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천왕문 일주문을 대신 하는듯해 보였습니다...
일주문은 사방을 둘러 봐도 어디에도 읍다...

△. 사천왕문 내부에서 "해탈문" 뒤로 도피안사 "대적광전"을 바라본다.


△. 좌축으로는 도피안사 종무소 2층은 범종이 있는곳이다..
느티나무 보호종 이라는 문구도 있지만 나이는 600년 되었다고 하내요..
중간에 보면 새집 처럼 생긴것은 새집이 아니라 "겨우살이"라는 놈이다 여기까지 와서 자리잡았다.

△. 도피안사 대적광전[到彼岸寺 大寂光殿]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우리 450번지
문화재 :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 보물 제233호 삼층석탑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서기 856년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제49대 경문왕[景文王] 5년에 도선국사[道善國師]가
향도[嚮導 ] 천여명을 거느리고 천하에 산구가 좋은 곳을 찾던 중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彼岸]과 같은 곳에
이르렀다 하여 화개산[華開山] 현 위치에 도피안사를 창건하여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
[鐵造毘盧舍那佛坐像]을 봉안하고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三層石塔]을 조성한 후 사찰 이름을 도피안사로 명명 했다함.
서기 1898년 조선 광무[光武] 2년에 재화를 입어 당시 주지 스님 법운스님이 재건했고 서기 1941년 1월 당시 주시
김의권스님이 사찰을 개수하여 전통사찰로 이어져 오던 중 해방후에는 공산치하에 있었고 1950년 6.25 동란으로
완전 소실된 것을 1957년 11월 육군 제15사단에서 북원한후 군부에서 관리해 오다 1986년 사찰관리권을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1988년부터 정부지원으로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삼성각[三聖閣]을 개축[改築]하고 범종각[梵鐘閣],
사천왕문[四天王門]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 같은곳 마당옆에 있는 안내문 발취

△. 금와 보살[금개구리] 출현 했다 하여
약 8년전쯤 "SBS 세상에 이런일이. KBS 생방송 무한지대"에 방송 되기도한 삼층석탑 입니다.

2011년 9월 27일 촬영한 사진이며.[옮겨온 사진임]
TV에도 방영된 금와보살님 이랍니다.

△.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모셔져 있는 대적광전과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 이다.



△. 삼성각



도피안사 삼층석탑 [到彼岸寺三層石塔]
강원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 도피안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제 석탑.
지정종목 : 보물
지정번호 : 보물 제223호
지 정 일 : 1963년 01월 21일
소 장 : 도피안사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1178-1
시 대 : 통일신라시대
크 기 : 높이 4.1m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4.1m. 이중기단 위의 3층석탑으로,
사각형 지대석에 8각기단 구조의 특수형식이다. 하대의 8각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상면에는 복판(複瓣) 연꽃이 있으나 단조롭다. 중대석도 8각인데 조각을 장식하지 않았다.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위로 향한 연꽃)이 새겨져 있으나 복련(覆蓮:아래로 향한 연꽃)보다
중량감이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석탑의 것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양식에서 온 것이라 해석된다.
탑신부의 짜임새는 일반 4각 석탑에 따랐으나, 각층 탑신이 매우 높고 옥개석 받침이 감소되었을
뿐 아니라 각형(角形)이 아닌 반원형이어서 특이하다. 다만, 옥개석 추녀 및 낙수면은 신라석탑의
본을 간직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큼직한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탑의 각 부분이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높아 고준한 느낌은 있지만 안정감은 결여되어 있다. 건립 연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이 법당에 있는 비로자나불좌상의 기명(記銘)으로 미루어 865년(경문왕 5)일
것으로 추정된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鐵原到彼岸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관우리(觀雨里) 화개산 도피안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 불상.
지정종목 : 국보
지정번호 : 국보 제63호
지 정 일 : 1962년 12월 20일
소 장 : 도피안사
소 재 지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시 대 : 통일신라시대
크 기 : 높이 91cm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철로 만든 불상으로 높이는 91cm이다.
대좌 맨 아래에는 8판 연화에 귀꽃이 있는 복련석[覆蓮石]이 깔려 있으며,
그 위에 우주[隅柱]가 있는 8각 중석을 얹고, 다시 단판 중엽의 앙련석을 얹었다.
따라서 불신에 비하여 높고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불신의 전면에 칠한 호분[胡粉]은 벗겨졌지만, 옷무늬선과 같은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머리털은 나발인데 육계는 뚜렷하지 않으며 얼굴은 달걀 모양이다. 반쯤 뜨고 있는 눈,
작은 코에 입은 다물었고 두 귀는 짧다. 긴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지 않으며, 수인은 지권인[智拳印]을 하였다.
어깨에 걸쳐 입은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옷무늬는 평판[平板]이 겹쳐진 것 같은 평행선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고려불상과 비슷하다. 신라 후기의 불상으로서는 조형수법이 능숙하고, 각부[各部]의 비례가 훌륭하게 조화되었다.
부처의 등에 조상기가 음각되어 있어 당나라 함통[咸通] 6년, 즉 865년[경문왕 5]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도피안사 만들어진 또 다른 설화는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사니불좌상[국보 제63호]을 제조,철원군 율리리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해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 잠시 쉬는 동안에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만암자를 짓고 불상을 모셨다 합니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임명되었다 합니다.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3층 석탑이 대적광전 앞에 보존되어 있으며 확인한 혈은 일주문 통로에
하나의 혈(지혈) 위쪽으로 2개의 혈이 있다. 대적광전을 위시[爲始]한 모든 부속 건물은 진혈에 들지 못 하였다는
이야기 있어 겸혈[鉗穴]의 명당 자리인 도피안사[到彼岸寺] 라고들 합니다.
위 내용은 온라인 상에서 많이 나오는 도피안사 건립된 내용 입니다.
아마도 율리리 안양사[安養寺]를 찾아가 봐야 할것 같다.



△. 도피안사에서 내려오면 좌측으로 능선을 넘어 보면 앞에 보이는 곳은 학 저수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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