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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17세기 서산대사와 법맥을 이어온 스님들의 부도군 연천군 심원사지 부도군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3. 2. 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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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군 심원사지 부도군[漣川郡 深源寺址 浮屠群]



 

 

. 연천군 심원사지 부도군 유형 제138호


    위치 및 지형 심원사지 부도군은 보개산의 거찰이었던 심원사지로 들어가는 입구 좌측의 산 아래에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상․중․하 삼단에 3기의 비석과 12기의 승려사리탑이 봉안되어 있으며, 하단 중앙에는 최근 군부대에서 세운 석조 아미타불상이 있다. 유적 현황 이 부도들은 원래부터 지금의 장소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深源寺誌』의 기록에 의하면 1925년 당시 주지였던 홍월운[洪月運]과 법무 이진학[李鎭學]의 주도로 심원사 동쪽에 있던 비 2기와 부도전부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 정리하였다고 한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고 밀반출되는 사건으로 인해 현재는 3기의 비석과 탑재가 바뀌어 원형이 바뀐 12위의 부도만이 남아 있으며, 6․25 전쟁 전에 있던 산왕대신비[山王大神碑]는 행방을 알 수 없고 나머지 8위의 부도 또한 밀반출된 상태이다. 대체로 형식은 우리나라 부도의 전형적인 형식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과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유행하였던 석종형[石鐘形]을 취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부도[浮屠]는 취운당대사비[翠雲堂大師碑], 취운당대사비 옆에 있는 불명의 부도, 제월당대사비[霽月堂 敬軒大師碑], 박씨공덕비[朴氏功德碑], 불명 석종형 부도, 소요당[逍遙堂] 부도, 팔각받침과 구형탑신의 불명 부도, 장고형 중대석이 있는 불명 부도, 연월당[蓮月堂] 부도, 허백당[虛白堂] 부도, 총음당 부도, 풍담당[楓潭堂] 부도, 청하당[靑霞堂] 부도, 호연당 [浩然堂]부도, 청심당[淸心堂] 부도 등 모두 15기이다. 17세기 전반에 활동하던 승려 제월당 경헌[敬軒], 취운당 학린, 호연당 태호, 청심당 도일 등 청허 휴정[休靜, 1520~1604]의 법맥을 이은 선사들의 비와 부도로 제월당 경헌[敬軒, 1542~1632]의 비는 기단 위에 구름과 용의 문양이 조각된 지붕돌을 갖춘 비신이 세워져 있고, 제월당에 대한 내용을 적은 비몸의 ‘제월당대사비명’은 전서체로, 비문내용은 해서체로 적혀 있다. 취운당 학린[學璘, 1575~1651]의 비는 효종 3년[1652]에 세워졌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넓어지며 상단을 둥근 호패형으로 마무리 하였다

 

 

. 저의 고향에서 가까운곳 있지만 저도 처음으로 찾게된 심원사지

이렇게 찾게 된것은 최근들어 개방이 큰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아래로 이어 소개 됩니다.

 

 

 

. 심원사지『深源寺誌』의 기록에 의하면

1925년 당시 주지였던 홍월운[洪月運]과 법무 이진학[李鎭學]의 주도로 심원사 동쪽에 있던

비 2기와 부도전부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 정리하였다고 한다.

 

 

 

. 6․25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고 밀반출되는 사건으로 인해

현재는 3기의 비석과 탑재가 바뀌어 원형이 바뀐 12위의 부도만이 남아 있으며,

6․25 전쟁 전에 있던 산왕대신비[山王大神碑]는 행방을 알 수 없고 나머지 8위의 부도 또한 밀반출된 상태이다.

 

 

 

. 번호로 분리하여 소개 하도록 하겟습니다..

 

 

. 예전에는 이곳은 군부대 영내에 있으면서

군부대에서 석조 아미타불상을 세워진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심원사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북원 사업을 하는 과정에 일부 도로로

들어가면서 개방 된것으로 보여집니다.

  

 

 

. 산전 수전을 격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지켜오고 있는 신원사지 부도군 

찾지못한 부도들도 많이 있어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태연스런 모습으로 누워있는 동자승의 모습이 오늘의 자연스러운 부도군을 상징 하는듯 하기도 합니다.

 

 

 

. 누군가 와서는 기도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는 아미타불상 앞 상석에는

조용함도 있었습니다..

