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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6】도굴의 수난을 지켜낸 순회세자.공희빈 윤씨묘 순창원 찾아서....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4.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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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원[順昌園] 순회세자.공희빈 윤씨 묘



 

 



    ◎ 산행장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로 서오릉. ◎ 산행일자 : 2012년 03월 31일 [토요일]

    ○ 순회세자[順懷世子] 순회세자[順懷世子,1551년 ~ 1563년] 순회세자는 13대 명종의 원자로 1551년[명종 6] 태어나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황대임의 딸과 혼담이 오갔으나 그녀가 병약하여 1년 넘게 가례를 미루자 1559년[명종 14] 윤옥의 딸로 세자빈이 교체되어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순회세자는 가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잇지 못한 채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명종의 대를 이어 중종의 손자 하성군[훗날 선조]이 대통을 이었다. ○ 공회빈 윤씨 [恭懷嬪 尹氏] 공회빈 윤씨 [恭懷嬪 尹氏 : ? ~ 1592년] 공회빈은 명종의 하나뿐인 아들인 순회세자의 부인이다. 처음에 순회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된 황대임의 딸이 맹장염으로 추정되는 심한 복통을 이유로 가례를 미루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를 양제[세자의 후궁에게 내리는 종2품의 품계]로 삼고 1559년[명종 14)] 공회빈이 가례를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병약했던 순회세자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공회빈은 30년을 홀로 지내다가 1592년[선조 25] 세상을 떠났다. ♡ 일화 공회빈 윤씨가 죽던 1592년(선조 25)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실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따라서 선조는 의주로 달아나기 직전 공회빈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그녀를 궁궐 후원에 임시로 가매장 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양이 탈환된 후 돌아와 보니 가매장한 무덤은 파헤쳐져 흔적도 없었고 시신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 선조는 사람을 풀어 후원을 모두 파헤치며 시신 발굴에 나섰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선조는 시신도 없이 신주만 모셨는데, 그 뒤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신주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서오릉 관리소

 

 


 

. 홍살문[紅虄門] 또는 홍전문[紅箭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붉은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새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紅問] 또는 홍전문[紅箭門] 이라고도 한다.

특이한점은 이곳은 배위[拜位] 자리가 않보인다.

 


 

. 홍살문을 지나면서 정자각을 향하며 올라가는곳 까지는 신도와 어도가 분리 되있다.

※ 신도[神道] : "신"이 다니는길

※ 어도[御道] : 임금이 다니는길

 


 

. [않좋은 소식] 2006년 1월 18일 도굴사건

 

문화재[당시 청장 유홍준]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사적 제198호] 경내 순창원[順昌園]에서

전문도굴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도굴 미수 현장을 발견하고 현장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순창원은 조선 13대 명종[明宗]의 원자[元子] 순회세자[順懷世子.1551-1563]와 공회빈[恭懷嬪] 윤씨의 합장묘로,

문화재청에 따르면 1월 18일 오전 발견당시 도굴범이 파낸 것으로 추정되는 봉분 뒤편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로 다시 메워져 있었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팀의 현장 조사 결과, 도굴 갱은 거의 수직으로 지하 2.7m 깊이까지 파여져 있었으나

단단한 목탄층에 막혀 더 이상 파내려 가지 못하고 도굴이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 도굴 미수사건과 관련, 조선 왕릉ㆍ원ㆍ묘에 대해 일제점검을 실시하고 순찰을 강화할 방침이다.

 


 

. 이렇게 보면 능성 앞에는 소나무가 자라면서 가려지는 현상으로 능성이 잘 않보이는것을

아마도 도굴범 들이 노렸을것으로 보여지더군요 사진상으로 보아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생각된다.

 


 

. 예감[망료위 望療位]

능에서 임금이 제사[祭祀]를 지내고 축문[祝文]을 태우던 곳

 


 

. 정자각[丁字閣]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집.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 능침공간에서 제향공간인 정자가을 바라본다.

좌측으로는 조금보이는 터 자리가 아마도 수복방터 인듯해 보이기도 한다.

 


 

. 조선 제13대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順懷世子]와 세자빈 공회빈[恭懷嬪] 윤씨의 합장묘.

 

사적 제198호인 서오릉 내 경릉(景陵) 왼쪽 언덕 위에 있다.

원래는 순회묘라고 하였으나 그 뒤 순창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왕실의 무덤은 품격에 따라 능, 원, 묘로 구분하였으며 이 가운데 원은 왕의 생모나 왕세자, 빈의 무덤을 가리킨다.

봉분 주변으로 정자각과 문인석, 여러 석물 등이 배치되었으나 비각과 비석은 남아 있지 않다.

 

순회세자(1551~1563)는 명종의 장자로 태어나 1557년(명종 12) 7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요절하였다.

공회빈 윤씨(?~1592)는 윤옥의 딸로 1559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요절하자 30년을 홀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 출처 : 백과사전

 


 

. 석등.석마.석호.석양.혼유석.문인석. 등은 있었지만

왕릉에서는 보이던 망주석.무인석.병풍석.등 몇가지는 후궁묘.세자묘.등등에서는 볼수가 없는것이 특징이며

한차례의 수난을 격은뒤라 주변에는 CCTV 감시 녹화를 하고 있더군요. [문화재 보호를 위해]

 


 

. 요즘은 개인적으로 습성이 한가지 생겼습니다.

묘지를 둘러보고는 항상 뒤면으로 올라가 사진을 담아 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습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보면 앞이 트인 시원함을 주는것 같아서 일거란 생각이드는군요.

아늑하고 앞 트임이 시원함이 있어 아마도 명당이라고 하는듯해 보이더군요... [개인작으로 공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능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곳에 흰색의 꽃이 나를 반갑게 맞이 하여 주더군요..

 


 

. 한번의 수난을 격었고 지금은 철저해 보이는 CCTV 설치로 또다시 이런시련을 없었으면 한다.

잘 관리된 옛것의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함께 께닫고 서로가 보존에 노력해야 할것 같았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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