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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복원중인 원심원사 세민스님 주도 사대부중 지장 도량 기도 성지로..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3. 2. 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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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 보개산 원심원사



 

 

. 연천심원사지 기념물 제214호


    위치 및 지형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 현황 심원사의 연혁에 관해서는 1942년 간행된『楡岾寺 本末寺誌』의 심원사지 편에 상세히 적혀있다. 이에 따르면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가 영주산[현 보개산]에 영원사, 법화사, 흥림사, 도찰사를 차례로 창건한 후, 859년[헌안왕3]때 범일국사가 흥림사[興林寺]를 중창하고 천불[千佛]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심원사는 1393년[태조2]의 화재로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고, 3년 후 1396년[태조 5년] 무학대사가 건물을 삼창[三創]하면서 영주산을 보개산으로 흥림사를 심원사로 개칭하였다. 1402년[태종2], 왕위를 물려준 태조가 안변 석왕사로 가기전 심원사로 향하였다는 기록은 태조가 이 사찰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15세기 대표적인 시인 김시습이 이 사찰을 소재로 시를 지을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592년[선조 28년] 4창되어 서산대사의 법맥을 잇는 소요[逍遙], 태능[太能], 제월[霽月], 경헌[敬軒] 등 조선 중기의 선승들과 수많은 학승들이 주석 정진하는 도량이 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사건 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쟁하던 의병과 관군의 공방전 속에서 장래의 화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관군에 의해 250여 칸의 건물과 1,602위의 불상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심원사는 완전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1909년부터 점차 복구되어 1937년 주지 이진학[李鎭學]의 노력으로 유점사 본말사지에 전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전인 천불전, 신신각, 춘향각, 요사채 등 모두 8동의 건물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비껴가지 못하고 건물은 모두 전소되었으며 전쟁이후 얼마 전까지 사찰의 명맥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한편, 한국전쟁 이 후 군사보호구역으로 남겨져 보개산 심원사의 기둥을 헐어 철원 심원사의 법당인 명주전을 건립하면서 심원사의 사적은 철원 심원사로 이전 되게 되었다. 2003년~2009년 동안 발굴조사를 통하여 총 5동의 주 불전 건물과 스님들이 생활하던 다양한 승방들이 확인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현재 본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산신각 등이 복원되었다.

 

. 평상시 어려서 부터 이야기 듣던곳 "심원사" 를 찾아가 봅니다.

 

 

 

. 지금은 복원중이라 어순선해 보이지만

종무소만 또렸하게 보인다... 심원사 들어가 봅니다.

 

 

 

. 복원중인 관음전

 

1997년 영도 스님[현 건봉사 회주]은 당시 국유지로 돼 있던 원심원사 250만평을 5년간 소송을 통해 되찾았다.

이어 2004년에는 도후 스님[심원사 주지]이 경기도와 연천군의 지원을 받아 신서면 옛터에 극락보전을 복원하기에 이른다.

전 해인사 주지로 대장경 동판불사 를 이끌었던 노장 세민[75,수안사 회주] 스님도

2005년 7월 "원심원사[원래의 심원사라는 뜻]"의 주지로 임명되면서 "고토 회복" 에 뛰어들었다.

 

 

 

. 원심원사 전체배치도

 

세민 스님이 원심원사 복원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 사찰이 1300년 된 고찰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그 위치가 호국영령과 전몰장병을 위안하기에 제격이라는 점,

과거 보개산이라는 명산의 정기가 서린 한국 최고의 지장성지로 수행과 기도의 영험이 컸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

원심원사는 4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 지금 복원중인 관음전 조감도

 

그 중 보개산 주봉인 지장봉[해발 877m]에 세워졌던 석대암은 산 형이 백 번 돌고 천 번 중첩되며

물의 근원이 만 번이나 꺾인다는 빼어난 지형을 이루고 있는 데다

그 영험 기록을 고려시대 문신 민지[1248∼1326]가 "보개산석대사적기"에 적었고

이색, 김시습 등이 시까지 남겼을 정도다.

 

 

 

. 2004년에는 도후 스님[심원사 주지]에 의해 연천군 지원을 받아 복원된 극락보전


    보개산[寶蓋山] 심원사는 옛 금강산 유점사의 말사로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암자를 관할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靈源祖師]에 으해 영주산 흥림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859년[헌안왕]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재창하고 천불을 봉안 하였으며 1396년[조선 태조5년]에 무학왕사[無學王師]가 3창하면서 보개산 심원사로 개칭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하여 인숭[印崇], 정인[正印] 등이 1592년[선조28년]에 다시 4창한 것을 계기로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소요[逍遼], 태능[太能], 제월[齊月], 경헌[敬軒] 등 조선 중기의 선승들과 수많은 학승들이 주석 정진하는 호국불교의 대가람을 형성하였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250여 칸의 건물과 1,602위의 불상이 위용을 드러내는 대찰이였다. 이후 1907년[용희 원년] 의병전쟁의 와중에 일제[김화수비대]가 소각한 것을 이진학[李鎭學]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노력으로 점차 다시 복구하였고 6.25 한국전쟁의 병화로 소실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지장성지로서 전국에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수많은 선승과 학승들을 배출하였다. 13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심원사는 효과적인 복원을 위해 2005년 원심원사로 개칭하였으며 현재 다방면의 노력으로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어 머지않아 예전의 웅장했던 사격[寺格]을 다시 볼수 있을거으로 기대된다.

 

. 맨뒤로 보이는 산신각.

앞에는 법종 지금은 임시 누각에 설치 되어 있더군요...

