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악산 국립공원 비로봉

△. 구룡소
아득한 옛날이라고 할 천삼백년 전의 일이다. 메마른 품이 학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자리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관서우 거산 치악산을 향해 떠났다. 이 스님의 이름은
무착대사라고도 하고 의상조사라고도 하나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원주서 치악산을 향해
육십여리 길을 가던 대사는 그 곳에서 다시 시오릿길을 더 가서 지금의 구룡골에 멎었다.
스님이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절을 세울만한 곳이군. 그러나 대웅전을 세우려면
저 연못을 메워야겠는데 생각에 연못가로 갔다. 그때 그곳에 있던 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연못을 매우자니 모처럼 용이 사는것을.. 난감한 일이구나 대사가 말하는 것을 연못 용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사에게 "대사님이 벌써 우리를 내어 쫓을 생각을 하시나 우리도 마음이 안놓여 살수가 없오,
대사와 우리가 서로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기면 대사가 이곳에 절을 못 지을 것이요,
지면은 선뜻 자리를 내어드리리다." 했다. 대사가 "너희들이 무슨 재주를 부리려느냐?" 하느냐"
"그것은 잠시 두고 보시면 압니다."고 대답한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 벽력과 함께 우박같은 비를 쏟아놓았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은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대사 또한 물속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았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건너 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가 물속의 귀신이 되었겠다 생가하고는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사는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 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부시시 일어난 대사는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것인즉 너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 보아라."
하고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있어 연못에서는 더운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뜨거움을 참다못한 용들은 뛰쳐나와 한다름에 동해바다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미쳐 달아나지를 못하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용들이 달아나자 대사는 못을 메우고 지금의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 한편 뜨거운
물에 쫓겨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의 골이 치어있으며, 이때 미쳐
도망하지 못한 눈먼 한 마리의 용은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서 지난 왜정때까지 살다가
그해 여름 장마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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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가는 길이 쉬운 코스를 선택 하여 올은 코스 입죠.
황골 → 입석사 → 비로봉 → 사다리 병창길 → 세렴폭포 → 구룡사 → 구룡탐방센타

△. 비로봉에서 식사를 마치고는 사다리 병창길로 하산을 접어 들어 갑니다...
비로봉 바로 아래 길입니다..

△. 사다리 병창길은 치악산에서 북쪽 방향으로 있어 핸볕을 받지 못하는 지역이라
겨울이 다지나도록 눈이 오는대로 그대로 쌓여만 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산객들은 올르는 길은 조금은 나아 보이지만 하산하는 사람들은 미끄러지기 일수 입니다.

△. 간간히 보여 주는 작은 바위길도 나오니 조심을 많이 해야 합니다..

△. 비로봉을 한참을 내려 왔습니다..
여기 가지만 해도 변번을 넘어지면서 미끄럼을 이용하여 하산 한길입니다..

△.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단길 그러나 눈이 덮여 계단도 보이지 않을 정도,,
조신들 하셔요.. 안전한 하사닐을 기원만 해봅니다..

△. 이곳까지만 해도 힘들게 내려온 상황 좀 쉬어 가도록 합시다..

△. 이곳이 사다리 병창길..양쪽으로 낭떨어지 ..
특히나 겨울에는 눈길이 되어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다리 병장길을 지나고 보니 조금은 쉬워진듯한 계단 조금만 더 가면 세렴폭포 평탄한 길이 나오게 됩니다.

△. 이곳이 지긋 지긋한 계단길을 다 내려온 상황 세렴폭포에 도착 하였습니다...

△. 다리에서 우축으로 다른 계곡으로 약100M쯤 올라가면
좌축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셰렴폭포 지금은 여름으로 포장을 해놓아 별달리 보이는것을 찾을수가 없어 보인다.

△. 세렴 폭포는 2단으로 흘러 내리는 폭포로 많이 알려진 폭포지만
아무런 안내도 없으며 찾을 길이 없내요..? 아쉽다.

△. 셰렴폭포 안전 지킴터.. 이곳에서 응급치료도 가능하더군요..
지나는 사람들은 잠시 들러 스프레이 정도 한번 뿌리면 좋을것 같더군요...

△. 앞에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면 세렴폭포로 올라 갈수 있으며
우축으로는 사다리 병창길 오름길이다.

△. 이재 부터는 구룡사 방향으로 하산을 또 서둘러 봅니다..
안전 지킴터에 동료 한분이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간단히 마사지 하고 응급 처치 하느냐 시간을 소비 되었습니다.

△. 이곳은 지도상에 나타난곳은 대곡 야영장앞 다리 부분입니다.

