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국산 [佛國山]

△. 불국산 “佛國山”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과 백석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466m]. “불곡산[佛谷山]”이라고도 불린다.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으로 나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3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는 기록이 있으며, 『산경표』에는 '한북정맥에 속하는 산'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고을 뒤의 주산[主山]이다. 우음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이다."는 기록이 있다.
산 남쪽 기슭의 유양동은 옛 양주목의 읍치로서, 동헌과 향교를 비롯해 문화유적들이 산재하고 있다.
산 중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이 있다. 백화암은 창건 당시 불곡사라 불렸다고 하며,
절 밑에 있는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전한다.
다른 지명인 불국산은 불국토[佛國土]로 인식하려는 사상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여지도서』에
불국산으로 표기된 이후 불곡산과 불국산이 혼용되고 있다. 『양주목읍지』의 지도에는 정조가
이곳에 행차하였을 때 옥류산[玉流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기사가 있다.
한편, 불국산은 『양주 땅이름의 역사』에 의하면 19세기 말 일본이 제작한 지도에서
불광산[佛光山]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불국산 [佛國山]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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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코스 :
공연장 → 능선삼거리 → 철탑 → 제5보루성 →정상 → 상투봉 →
임꺽정봉 → 악어바위 능선→ 유양공단 →
※ 둘래길
숲길 → 임꺽정 생가 → 관아지 → 양주 별산대놀이 공연장

△. 임꺽정붕을 뒤로 하고는 다시 420봉으로 내려 서면서 바라본
악어 능선 암봉들 저곳으로 하산 할려 합니다.

△. 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바라 보면서 담아 본다,

△. 얼른가고 싶어지는 악어 능선.......

△. 지나온 “임꺽정봉”을 바라본다.

△. 이곳이 420봉 정상 부분이다.

△. 이정표도 만들어 놓아 쉽게 찾을수 있는 곳이다.

△. 상봉, 상투봉. 으로 이어 지는 능선 길이다.
시원하게 보인다.

△. 다시 이곳을 내려서면서 우축으로 “악어바위”라는 이정표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 악어 능선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공기돌 바위”다.

△. 뒤로는 임꺽정봉도 보인다.

△. 다시 이곳에서 상봉으로 이어 지는 능선을 바라 본다.

△. 이쪽 방향은 유양동 “유양공단”이다,

△. 이꼿 까지 오면서 코끼리 바위를 지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냥 지나왔으며 앞에보이는 높은 바위 우축으로는 악어가 한마리 붙어 있다.

△. 이 곳에 있는 “악어바위”다 오르다 그냥 굳어 버린 형상이다.

△. 악어바위 지난면서 만나게 되는 “북부머니 바위”입니다.

△. 복주머니 바위 우축으로는“호빵 바위”처럼 보인다.

△. 정상적인 등산로가 “호빵바위”앞으로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면 악어 바위는 만날수 없게 된다.

△. 북주머니 바위를 담아 본다.

△. 이렇게도 담아 보고......

△. 호빵바위도 이렇게 담아 보고......
한참을 하산 하다 보면 이정표 상에서 만나게 되는 불곡산 둘레길 “숲길”을 만나게 된다.

△. 숲길은 불곡산 둘레를 이루고 있어
다시 원점으로 회귀 하기 좋은 코스 입니다. 이곳을 이용 하면 불곡산 산행이 더욱 즐거울것입니다

△. 백화사 부근에 계곡이다.
지금도 수량이 적어 보이지만 족탕 가능할 정도는 된다.

△. 계곡을 넘을수 있게 다리 공사를 해 놓았다.

△. 둘렉리도 이정표 잘 만들어 놓았으니 참고 하시면 된다.

△. 우리는 “양주별산대놀이 공연장”으로 갈것이다.

△. 불곡산 둘레길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참고 하시면 되지요..

△. 의적 임꺽정 생가터,
이제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10여분 내려오면 좌로 갈라지는 길에 ‘임꺽정 생가터’란 방향지시판이 서 있다.
잠시 뒤 길 아래 밭 같은 평평한 공지 한 가운데에 임꺽정 생가터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이 터에 대한 설명도, 임꺽정에 대한 설명도 없으니 뭔가 빠진 듯하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황해도를 근거지로 한, 간 큰 도둑이었다.
일반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벽초 홍명희[壁初 洪命熹] 선생이
1928년부터 1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임꺽정’이란 소설 덕분이었다.
암울하던 시대에 의적 임꺽정은 조선 민초들의 가슴을 틔워 주기에 충분했다.
황석영의 ‘장길산’도 어찌 보면 임꺽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종실록에는 임꺽정에 대한 기사가 4번 실려 있다. 그만큼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임꺽정 체포를 위해 그 본거지를 습격한 관군장[牌頭]은 7발의 화살을 맞고 피살되기도 했으니 그 위세를 알만하다.
임꺽정에 대해 사관은 준엄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盜賊之熾發 由於守令之掊克, 守令之掊克 由於宰相之不廉].”
우리시대를 향해 생생히 외치는 소리인 듯하다.

