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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06 절골 연천 원심원사 석대암 있는 보개산을 찾아서...

◐ Climbing[2013]/├ ③ 경기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3. 1.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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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 연천 지장산 심원사속 석대암


    ▣ 석대암지 경기도 연천군 최고봉인 환희봉[歡喜峰] 아래인 해발 630m 지점에 있던 암자로, 기록과 전설에 의하면 사냥꾼에 쫓기던 산돼지가 지장 보살상으로 化現하여 창건된 이후 우리나라 지장신앙의 본산지로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어 왔고, 한국불교의 성지로 손꼽히던 암자이다. 보개산 석대기「寶盖山 石臺記」에 의하면 720년[성덕왕 19]에 사냥꾼 이순석, 이순애 형제가 산돼지의 화현에 의해 출가하여 석대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이후 고려시대 화주 중열이 석대암을 중창하고, 법희거사 민지가 석대암 사적을 찬하였다. 고려말에 비구 지순이 지장석상 석실을 축조하고 1861년[철종 12] 남호 영기율사가 석대암을 중수한 뒤 1887년 1935년에도 중수되었다.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었다. 현재 지장전으로 보이는 중심 건물지에는 3단의 석축 위에 건물의 터가 있고, 왼편에도 건물지의 석축이 보인다. 중심 건물지 뒤쪽으로는 우물지와 오른쪽 끝에 해우소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해우소터 너머 삼일암 아래로 바위 밑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1개소 더 있다. 또한 높은 봉우리에는 다듬지 않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누석탑이 있다. 사지 전면에 걸쳐서 다양한 종류의 기와와 자기편, 도기편이 넓게 나타난다. ■ 漣川文化院, 『鄕土史料集』, 1995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연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0 ▣ 연천 석대암 지장영험비 석대암지에서 동남쪽으로 50m 거리의 숲 속에 있다.1635년(인조 13) 5월에 건립된 석비로 비좌와 비신으로 구성되었다. 방형의 비좌는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비신은 상단이 둥글게 마무리된 월두형으로 제작되었다. 규모는 비좌는 너비 186cm, 폭 68cm, 두께 39cm이며 비신은 높이 174cm, 너비 72cm, 두께 17cm이다. 현재 비신은 비좌에서 이탈, 약 15°정도 우측으로 기울어 있다. 비신의 앞·뒤 양면에 각자 되었는데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앞면의 상단에 전서체로 「地藏靈驗碑」라고 새겨져 있고, 하부는 글자가 새겨졌던 것만 확인될 뿐 판독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뒷면에는 축원문, 건립연대, 시주자들의 이름 등이 가득 새겨졌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판독 가능한 글자는 몇 자에 불과하다. 많은 영험담으로 유명한 석대암 지장보살의 가피력을 얻고자 축원하는 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漣川文化院, 『鄕土史料集』, 1995 ■ 경기도박물관, 『京畿道佛蹟資料集』, 1999 ■ 한국학문헌연구소편, 『乾鳳寺本末事蹟·楡岾寺本末寺誌』, 아세아문화사, 1977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연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0

 

. 지장보살로 영혐한 심원사와 석대암을 찾아 보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물론 이곳은 보개산 지장봉과 환희봉[877m] 50M 전방에 위치하고 있어

찾는것은 산행을 준비 하여야 합니다.. 주차하고 준비 합니다...

 

 

 

. 절골천1교 이다리는 예전에 없었던 다리이며 몇년전부터 신원사 복원을 하면서

군사지역으로 통제 구역이였으나 얼마전에 군부대로 부터 도로를 이양받아 설치한 다리로 보여지더군요.

사진 방향으로 직진 하면 산행 제2등산로 들머리가 됩니다.

 

 

 

. 산행시작을 위해 안내지도를 검토해 보면서.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가 있어 우리는 제2등산로 시작으로 방향을 잡아 봅니다.. 

 

 

 

. 절골천2교 절골마을 들어서면서 군부대 울타리 따라 들어 오다보면

신원사 부고군 지나 2번째 다리를 지나면 주차장 보인다.

심원사를 만나게 된것이다.

   

 

 

. 지나온 절골천2교 2004년에 준공 하였다.

 

 

 

. 주차장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심원사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있어 

이곳은 2005년 심원사에서 "연천 원심원사" 로 개칭하여 설명을 하였더군요. 