△. 평탄한 길이라 그냥 구룡사 길로 앞만 보고 걸음을 제촉도 해봅니다.
조금만더 가면 구룡소 전설도 많은곳이더군요...

△. 구룡소[龜龍沼]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의 구룡사[龜龍寺] 내에 있는
구룡소는 기암의 차별 침식에 따라 낙석들이 층층으로 쌓여 만들어진 여울형 연못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구룡사 창건 당시, 용[龍] 한 마리가 연못속에 살다가 승천하였다.
하여 이름을 용소[龍沼]라 불리었다고 한다..

△. 구룡사 유래[龜龍寺 由來]
치악산의 의뜸 봉우리인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약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완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상대사는 연못 자리가 좋아 그곳에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용들을물리치고 절을 지었고,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한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는데 이후 절이 더욱 쇠락해져 갔습니다.
절이 더 이상 운영되기 어려워 폐사가 되려할 때에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더욱 쇠락해진 것은 혈맥을 끊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절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 구룡사[龜龍寺]
백두대간의 주맥이 오대산을 거쳐 서쪽으로 태기산을 지나, 국동의 명산 치악산에 이르고
거기에 영서의 대찰 구룡사[龜龍寺]가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천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인
치악산에 구룡사는 서기668년[신라 문무왕8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으며 나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 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구룡사는 원주시 소초면 학곡2리 치악산[1288m] 국립공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장목[금강송]숲길의
일주문[원통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 구도의 계단을올라 문화재인 보광루밑을 나오면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 : 구룡사 홈페이지 클릭하셔요.

△. 구룡사에는 종교의 폐단을 격은 사찰이라는 것에 어딘가 모르게
모든것들이 달리 보여 지더군요...
언재쯤 만들어진 석탑인지도 알수가 없내요..??

△. 구룡사 은행나무
○ 수령 : 약 200년 수고 : 약19M ○ 흉고직경 : 125CM ○ 보호수 지정 : 1982년 11월 13일
가을이 되면 잎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는 1억5천만년전 공룡이 살던시대부터 있었던
나무이기 때문에 화석[化石]나무라고 합니다.

△. 부도 [사리를 모신]
부도는 부처를 뜻하는붓다에서유래된 말로서 도력이 높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묘탑입니다.
처음엔 팔각원당형의 부도가 많이 세워졌으나.
불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재정의 부족 등의
이유로 보시는 비와 같이 석종형 부도가 많이 만들어지게 되엇습니다.

△. 구룡사 일주문[圓通門, 원통문]
세속과 절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두기둥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을하고 있으며,
기둥이 한줄로 세워져 있다고 하여 "일주문" 이라고 합니다.
두기둥위에 있는 주련은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항만세이장금[恒萬歲以長今],"
"천겁이 지나도 낡지말고, 만년동안 항상 오늘같이 길이 남으라"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구룡사 사찰 전경이며..
원주 구룡사 보광루[原州 龜龍寺 普光樓]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
보광루는 치악산 중턱에 위치한 구룡사의 불이문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구룡사의 진입은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 밑을 지나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익공집으로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이며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운 뒤에 그 위로 누각형 건물을 올렸다.
누각층은 대웅전 앞의 마당을 향해 개방시킨 형태이며, 기둥은 1층보다 빈약한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누마루는 우물마루인데, 한때 마루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멍석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보광루는 능선 밑의 급경사지에 동향의 배치를 하고 있어 조선중기 이후 산지에 중건된 사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구룡사의 불이문 역할을 하고 있는 건물로, 공간의 위계를 구분하는 공간이자 누각 아래를 통해 절 마당으로 진입하는 전이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이 건물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로 둘러쌓여 있는 마당을 종축의 진입축에 반하여 횡으로 막으며,
독립된 공간성을 확보해 주는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집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의 무고주 5량가구의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역시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을 세워 아랫층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경사가 급한 지형에 맞게 건축을 하여, 대웅전쪽 기둥이 사천왕문쪽 기둥보다 길이를 짧게 하여
보광루 아랫부분의 수평을 맞추고 있다. 구룡사의 출입은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 아랫부분의 트여 있는 가운데 칸을
통로로 삼아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경사진 지형에 조성된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누하진입방식[樓下進入方式]을 하고 있다.
누각층은 대웅전 앞의 마당 공간을 향해 벽체가 없이 개방시켰으나 나머지 3면은 판벽으로 처리하였고,
정면의 각 칸 사이에는 2짝 판문을 달았다. 누마루는 우물마루이다. 마루에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멍석이 깔려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장판으로 대신해 놓았다. 기둥은 1층보다는 빈약하고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양식은 주두[柱頭] 위에 두공[頭工]과 소루[小累]를 놓고 이것이 도리받침 장여를 받치게 한 이익공[二翼工]형식인데
아랫부분은 앙서[仰舌], 윗부분은 수서[垂舌]형식으로, 그 사이에는 각각 연꽃(앙서 위)와 연꽃 봉우리[수서 밑]를 장식하였다.
기둥머리인 양봉[樑奉]에는 봉두[鳳頭]를 장식하였다. 천장은 우물반자이다.

