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후
자식들과 손주들[의소세손, 화완의 딸 등]의 죽음을 지켜보던 그녀는 1764년 음력 7월 26일,
사도세자가 죽은 지 2년 후 사망하였다.
영조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빈의 장례를 후궁 제일의 것으로 하였고, 의열[義烈]의 시호를 내렸다.
뒷날, 고종 대에 이르러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자 묘[墓]가 원[園]으로 승격되며,
수경원[綏慶園]의 원호를 받았고, 시호 소유[昭裕]가 더해졌다. 칠궁에 올랐다.
그녀의 사당인 선희궁[宣禧宮]은, 그녀가 죽은 1764년에 건립되어
의열묘[義烈廟]라 불리다가 1788년 [정조 12년]에 비로소 선희궁이 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으나,
1870년 [고종 7년] 위패를 육상궁[毓祥宮]으로 옮겼다가,
1896년 선희궁으로 되돌린 뒤, 1908년 [순종 2년] 다시 육상궁으로 옮기는 등 변동이 잦았다.
현재는 모든 칠궁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존재하고 있다.
신교[新橋]는 신교동 70번지와 청운동 108번지를 이어주는 다리로 선희궁을 만든 후
그 동편에 새로 놓았는데 새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