저도 그냥 원심원사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 연천 심원사지[連天 深源寺址] 경기도 기념물 제214호


    보개산[寶蓋山] 심원사는 옛 금강산 유점사의 말사로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암자를 관할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靈源祖師]에 으해 영주산 흥림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859년[헌안왕]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재창하고 천불을 봉안 하였으며 1396년[조선 태조5년]에 무학왕사[無學王師]가 3창하면서 보개산 심원사로 개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하여 인숭[印崇], 정인[正印] 등이 1592년[선조28년]에 다시 4창한 것을 계기로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소요[逍遼], 태능[太能], 제월[齊月], 경헌[敬軒] 등 조선 중기의 선승들과 수많은 학승들이 주석 정진하는 호국불교의 대가람을 형성하였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250여 칸의 건물과 1,602위의 불상이 위용을 드러내는 대찰이였다. 이후 1907년[용희 원년] 의병전쟁의 와중에 일제[김화수비대]가 소각한 것을 이진학[李鎭學]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노력으로 점차 다시 복구하였고 6.25 한국전쟁의 병화로 소실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지장성지로서 전국에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수많은 선승과 학승들을 배출하였다. 13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심원사는 효과적인 복원을 위해 2005년 원심원사로 개칭하였으며 현재 다방면의 노력으로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어 머지않아 예전의 웅장했던 사격[寺格]을 다시 볼수 있을거으로 기대된다.

 

. 원심원사는 지금 복원중이라 크다는 느낌외에는 아무런

느낌을 받을수 없어 보인다..

지금은 대웅전과 극락보전 2곳만 복원이 되어 보잘것없어 보이나 지금 한창 공사중인 관음전을 보면

원심원사의 크기로 보아 대찰임을 알수 있을것이다.

 

 

 

. 지금부터는 원심원사를 지나 석대암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 원심원사 약0.9km쯤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

석대암까지 1.8km 남았다고 하내요. 중간에 성주암터도 있다고 합니다.

  

 

 

. 중간 중간에 오르다 보면 안내 이전표는 잘 되었더군요.

누구나 처음 찾는 사람들도 어려움 없어 보이는 등산로 표지판이엿습니다.

 

 

 

. 오르다 보면 석대암을 찾는 사람이 쉼터에서 잠시 지장보살님

영험함을 기대해 보기도 하는것 같아 보인다.

 

 

 

. 도로로 보면 엄천나게느껴지는 암자 석대암으로 오르는

임도로 잘 정리 되어 4륜차동차 정도는 올라 갈수 있어 보인다. 

 

 

 

. 조금 오르다 보면 이정표를 만나고

이곳은 구불어진 신갈나무 라는 표지 지역입니다.

 

 

 

. 올라다 뒤돌아 내려다 봅니다.

저멀리 보이는 산은 성산 봉윌 넘어가면 제인폭포 있는 곳이라고 생각 하시면

십게 위치를 알수 있을것이다.

 

 

 

. 등산 안내 지도에 있는 "부부바위" 라는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붙어있던 바위가 갈라지면서 떨어진것으로 설명되 있더군요..

그럼 부부는 살다가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요..

좀 이상해게 느껴진다.

 

 

 

. 부부바위에서 조금 오르다 보면 좌축으로 보인는 작은 동굴

이곳은 지도상에 나온 "수행굴" 이라는 곳이다.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이곳에서 좌축으로 또 보면 굴이 하나더 있는대

곳은 더 커보이면서 사람이 들어가 굴속 내부에서도 생활을 할수 있을정도로 크게 보이더군요. 

 

 

 

. 수행굴 가지는 석대암 암자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곳을 돌아 서면서 윗쪽으로 바로 보이게 되는 암자 바로 올려다 봅니다.

 

 

 

. 암자 바라보면 뒤돌아 2번째 전주있는곳을 돌아서면

바로 수행굴이 있는 장소입니다. 쉽게 이해를 돕기위해 담은 사진입니다.

 

 

 

. 내려다본 사진에서 수행굴 있는곳 좌축으로 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그곳으로 올라가면 황희봉으로 500m쯤 오르면 된다.

그런대 우리는 준비[스팻치] 부족으로 도전하다 포기를 한다. 그래서 석대암으로 올라가 포스팅 합니다.

 

 

 

. 석대암을 오르면서 석축아래 유난히 눈에 띄는 등 오늘은 왜롭게 느껴진다.

 

 

 

. 석축 위로는 암자를 만들어 놓은듯한 건물이

색조가 짙은 빨강색으로 보여 느낌이 요상하게 느껴진다.

 

 

 

. 올라온 계곡길을 뒤돌아 보면서

이재 부터는 석대암을 만나게 된다. 석대암은 사연도 깊으며 개인적인 인맥이 깊은 사람으로 부터

발견하여 지금의 원심원사터를 복원 하는대 많은 도움이 된것으로 보여지는 곳이다.

아래 부터는 그분으로부터 발견 당시와 전설이 소개 될것이다.

 

 

 

. 석탑은 다른사찰의 석탑과는 다르게 보이지만

1984년 향토사학자 이우형님의 의해 발견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있는것으로 보아

석조암 건립된후 신도들의 의해 쌓아진것은 아닌가도 싶다.