△.구룡교에 도착 하였습니다...
구룡교에 보면 양쪽 끝으로 한마리씩 용이 있으며 가운대 부분에는 거북이가 만들어 놓았더군요..
용, 거북이는 구룡사의 전설을 가진 용[龍]과 거북이[龜]의 의미가 있어 그리 만들어 놓은것 같아 보인다.

△. 구룡교[龜龍橋]라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보신바와 같이 구룡사[九龍寺]와 [龜龍寺]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여 놓았으니.
잘읽어 보시면 쉽게 이해 하실것입니다..

△. 구룡교에는 상징물인
2008년 9월25일 구룡사 주지 스님은 구룡교 양쪽 끝에 구룡사의 상징물인 용 조형물이 복원돼 25일 점안식을 가졌으며.
구룡교 에는 양쪽 끝으로 용의 상징물을 세웠으나 가운대 부분에는 거북이 형상 상징물도 함께 있었습니다...

△. 黃腸禁標[황장금표]
황장금표는 궁궐을 지을때 사용하던 황장목을 보호 하기 위해 국가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인 들이 벌목하는 것을 금지한 표지를 말하며,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2개의 황장금표가 잇습니다.

△. 학곡리 황장금표[鶴谷里 黃腸禁標] 강원도 기념물 제30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황장금표란 황장목[黃腸木]을 보호 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채를 금지하는 표시로 설치된 것이다.
대개 돌에 세겨 표시하게 되는데, 이로써 표석이 위치한 일대가 황장목 보호 구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황장목 : 나무 중심 부분이 누런 색깔을 띠며, 나무질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로, 그 용도는 매우 다양하였다.
조선시대 에는 질 좋은 목재의 확보를 위해 황장목 관리에 특별히 관심을 썼는데,
치악산 에는 질이 우수한 소나무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강원영이 가까워 관리에 유리하고,
뗏목을 만들어 섬강과 남한강을 거쳐 서울로 운송하기에도 편리하여
조선 초기에는 전국 60개소 황장목 봉산[封山] 가운데서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이 표석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이 곳으로 부터 100M여 떨어진 도로 아래쪽에 또 하나의 표석이 남아 있다.
출처 : 안내 표지판에서....

△. 구룡사 입구
이곳에서 얼마 않떨어진곳에 치악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타 곤리소가 있었으나
주차장 까지는 멀리 있으면서 이곳에서는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징수 하더군요.
물론 우리는 다른곳을 들어가 이곳으로 나왔으니 입장료는 무료 였습니다...

△. 이곳은 치악산 국립공원 신흥주차장이다.
그러나 이곳은 승용차 몇대뿐 주차 할수없이 좁은 구역이 였으며 주차료를 국립공원에서 징수 하는것 같았습니다.
또한 버스는 주차할 공간 자채가 없으며 노선 버스만이 시내에서 왕복 운행 되더군요..
제가 이런 이야기 하는것은 이곳에서 약 1.2KM쯤 더 내려 가야 승용차 주차장 및 버스 주차장도 만나게 됩니다.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주차장 시설 이였던것 같습니다....

△. 이런길을 따라 인도로 한참을 내려 가야 일반인 주차장을 찾을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 주차장도 아니였습니다... 주차료 징수...??
오늘 산행은 역시나 "악" 자 들어가는 산으로 앞에는 "치" 자가들어서 인가 치악산은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제는 배려 하는 생각으로 쉬운코스로 올라 하산길이 선택 하였는대..
이곳또한 쉬운 코스는 아니였습니다.. 특히나 겨울이라 그런것 같았으며 올라가는 코스는 황골이 무난하였으며
하산 코스는 비로봉에서 다시 벡하여[핼기장 방향]으로 다시 하산 하여 계곡으로 하산길이 있으니
그곳이 좀 쉬운 코스임을 추천해 봅니다. 혹시나 계획 하고 계시는 분들은 특히나 겨울은 참고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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