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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수양대군 맏아들 추존왕 덕종왕릉 경릉[敬陵]을 찾아서..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4.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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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존왕 덕종 과 왕비 소혜왕후 한씨 쌍릉



 

 



    ◎ 산행장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 산행일자 : 2012년 03월 31일 [토요일]

    ○ 추존왕 덕종[德宗] 추존왕 덕종[德宗, 1438년 - 1457년] 의경세자는 1438년(세종 20) 9월 15일 수양대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445년(세종 27) 7세 때 도원군에 봉해졌으며, 아버지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1455년(세조 1) 7월 26일 세자에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글 읽기를 즐겼으며 서예에도 능했으나 1457년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공작재를 베풀고 병의 치유를 빌었는데, 이 때 신숙주, 한명회 등도 함께 참여하여 세자의 완쾌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20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 일화 추존왕 덕종의 아버지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 단종을 유배 보낸 후 사약을 내렸다. 따라서 늘 이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세조의 업보로 인해 그의 아들들이 단명하였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곤 하였다. 의경세자의 죽음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세조가 영월에 귀양 보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잠이 든 날 밤, 그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그녀는 분노한 얼굴로 나타나 세조를 꾸짖었다. “너는 흉악하고 표독스럽게도 내 아들의 왕위를 빼앗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벽지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고 하는구나! 무슨 원한으로 이러는 것이냐? 네가 나의 아들을 죽이니, 나 역시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꿈에서 깬 세조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동궁의 내시가 급히 달려와 세자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한다. 세조는 급히 동궁으로 달려갔지만, 의경세자는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고 한다.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에 세자가 숨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분노한 세조는 단종 복위 사건을 빌미로 현덕왕후를 폐위한 뒤 능을 파헤쳐 바닷가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 소혜왕후[昭惠王后,1437년 ~ 1504년] 소혜왕후는 1437[세종 19] 좌의정 한확의 딸로 태어났으며,1455년 세자빈에 간택되었다. 남편인 의경세자는 20세에 요절하였는데, 아들 성종이 즉위한 후 1471년[성종 2]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왕대비가 되었다.그녀는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했으므로 세조가 ‘효부’라는 도장을 만들어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불심이 깊어 불경을 언해하기도 했고, 부녀자의 교육을 위해 『명심보감』 등의 유교서적을 재편집하고 국문으로 번역해서 『내훈(內訓)』이라는 책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4월 27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승하하였다. ○ 일화 소혜왕후는 1504년[연산군 10] 4월 27일에 68세로 승하하였는데, 이는 손자인 연산군의 폭행에 기인한 죽음이었다고 전한다.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모함을 받아 폐위된 후 사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며 관련자들에게 대대적인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병상에 누워 있던 소혜왕후는 그러한 손자를 꾸짖었는데, 연산군이 이에 반발하며 그녀를 머리로 받았다고 한다. 소혜왕후는 이러한 충격으로 며칠 후 승하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서오릉 관리소

 

 


 

. 다른 릉과 다른점 없이 이곳도 홍살문과 함께 배위터.참도.정자각까지 오를수 있다.

배위터는 다른곳 보다는 적어 보였다.

 


 

. 배위터와 함께 안내문 내용.

 

경릉 덕종[德宗,추존]과 왕비 소혜왕후[昭蕙王后,추존] 한씨[韓氏]의 능이다.

덕종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世祖]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세자가 되었으나. 20살 나이로 돌아가셨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成宗]이 왕위에 오르면서 덕종으로 추존 하였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로 세조 즉위년[1455]에

세자빈이 되어 월산대군[月山大君]과 성종[成宗] 형재를 낳았으며.

성종이 왕위에 오른뒤 왕비로 추존하면서 소혜왕후라 부르게 되었다.

연산군[燕山君] 10년[1504]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부녀자의 예의범절에 관하여 쓴 내훈[內訓]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 수복방 능을 지키는 수복장들이 기거 하며 지켰던 방입니다.

다른 곳에는 터만 남아 있었으며 이곳만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

 


 

. 수양대군의 맏아들 의경세자 [추존왕 덕종]의 능이다.

[조선 제8대 예종의 형이며, 제9대 성종왕의 부친]

 


 

. 경릉 또한 다른 왕릉에서 볼수있는 동원이강 형식을 뚜렸하게 보이는 능이

양쪽 언덕위에 능이 자리 하고 있다.

 


 

. 비각뒤로 돌아 덕종대왕릉으로 올라갈것입니다.

 


 

.조선국[朝鮮國]

덕종대왕 경릉[德宗大王 敬陵]

소혜왕후 부우강[昭惠王后 祔右岡]

 


 

. 왕릉으로 올라가면서 정자각을 바라봅니다.

 


 

. 건너로 보이는 소혜왕후 능 아들인 성종이 왕위로 오르면서  인수왕대비 재위 까지 하였었다.

 


 

. 왕릉으로써는 너무 초라 하게 느껴진다.

왜냐 하면 2째 아들인 성종이 후에 왕으로 보위에 오르자. 아버지인 덕종을 왕으로 추존되어서 일것이며

성종이 왕위로 오르기전에 20세로 요절 하여 능이 조성 된것이 초라한것 같았보였습니다.

 


 

. 덕종왕 능은 너무 초라해 볼것이 별로 없어 돌아 내려갑니다.

문인석 장명등 밖에는.. 없다.

 


 

. 비각 있는곳으로 내려와 소혜왕후 릉을 바라 본다 .. 저기도 올라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 정자각 뒤로 보이는 신도.. 신이 정자각까지 내려왔다 다시 이곳으로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신도라고도 하더군요....

 


 

. 왕후릉을 올라가면서 정자각을 담아 보았습니다...

용마루에는 12지간 들로 보이는 형상물들이 장식되 있다.

 


 

. 정자각과 수복방을 담아 본 그림 넒게만 보였으며 오늘은 한적합니다.

 


 

. 소혜왕후 릉을 오르면서 건너로 초라해 보이는 덕종왕 릉을 담아 봅니다.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으로 보이는 능과 능사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 세조[수양대군]의 세자 의경세자[덕종왕] 세자빈 소혜왕후 릉 차후에 덕종의 아들인 성종이 왕으로 오르면서

인수왕대비로 추존되어 재위 하면서 68세로 요절 하여 아마도 릉이 덕종왕 보다 거창 하게 꾸며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어지는 부분입니다...물론 다른 왕릉과는 차이는 없어 보인다.

 


 

. 장명등.혼유석. 망주석. 능을 둘려치고 있는 지대석 등등 다른 왕릉과는 달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 장명등은 8각으로 이루어 진것으로 보아 아마도 연대는

숙종왕 이전으로 알수 있을것 입니다.

[칠이 나름대로~~ 연대 구별법]

 


 

. 문인석. 무인석. 석마 등등 표정이 너무 굳어 있다..

 


 

. 망주석은 총맞은 흔적 같아 보였다.

 


 

 


 

. 돌아서 뒤로 올라왔습니다.

곡장 안으로 보이는 장신구들 모두가 대면 하는 관계로 모든 석조물이 상반을 이루고 있다..

 


 

. 엄습해 보이는 문인석과 무인석 능의 위엄을 알수 있을것 같아 보인다. 

경릉을 정리 하다 보니 아마도 처음에 덕종이 죽음을 맞이하였을 당시에는  "원"으로 칭하였을것이지만

아들인 성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추존왕으로 추존되면서 "릉"이란 칭호를 받았을것 으로 보여집니다.

왕족의 묘들은 "묘". "원". "릉"으로 이름은 붙여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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