또한 우축으로 조금 보이는 쓰러져 가는 연천 석대암 지장영험비가 보이는것 같다.

 

 

 

. 암자를 찾았을대는 보살님께서 지도를 올리는 중이라 조용히

포스팅만 합니다.

 

 

 

. 이건물은 스님 숙소로 콘테이너를 재조하여

이곳에서 숙식을 하시는것 같아 보인다. 바로 우축으로는 사연이 깊은 지장샘이 있는곳이다.

 

 

 

. 생지장 보살님을 만나게된 지장샘 지금도 관리하고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려 말 학자 민지[1248~1326]가 지은 ‘보개산 석대기[寶蓋山 石臺記]’를 토대로 창건 설화를 살펴보자. 지금으로부터 1287년 약726년 전에 성덕왕 19년 때였다. 사냥꾼인 이순석, 순애 형제가 한 마리 금빛 멧돼지를 보고 힘껏 활을 쐈다. 멧돼지는 피를 흘리며 달아났다. 형제가 그 혈흔을 추적하니 환희봉[877m] 쪽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돼지가 멈춘 곳에 닿으니 금빛 멧돼지는 간 곳 없었다. 다만 샘물 가운데 머리만 빠끔히 내놓은 석상만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왼쪽 어깨 가운데 순석이 쏜 화살이 꽂혀 있었다. 형제는 대경 실색했다. 둘은 화살을 석상의 몸에서 뽑으려 했다. 그러나 태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제는 두려워져서 선 채로 맹세했다. “대성[大聖]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소서. 우리를 이 속계의 죄에서 구제해 주시려고 이 같은 신변[神變]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앉아 계신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대성의 뜻에 따라 출가 수도하겠나이다!” 다음날 긴가 민가해서 이곳을 다시 찾은 형제는 또 한 번 놀랐다. 석상이 그 돌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석 형제가 석대암에 모셨던 지장보살상은 지금은 철원 동송으로 이전된 현재의 심원사에 있다. 남북분단의 쓰라린 역사가 석대암을 덮친 것이다. 해방이후 38선 이북인 이곳은 북한땅이었다. 5년간의 북한정권 치하에서는 보개산 내 여러 사찰이 법난의 아픔을 겪었다. 한국전쟁 때 이곳은 피아간 1만3000명의 생명을 앗아간 격전지였다. 석대암을 비롯한 암자들은 한국군이 모두 불태웠다. 남북이 교대로 생지장의 성지를 무참하게 짓밟은 것이다. 다행히 지장보살상은 극적으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직전 지장석상은 인편을 통해 월남한 것이다. 이 석상은 전쟁통에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954년 지금의 심원사[철원 동송 상노리]에 봉안되었다.

 

. 1984년 이우형 항토사학자님 발견당시에는

산짐승과 날벌레들의 보금자리 쉼터로 변해버린 석대암 터는 당시에 걱정하던  이우형님

“괜히 복원한답시고 잘못 놓으면 도리어 망친다”고 누차 강조한바.

지금의 형태로  현대식 건물에 큰 지장보살님을 모셔놓아  이런 형태로 복원이 되고 있었다.

 

 

 

. 김시습의 "매월당집"에 묘사된 석대암의 풍경이다.


    [攀羅문壁上風梯] 덩굴쥐고 절벽잡아 바람부는 천제 향해 오르니 [庵古庭松一鶴棲] 암자 오랜 뜰 소나무엔 학 한 마리 깃들었네 [林下磬聲風外切] 숲 아래 경쇠소리 바람 밖에서 간절하네 [西峰殘照落寒溪] 서쪽 봉우리 남은 해는 찬 시내로 떨어지네 이시 에서는 "바람부는 천제에 오르니" 라는 대목은 풍수지리를 염두에 둔 구절이다.

 

. 지장약수를 음용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건물 내부에 있다.

앞에 있는 해우소 작게만 보인다.

저기 건물 뒤로는 보이긴하나 눈이 많이 있어 다가 가지는 못하였지만 

 연천 석대암 지장영험비 가 있는곳이며 볼때 위테롭게 서있는 비석을 볼수있었다.

비석에는 "지장영험비「地藏靈驗碑」"라 쓰여있다고 하여 알수있게 되었다고 한다.

 

 

 

. 처음 산행 목적은 심원사 포스팅과 함께 제2등산로 → 지장봉 → 제1등산로

절골로 산행 할려했으나 석대암 부근에서는 스팻치 준비를 잊어 눈이 많은 관계로 도전하다

포기 하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선 산행 코스라 다시 원심원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떤일이든 모든 준비는 철저해야 하는대 미진한 아니한 생각으로 아쉽게도 포기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 올것을 약속 드리면서 오늘 포스팅은 이곳가지만... 다음은 심원사에 관해 많은것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OTL배째까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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