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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② 경주 불국사 다보탑 일제의 수난사를 격어낸 신라 천년고도 국보 제20호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12. 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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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천년고도 경주 불국사



 

 



    ○ 경주 불국사 [慶州 佛國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화엄장엄세계인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화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문화재와 보물문화재가 있고 매년 수백만의 내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의 뛰어난 불교예술작품들이 자리한 불국사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의 뛰어난 불교문화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불국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계시고 한국불교의 지혜의 맥을 이어가는 중심적인 수행처이기도 하다. 또한 불국사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전시관으로서 세계에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00년 한국불교 수행정진과 지혜의 도량으로서 오늘도 끊이지 않는 용맹정진의 푸르른 서기가 흐르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이다. 출처 : 불국사 홈피에서

 

 


 

. 관음전을 앞에 보이는 계단을 내려와 무설적으로 들아 가봅니다..

관음전 무설전 대웅전 다보탑 석가탑 극락전 으로 돌아 보겠습니다.. 

 



 

. 회랑 옆에서 대웅전 회랑을 바라봅니다. 다보탑 상륜부가 작게만 보이는군요..

 



 

. 회랑이 아름다워 이렇게 사진을 담아본다.

회랑[回廊] : 종교,궁전 건축 따위에서 건물의 중요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 달린 복도를 말한다.

 



 

. 경주 불국사 무설전[慶州 佛國寺 無說殿]을

동쪽 회랑에서 담아본 그림입니다.

 



 

. 무설전[無說殿]은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는 앞전에 게시글에 소개 하였지만.

그것은 안내문에 있으면서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태국 왕실에서 기증한 불상도 모셔진곳이다.

 



 

            △. 지장보살                                                                               태국 왕실에서 기증 받은 불상

이렇게 보관되어 있으면서 지금도 무설전으로 사용 된다고 한다...

 



 

. 대웅전 뒤편에 있는 무설전은 불국사에서 가장먼저 지어진건물로 기록되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왕명에 의해 지어진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신라 당시는 화엄경을 이곳에서 가르쳐으며 즉 학교 강당 같은 건물로 명칭을 무설전[無說殿]이라 이름을 붙여졌다.

 



 

. 무설전[無說殿]

말이 없는 전각이라는 의미는 오묘한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의미다.

 



 

. 대웅정 뒤편을 올라 봅니다. 무설전과 동쪽에는 가을색을 지키려 한다만은

너무 늦어 시들어 가는 모습이 아쉽다....

 



 

. 대웅전 뒷편 단청을 바라보니 이곳도 동물의 형상들이 간간히 보인다..

 



 

. 이곳은 대웅전 서쪽으로 극락전 내려서는 회랑이다.

 



 

. 다시 돌아와 지금은 광광객들이 뜸하여 대웅전 석등을 담아본다.

앞넝에 이곳 구명을 통하여 대웅전 부처님 얼굴을 바라 보며 기도 하던곳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꼭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모습이 줄을설 정도다..

사진이 어두워 얼굴을 보면 담은 사진이 않보인다...

 



 

. 이곳 다보탑도 다시 돌아와 사진을 담은것은 못내 아쉬웠던

균열부분 보수, 해체 중인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佛國寺 三層石塔]을 보기 위해서다.

 



 

.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국보 제21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입원중인 불국사 삼층석탑은 사진을 담는것 자체가 예의가 아닌것 같아 사진은 생략 하며

아래 영상이 있어 대신 하여 봅니다... ▶ 클릭 하시면 영상이 너올것입니다. 꼭 보셔요.

 



 

. 불국사 삼층석탑 해체 작업하여 보고회를 갖은 영상이다.

참고 하시면 좋을것 같아 함께 올립니다...

 



 

. 여기서 다시 국보 제20호인 불국사 다보탑을 돌아 보겠습니다.

 



 

. 처음 다보탑이 만들어질때는 사자상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이 있었다..

1925년경 일제시대때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 하는 과정에 탑 속에 있는 사리와

유물들이 모두 사라저버려 그 행방을 알수 없었으나 옛날 사진에 보면

사자상이 사방으로 있었음을 알수 있다.

 



 

. 일제시대의 모습이라 하지만 원래는

사자상이 네마리 라고 하나 사진상에는 두마리가 보인다.

 



 

. 다보탑과 삼층석탑[석가탑]의 각부 명칭입니다....

 



 

. 다보탑 상륜부를 보면 높이는 약10.4m라고 하며

탑신부의 연꽃 모양의 팔각연화석와과 난각석으로 둘린 탑신이 어디에서 나 볼수있는 것은

아니여서 그 가치성을 더 하는듯 합니다..

 



 

. 기단부에 홀로 있는 사자상은 옛날 찬건당시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정교한 배려로 보이지만 쓸쓸함을 주고 있다...

 



 

. 다보탑도 2009년에 상륜부와 탑신부분으로 빗물이 숨어들어 심각한 균열과 박리[剝離]현상으로

강화, 접착, 방수처리하여 복원 하였다. 또한 1972년에는 2층 하부 사각난간, 상륜부등에 풍화로 인해 균열 보수한 바도 있었다. 

 



 

.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신라 불교 문화의 증거로 남아 유지하고 있다.

 



 

. 다보탑 속에 있던 유물들은 강탈 당한것으로 보여지지만 아직 까지도 근거없는 말로

그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것들을 보아 그나마 지금은 삼층석탑을 해체. 보수. 작업을 하고 있으면서 그의 흔적도 찾아볼수있기를 기대하며

아쉬움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 극락전 지나 나한전 으로 이동 합니다. 

 



 

. 동쪽 회랑보다는 적게 보이는 서쪽 회랑 사람이 서있는 곳으로 극락전을 내려 섭니다..

 



 

. 극락전 내려 서는 문에는 문고리가 햇빛을 받으며 손님 맞이하는 듯하여

사자상의 모습에 인사를 나눔니다. 그런대 좀 이상하다. 흔적은 있는대..?? 

 



 

. 또 다른 한쪽에는 링까지 달려 있으나 아마도 다른 한쪽은 링이 떨어져 나간것으로 보여지나

한편으로는 의심을해 봅니다.. 지금 사진에는 흔들려야 하는 링이 흔들리지 못하게 못질을해 놓은것 때문에

으심을 하게 하는것 같았습니다.~~[떼어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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