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앞로 더 올라 가면 좌축으로 호남의 5매[五梅]중 하나인"계당매[溪堂梅]" 가 있는곳이나온다.
송강문학의 고향마을, 이곳에 계당[溪堂]이 있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 229번지.
송강 정철이 자주 찾던 곳으로 선생의 詩에 나오는 만수동 이웃집[萬壽洞隣家]이다.
만년에 네번이나 창평(지근의 담양)으로 낙향했던 송강이 즐겨 찾던 이 집터는 송강의 4남
기암 정홍명[畸庵 鄭弘溟 1582-1650]에 의해 처음으로 계당이라고 편액되었다.
기암 정홍명이 1616년에 낙향, 송강이 자주 찾던 이 터에 새로 집을 짓고 계당[溪堂]이라 편액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그는 여생을 마쳤다. 기암 정홍명은 1616년에 계당을 짓고 살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성공했다는 조보[朝報]를 받았으며, 좌절되었던 벼슬길에 올라 대제학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만년에는 계속 내리는 벼슬도 마다하고 이곳에 거처하며 아버지 송강의 작품들을 정리하여
오늘의 송강문학을 전하게 되었다. 기암도 역시 대시인이었다. 그도 1,100여수가 넘는 詩 등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기암 이후인 1689년, 송강의 5대손으로 송강이 공부하던 환벽당을 인수했던 수환 정흡이 조카 소은 정민하를 양자하면서
당시 계당에 살던 양경지선생에게서 계당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그의 종손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소은의 장남 정근이 호를 계당이라한것이 지금껏 당호로 불려온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계당의 사랑채는 1902년 화재로 불탄던 것을 당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951년 11월 6.25전란의 혼란이 계속되던 때, 빨치산은 지실마을을 방화했는데
이때 계당도 7동이 전소하고 이 사랑채만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다.
호남 5매[五梅]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전남대의 대명매[大明梅], 고흥 소록도의 수양매[水楊梅 ]가 있다.
이 가운데 고불매와 선암매는 각각 천연기념물 486호와 488호로 지정돼 있다.
=♤=== 지실마을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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