 

 

 

. 연천 심원사지[連天 深源寺址]는 경기도 기념물 제214호

 

 옛 심원사 터는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정 중앙[인근에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전곡이 있다]에 속한다.

삼국이 한강 유역을 선점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던 요충지요, 한국전쟁 때도 격전이 치러졌던 곳이다.

세민 스님이 대작 불사에 앞서  2006년 13일 원심원사 대웅전 앞에서

전국의 1만여 불자들이 참가하는 "6·25 전몰장병 및 호국영령 위령대재"를 성대하게 봉행한 것도 이 때문.

특히 이번 위령대재에는 한국전쟁 때 산화한 1군과 3군의 20만 장병 명단을 입수해 일일이 위패를 써서 모셨고,

외국인 전몰장병의 영가까지 천도하는 등 지극 정성을 다했다.

 

 

 

. 대웅전[大雄殿] 문창살 이또한 엣것으로 모양을 주어 복원 한듯하여 보인다..

 

 

 

. 인적이 드문 이곳에는 북원중이던 모든 공사가 날씨가 추워서인듯

잠시 휴식기를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 오늘은 겨울날씨 만큼이나 춥지는 않았지만

일요일이다 보니 군인들이 예불을 보기위해 많이들 찾아 주셨더군요...

그럼에 한컨에는 풍경소리로 멀리 보이는 옛 스님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기도 합니다...

 

 

 

. 지금은 북원이 완전 하지 못하다 보니 국락보전 옆으로 임시 법당을 차려 놓아

그곳에서 예불을 보다보니 추운서 날로를 나무 난로를 설치 하여 굴뚝으로는 흰연기를 내 품고 있더군요...

 

 

 

. 추녀  끝으로는 풍경소리만 우난히 크게 들리기만 하는

원심원사가 하루라도 빨리 복원되어 옛것을 찾아 염형한 생지장 보살님의 도량을 받아갈수 있는 날이 기다려 지기도 합니다..

 

 

 

. 대웅정의 현판 글시는 어느분의 글씨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지금에 복원을 위해 노력 하시는 전 해인사 주지스님 세민스님이 쓰시지는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게 합니다...

 

 

 

.산신각

 

산신을 모신 전각으로 천불전 건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약 70cm 높은 축대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동,서,북의 ㄷ자상으로 축대를 쌓았다.

두 시기의 전물지가 발견되고 있는대 1기의 것으 남북 약5m의 기단위에 조성되어 있으며.측면 1칸의 규모이다.

처석은 1m 미만의 소형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적심석도 매우 얕게 설치하였다.

발굴 결과 동쪽에서 기단으로 확인되는 두 번째 시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건물지 외곽에서 흙으로 빚은 불상조각들이 출토 되었다.. 

 

 

 

. 대웅전 벽면에 그려진 벽화

 

 

 

. 극락보전 벽면에 그려진 벽화

 

 

 

. 대웅전을 벙종과 함게 바라 봅니다....

 

 

 

. 지금 복원중이라 대웅전 앞 마당도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몇년전에 전쟁에 희생된 영혼들의 유령대제를 지내지도 한곳이다.

   

 

 

. 극락보전 얼마전에 큰 행사가 있었던것 같다.

아직도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내요.... 

 

 

. 조용한 극락보전 뒤뜰에서 사신각을 바라 봅니다...

스님들의 목탁 소리가 들려 올것같기도 합니다...

 

 

 

. 극락보전, 대웅전 앞에는 쓸쓸하지만 

북원중이라 그런것 같았으며 겨울이 되면서 발길이 끝기지 않았나도 싶어 집니다.. 

 

 

 

. 한창 복원공사중인 관음전을 살펴 봅니다.

멀리 보이는 계곡이 절골입니다..

그런대 살피려닌 아직 공사가 너무 미진한 상테에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중지된 상태라 생략합니다.

 

 

 

. 앞마당에는 공중인 자재들이 쌓아 놓았으며

좌추으로 보이는 건물이 임시 법당으로 오늘은 일요일이다 보니 지역주민 몇명과

스님 몇분 외 군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 2004년에 북원된 국락보전과 대웅전

 

원심원사는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원대한 기도 도량으로 꾸며질 전망이다.

60년 가까이 군사보호 구역으로 묶여 있어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는 데다 역대 고승들의 부도 12기,

보살들의 공덕비 3기 등이 있는 부도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잘 보존되고 있어

중요한 당우와 강원 등이 순차적으로 복원되면 사부대중이 찾아와 수행하고 기도에 몰입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연천에는 전통 사찰이 없는 만큼 원심원사가 복원되면 그동안 낙후됐던 연천 지역의 새로운 관광 소득원으로도 자리잡을 전망이다.

 

 

 

. 이런 원심원사는 아직은 미진해 보이는 천년 고차이였으나.

복원중에 있는 원심원사..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있는 심원사는 이곳에 있던 생지장 보살 도량[生地藏 菩薩 道場]

6.25정쟁이 끝나면서 묘연해 지던것을 민간인 통행금지 되는 군사지역을 찾을수 없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자리하여 심원사라는 이름으로 1955년 김상기 주지스님이

생지장 보살님을 모시게 된것입니다.. 지금은 심원사에는 명부전이라는 전각을 지어 그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러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보니 보시는 분들은 이상하게 생각을 할수 있는 부분이라

연천에 있는 심원사는 "원래의 심원사" 뜻으로 "원심원사" 라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런지는 매우 궁금해 지는 면이기도 합니다.

 

피곤해토닥토닥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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