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2.02.07】지혜와 업적을 빛낸 갑곶돈대[甲串墩臺]사적 제306호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2. 8. 07:00

본문



▣ 갑곶돈대[甲串墩臺]사적 제306호



 

. 홍이포[紅夷砲]

 

. 갑곶돈대[甲串墩臺]

 



⊙ 갑곶돈대[甲串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20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갑곶돈은 구강화대교 입구 부근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면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간간이 보인다. 이 돈대 하부는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돈대 설치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갑곶나루가 위치하고 있어서 김포의 문수산성과 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후 조선 인조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이 돈대는 숙종 5년 [1679]에 죽조 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시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산성, 문수산성등을 점령하였다. 동년 10월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해 패주 하였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하였으나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 질렀다. 갑곶돈대 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예전에는 강화 역사관 내에 갑곶돈대가 속해 있다가 페쇄되면서 2010년 10월에 강화 역사 박물관을 개장 하여 갑곶돈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 이곳은 2010년10월전에는 "강화역사관"으로 이름으로 많으 강화의 역사를 소개해 주던곳 이였습니다.

그이후 하점면 부근리에 "강화역사박물관"을 개장하면서 유물들을 옮긴후에 "갑곶돈대"로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이름을 다시 찾게됀곳 입니다..

 

○ 갑곶돈대[甲串墩臺]사적 제306호

 

강화도는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인 동시에 외적이 침입하였을때 왕실이 피난하는 제일의 후보지였다.

병자호란 이후로는  청[淸]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곽 과 진.보.돈 등의 군사시설을  강화 하였는대

숙종5년[1679]에 갑곶돈을 비롯하여 염주돈. 제승돈.망해돈 을 이곳에 소속시키고 갑곶포대를 설치하여

대포 8문을 두었다.갑곶의 성문인 진해루가 강화도 동문 역활을 하였다.

이 돈대는 1977년에 복원 한것이다

 

. 이섭정[利涉亭]

 

1398년[태조7년] 강화부사 이성[李晟]이 세웠으나 무너진지 오래되었다가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갑곶돈대 안에 팔각의2층 정자를 세워 이섭정[利涉亭]이라 현판 하였다. 

 

. 갑곶돈대[甲串墩臺]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8문이 배치된 포대다.

조선1644년 강화의 요충지마다 군대 주둔지를 설치할때, 재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서 1679년에 완성되었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염하강[鹽河江]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海峽]이다.

마치 강(江)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 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들어 오는데,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물높이[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염하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염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염화강 주변으로 약20KM로 이어지는 곳에는 보.진.돈 등이 많이이루고 있으며 계속 포스팅 하겠습니다

 

. 요즘 추운 날씨로 염화강은 강물과 만나는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얼음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주었으며

알라스카의 얼음이 바다 물결을 따라 흐르는것 처럼 밀물과 설물로 음직임도 볼수있었습니다.

 

. 구 강화대교 지금은 접근을 할수 없도록 출입을 금지하고 있더군요

뒤로는 신 강화대교가 문수산과 함께 사진에 담겼습니다. 

 

. 갑곶포대에서 이섭정을 바라본 사진이다. 이섭정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이는대요..??

 

. 갑곶돈대의 대포

 

조선 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고 하며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700M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이 날아가나 포탄 자체에서 폭발하지 않아 위력을 약하다는 약점을 갖은 대포다. 

 

. 홍이포와 블랑기

 

홍이포는 조선후기에 우리나라 군대에서 사용하던 대포중의 하나이다.

유럽사람들이 사용했던 화포라고하여 "붉은 오랑캐의 화포" "홍이포[紅夷砲]"라 하였다.

우리나라는 명나라를 통해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의 길이는 대개 250CM정도, 구경은 10CM정도. 무게는 3톤이다.

홍이포는 700M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맞출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 강화외성[江華外城] 사적 제452호

 

강화외성은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재에 걸쳐 축조된 성으로

강화읍 월곳리 연미정에서 길상면 초지리 초지진까지 약20KM에 걸쳐 매장[埋藏]되어 있다.

사진으로는 염하강변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 갑곶돈대 성각 넘어로 구강화대교를 한장더 담고 돌아갑니다.

 

. 갑곶돈대 입구 주차장과 함께 옛전시관을 담아본 사진 한가롭기만 합니다.

 

. 전시과 마당을 내려서면 바로 앞에는 "금속활자 중흥비" 와 강화에서 발견된 "비석군"들을 전시한 곳이 나오며

많은 분들의 포스팅으로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 갑곶리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8호]

지난번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 소개하면서 이곳을 이야기 한적이 생각납니다.

강화지역에서는 2곳에 잇는 탱자나무가 약 400년이나 이곳에서 자란 탱자나무로

성벽 밑으로 지금의 철조망을 대신 하여 적병들의 접근을 막기위해 심어졌다는

탱자나무가 자랄수있는 북쪽 한계선으로 천연가념물로 지정되였습니다.

 

. 마당에서 바라본 이섭정[利涉亭] 아름다움을 볼수있었으며

예 선조들으의 왜적을 막기위한 지해를 배울수 있을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강화 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 을 탐방을 이곳에서 시작 하기위해 찾은것 입니다

이어서 많은 보.돈.진 들을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 끝 -----

 

918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