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본 산행기

△. 덕포진 관리사무실과 앞에 보이느놋은 전시관 이다.
여기부터 덕포진 관람을 할것입니다.

△. 여름에는 바다 바람으로 시눵한 휴시 공간이 될것 같아 보인다.좌축으로는 바다다.

△. 처음으로 보이는 바다건너 우축 덕진진 좌축 초지진 일것이다.

△. 이자리에도 뭐가 있을만도 한대 아무것도 없다는것이 이상하다
조망이 아주 좋아 보이는것이 혹시 옛날에 초병이 보초를 하지 않았을까...??[나름대로 생각...!]

△. 덕포진 입구 간단한 설명과 사적지 안내판을 읽어본다..

△. "덕포진포대" "가"포대 지역으로 들어간다.

△. 이렇게 보면 위장이 잘된것 처럼 보여진다.

△. "가"포대 뒷부분 이곳에는 당시 분주하게 군사들이 움직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 "가" 포대 [약물터] 7개의 포대로 강화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으며
"다포" 와는 달리 "가포" 와 "나포"는 지붕을 이엉 를 올렸다.
이후로 보시면 알것이며 지나고 보니 이상하다 여겨 졌으며 문화재 해설가 만나
알아 보았지만 발굴 당시 이엉과 기와로 발견되어 그대로 복원 하였다고만 한다.
아마도 위장을 위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추축만 난무하다.

△. "가포대" 지역 먼져는 읫부분으로 걸어갔을것 같은대 무너지는것을 방지하기위해
출입을 금지 한다.불로거들의 지난 포스팅 사진을 보면 지나가는 장면들도 나오더군요.

△. "가"포대 전면 지도상 에는 "덕진진" "남장포대" 로 나오며.
멀리는 마니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김포 평화누리길 첫번째 코스 대명항에서 문수산성 까지 16.6KM 이어지며.
이곳은 덕포진 이정표와 함께 휴식 공간이다.

△. "가포대" 지역 포구 방향이 덕진진 남장포대로 향하고 있다.

△. 바다물 흐름이 예상치 않아 보이며 멀리 보이는 초지대교와 철조망 DMZ라고 한다.

△. 손돌목 이라는 곳에는 벌써부터 물살이 사나와 보이며 아마도 물때가 날물인듯하다..

△. 이렇게 보니 예전에 드라마 "여명"이 갑자기 생각난다.
이곳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 지나다 보니 이곳은 '나"포대 지역이다.
'나"지역도 "가"포 지역과 별다릴 보이지 않았지만 아래 설명을 읽어보면
요충지로 각각 목표지점이 설정되어 있다. 물살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포대에서 일당 타진 하는 작전지다.

△. "나"포대[원둘터] 5개의 포대로 강화 초지진을 향하고 있으며
"다포" 와는 달리 "가포" 와 "나포"는 지붕을 이엉 를 올렸다.
아마도 위장을 위해서 일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 각 지역을 잘 설명 하여 놓았다.

△. "나"포대 전면 초지진 전면을 향하고 있다.
포구 방향을 바라보면서 담은 사진이다.

△. "나"포대 지역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 이곳 부터는 "다"포대 지역이다.

△.

△. "다"포대[굽두리] 3개의 포대로 강화 초지진와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으며
"가포" 와 "나포" 와는 달리 지붕을 이엉 대신 기와를 올렸다.

△.

△. 다포 전면

△.

△. 파수청 과 손돌묘 가는길이다. 손돌묘 앞에는 덕포진 돈대가 있었다는 터 이야기
표지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 아쉬웠다 그것을 복원이 어려운가...??
아마도 손돌목 에서의 전투가 그곳에서 치열했을것으로 보여지던대요....

△. 파수청 넘어로 손돌묘가 보인다. 각각이 이루어 보면 설명을해 놓았다 다음으로 .....