△. 어사대비“御射臺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양주 관아터 뒷편 맞배 지붕을 한 비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정조 16년[1792년] 9월 정조대왕이 광릉[세조의 능]에 행차할때, 북쪽 길을 택했다가 귀환길에
이곳에 행차하여 3일간 머무르며 민정을 살피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며...
신하와 함께 사대에서 활을 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양주목사 “이민채[李敏采]”가 비문을 써서 기념비을 건립한 것이다.

△. 양주 관아지 “楊州官衙址”경기도 기념물 제167호
양주관아는 중종 1년[1506년]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사둔면[현 의정부동]으로 이정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楊州牧]을 관할한 행정관청으로 경기읍지[1871년] 동현[東軒], 객사[客舍], 사창[司倉], 군사시설 등 약30여개의
시설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수 있다.
지금은 동현[東軒] 만이 복원되 있다.

△. 양주 관아지 뒤편에 있는 활터.
이곳에서 10여 분 가면 유양동[維楊洞] 옛 양주관아에 닿는다.
이곳은 초기 “고주내[古州內: 현 양주시청 동쪽 소홀읍 방향, 양주2동 근처]”에 있던 관아를
중종 때 옮겨 400여년 역사를 가진 오랜 읍치였다. 동헌[東軒]도 복원했고,
관아지 마당 한컨에 있는 공덕비가 많이 한자리에 모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양주 수령들의 공덕비며 영세불망비들도 모두 모아 놨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든지 그 고을을 수령했던 이들의 공덕비가 있다.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의 그 많은 공덕비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는데 왜 민초들은 그다지도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 답은 아래의 예로써 대신하려 한다. 함양 상림[최치원 선생이 만든 인공 숲]에 가면
조선조 최고의 탐관오리며 동학농민전쟁의 원인제공자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공덕비가 있다.
이름하여 군수조후병갑청덕선정비[郡守趙侯秉甲淸德善政碑], 청덕과 선정이란 단어의 뜻을 새로 정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 솟대로 안내되 있는곳을 따라 가 보도록해 보겠습니다.

△.금화정“金華亭”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 정조 때 어사대를 세우기 직전으로 추측된다.
금화정의 금[金]은 양주목의 단합을 뜻하고,
화[華]는 아름다운 백성의 뜻을 잘 수감하여 번영을 가져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목민관은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진정한 통치자의 덕목이라고 여기고 목민관이 살기 좋은 치세를 구상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양주관아지 뒷편 불곡산 들머리 계곡인 방선천변에 있다.
옛 부터 유양팔경 중 제 5경으로 “금화모연[金華暮烟]”이라고 전해진다.

△. 금화모연 “金華暮烟”
금화정에 저문 연기
금화정은 양주 관아 터 동쪽에 위치하여 있는 정자이다.
양주목사가 백성들을 사랑하여 함께 즐겼다는 “관민동락[官民同樂]”의 사상이 배어있는 장소라 전한다.
현재 건물은 최근에 복원되어 있으며, 개울에 있는 바위에 “금화정[金華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금화정 터 였음을 알려준다.
금화정 주변 민가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가 고요한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 주변을 잘 살펴보면 폭포수 흐르는 게곡을 이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면 시원함을 찾아 이곳을 들어와 더위를 시키는 자리로 보여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자를 올라 가는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에 이런 안내 표지가 남아 있지 않는가도 싶습니다. 잘 보존 되어야 할것을 느껴봅니다.

△. 기당폭포“妓堂瀑布”
기당에 내리쏟는 우렁한 폭포
기당폭포는 이곳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아름다운 폭포이다.
특히 여름철 비가 내린 뒤 폭포수가 떨어지는 광경은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하여 이루 말할 수없는 장관이였다.
지금은“유양폭포”라고도 하며, 기생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정자가 있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주변에는 금회정[金華亭]가 있다.

△. 두 어린아이 들은 그런 풍류를 알수 있는것 같아 보인다.
여유로운 모습에 그냥 지날수 없었습니다.

△. 지금도 한컨에서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 금화정 깊은 계곡에서 유양동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 담은 사진입니다.
이후 이곳을 둘레길로 포함되있어 그곳을 지나면서 양주 별산대놀이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 이곳이 불곡산 등산로 들머리 입니다.
둘레길로 이곳까지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 산행은 불곡산의 아름다운 암봉들과 괴암 괴석들을 보았으며
향기로움을 느낄수있는 옛 문화적인 흔적들어 즐거운 산행이 되었던것 같았습니다..

△. 들머리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 지도
어느 산이든 등산을 위한다면 사전에등산로 탈출로등 모든 정보를
사전에 준비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것 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다음은 계양산 산행기가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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