 

 

 

= 불명 부도,

= 풍담당 의심[楓潭堂 義諶] 부도 풍담대사비는 통진 문수사에 있다. 

풍담당 의심[楓潭堂 義諶]스님은 편양[鞭羊]스님 제자로

보개산,치악산,구월산, 삼각산, 청량산,소백산, 희양산,황악산,가야산 등

유람하며 제자 양성에도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계룡산 동학사에 보면 나온다.

 

 

 

= 청하당 [靑霞堂 ] 부도, = 호연당 태호[浩然堂 太浩] 부도,

호연당 태호[浩然堂 太浩] 스님은 전북 무주에 있는 백련사에서 서산대사 청허[淸虛]의  제자로 배출 되었다. 

 

 

 

= 청심당[淸心堂]도일 부도, 

 

 

= 불명 부도, 

 

 

. 3단 기단으로 만들어진 부도군은 지금이라도 이렇게 관리되고 있으니 다행으로 느껴진다.

 

 

 

. 자리 옮기면서 분실된것 같지는 않으나

6,25전쟁을 격으면서 소실과 함께 도난된것 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 연월당[蓮月堂] 부도, 13.15.16.17= 불명 부도

 

 

= 취운당 학린대사비[翠雲堂 學璘大師碑], 10.12.14 = 불명 부도,

 

 

. 취운당 학린대사비[翠雲堂 學璘大師碑],

 

가장 왼쪽에 자리한 비는 취운당 대사의 비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받침돌 삼아 그 위에 비신을 세우는데,

비신은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진 마름모꼴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규모는 180×69×23㎝으로,

전액은 "취월당대사비명" 이라 새겨져 있다. 비문은 홍문교리 정두경이 짓고, 글씨와 전액은 윤노옹이 썼으며,

음기는 승[僧] 광혜의 글씨로 되어 있다. 전면에 입은 탄흔으로 일부 글자는 파손되었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건립연대는 1652년[효종 3] 8월에 새워진 것이다.

 

 

 

. = 제월당 대사비[霽月堂 敬軒大師碑],  = 박씨 공덕비[朴氏功德碑],

 11,12,13,14,15 = 불명 부도 

 

 

 

. 심원사 부도군은 심원사의 크기를 가름 할수있을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부도군 였으나 알수없는 누구의 부도인지 우리들의 아품흔적도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뒷쪽에 있는 제월당 경현대사비[霽月堂 敬軒大師碑], 앞쪽에 있는 박씨 공덕비[朴氏 功德碑],

  

 

 

. 박씨 공덕비[朴氏功德碑],

 

비는 애국지사의 비석인 박씨 공덕비이다. 이 비는 구한말 애국지사였던 한규설[韓圭卨]의 부인 박기우[박선심화보살]

그 자매인 기석[박대선화보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35년에 건립된 것이다.

한말 포도대장을 역임했던 한규설의 부인 기우,기석 자매는 슬하에 자식이 없자

1934년 겨울에 보개산 석대암을 찾아 사후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지장보살로부터 가피력을 받아 많은 재산을 심원사와 석대암에 헌납한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화강암 대좌에 오석으로 만든 비신과 팔작지붕의 옥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신에는 권상노의 글씨와 비문이 새겨져 있다.

 

 

 

. 제월당 경현대사비[霽月堂 敬軒大師碑]

 

부도군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제월당 경헌대사의 비로,

옆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운 후 구름과 용을 조각한 4각의 옥개를 얹은 모습이다.

비문은 광덕대부 동양위 신익성이 짓고, 의창과 이황의 글씨와 전액으로 되어 있으며,

음기의 추기는 제월당의 시자 밀언의 글과 글씨로 되어 있다. 건립연대는 1636년[인조 14] 8월에 세운 것으로,

현재 비문이 심하게 닳아 있다.

 

 

 

이곳에 있는 비와 부도의 주인공들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하던 제월당[霽月堂], 취운당[翠雲堂], 풍담당[楓潭堂], 호연당[浩然堂],

청하당[靑霞堂], 청심당[淸心堂]서산대사 즉 청허당[淸虛堂] 휴정대사[休靜大師, 1520~1604]의 법맥을 이은 승려들이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보면 심원사의 역사는 17세기 때의 모습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다음에는 심원사의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우하하ㅋㅋㅋ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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