남동:광희문, 북서:창의문, 남서:소덕문]을 두었는데, 흥인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정문은 암문[성곽의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밀 출입구]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현재는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다.
“세종의 대대적인 서울성곽 수리공사”
세종은 즉위 후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였다.
1422년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공사를 마쳤는데,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공사 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 해도 872명에 달했으며,
이때의 결과물이 지금 서울성곽의 골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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