△. 덕포진 파수청터[德捕鎭 把守聽]
파수청은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이다.문헌조사에 의하면 사적지대 건물은 탄약고.
파수청이 존재 하였음을 알수 있으나 현재 탄약고는 덕포마을에 이전 위치하고 있고.
사적지 내에는 파수청만 현존하고 있다.
건물규모는 정면3간[間] 측면2간[間]이며 중심부에 화덕이 위치한다.
발굴당시 동서면에서 석벽으로 둘러 쌓여있었던 것으로 봐서.
출입구는 동서면이 아닌 남북면을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덕포진 파수청터[德捕鎭 把守聽]
사적 292호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105번지
이 유적지는 1980년에 덕포진 발굴 조사 결과 알려지게 된 건물 터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추정 되며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 있었다.
발굴 당시 7개의 포탄과 조선시대[朝鮮時代]의 화폐인 상평통보[常平通寶] 2개가 출토되었으며
건물터 안에는 주춧돌과 화덕이 발견되었다.
이 건물은 포대[抛臺]와 돈대[墩臺]의 중심부에 위치 하여 포를 쏘는
불씨를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포병을 지휘 하던 장대[將臺]로 생각된다.

△. 파수청 지나며 뒤돌아 '다'포대 지역을 본다..
포대 성터가 구렁이 연상케 한다.

△. 뱃 사공이였던 손돌공의 전설과 양헌수 대장과 솔돌표의 사연만 적어 놓았다....

△. 덕포진 손돌묘 [德浦鎭 孫乭墓]
진심으로 이야기 하였건만 어찌 믿어 주시지 않으니 몸을 받칠수밖에.
죽음까지 이루어서도 진심을 이야기 하며 나랏님을 안전하게 이루 도록한
손돌공 충심만이 본받을수 있을까요...?
진실한 마음도 깊이 배워야 할것 같다...

△. 광성보[廣城堡] 용두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佛恩面]에 있는 성[城].
고려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하였을 때 쌓았다.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과의 격전지였다. 사적 제227호이다.
광성보와 같은 곳에 있어 용두돈대도 이곳에서는 알수가 없다.
다음에는 꼭 저넘어도 찾아가 봐야겠다.

△. 손돌목[孫乭목]
손돌묘를 정면에서 바라 보았을때 왼쪽으로 보이는 강이 손돌목이다.
손돌목은 안면도와 염창동과 함께 난파 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빠른곳 이다.
태조4년[1395년]에 조운선 16척. 태종3년[1403년]30척. 태종14년[1414년]60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동절기에 속하는 을력10월20일을 전후해서 부는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하고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 덕포진 돈대터[德捕鎭 墩臺터]
덕포진[德捕鎭]이 창설된 해는 확실 하지 않으나 조선[朝鮮] 현종[顯宗]7년[1666년]에 강화에 예속된 진[鎭]이 였다.
이 돈대[墩臺]는 숙종[肅宗]5년[1679년] 강화[江華]의 광성[廣城].덕진[德鎭].용두돈대[龍頭墩臺]와 함께 축성 되었다.
이 돈대의 위치는 서울을 통하는 해로[海路]의 전략상 요지로서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프랑스 함대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는 미국 함대와 싸운 격전지이다.
1980년 포대와 돈대를 발굴 조사 하였으며. 이때 1874년에 만들어진 포와 포탄 등이 발굴 되었다.

△. 손돌목 물살을 철조망 넘어로 바라봅니다.

△. 철조망 옆으로 김포 평화 누리길입니다.

△. 바다 넘어로 보이는곳은 초지진.덕진진.남장포대. 희미 하지만
작게 보이는 포구들이 보인다.

△. 돈대터 에는 바닷가 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 다시 돌아 가며 사진으로 정리해 본다

△. 포구도 가까이 담아 보고 작은 구멍으로 포신을 겨냥해 발사....

△. "가'포대 지역을 돌아 나가면서 다시 한번더 담아본다.

△. 덕포진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그동안 잘 모르던 포대 구성부터 중요성을 알게된 여행 이였습니다.
또한 정리해 나가면서 말로만 나온 덕진진.남장포대.초지진.용두돈대.광성보.등등 강화의
문화 유적지도 공부는 물론이고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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