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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0】08 고양동 누리길은 최영장군 묘와 벽제관지로 고양동 역사를 느끼게 하는 둘레길이였다.

◐ Climbing[2015] /├ ⑤ 경기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5. 3.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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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누리길



 

    ○ 고양동 누리길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군은 한국의 안전과 자유수호를 위하여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 하고 후손에게 그 뜻을 전하기 위하여 참전비를 세웠다. “충신” 최영 장군의 아담한 묘와 그 묘로 이어지는 예쁜 숲길을 걸을 수 있다. “내 무덤에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것”이라는 최영 장군의 예언처럼 묘는 잔디가 없는 적분이었으나 후손의 정성으로 현재는 잔디가 잘 나 있다. 장군묘의 고개 하나를 넘으면 고양향교와 중남미문화원이 있고, 그 아래쪽에 벽제관지터가 있다. 고양동에서 큰 도로를 넘으면 아름다운 마을 선유리를 만날 수 있다.

 

. 고양동 누리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산97-6번지에서 출발 하는 코스로써

지난번 고양송강누리길 이어 걷기위한 코스이며

다음과 같이 코스길 이어 갑니다...

 

우선 출발지에는 최영 장군 비석은 물론,“성령대군 사적지라는 비석군들이 자리 하고 있습니다.

성령대군은 조선 태종 임급의 아들인 양녕, 효령, 충녕, 성령 4형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들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태종 임금의 맏아들로 귀를 이을 세자였지만 기이한 행동으로 부왕의 노여움을산 폐세자가된 양녕대군이나,

왕위에 뜻을 두지 않고 있던 효령대군,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일컫어지는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에

비해 막내인 성령대군은 같은 형제 임에도 상대적으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성령대군 입죠..  

 

 

 

 

 

. 먼져 지도와 코스를 첨부 하여 이해를 돕습니다.

필리핀 참전비 부터 안장고개 까지... 총 7.56km의 코스로 준비 되어 있더군요.. 

 

 

 

 

 

. 출발지에서 약1.3km지점 지났을때 만나게 되는 대자리 마을 회관

우축으로 얼마전에 건립 되어진 듯한 “연화사 추모공원”이 보인다. 잠시 들러 살펴 봅니다.

 

 

 

 

 

. 연화사 추모공원의 풍경입니다.

세롭게 지여진 추모공원으로 위패를 모실수 있는 납골당으로 지어졌더군요.

 

 

 

 

 

. 연화사는 얼마전에 준공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디선가

문화재 급이라며 전시해 놓았내요.

 

“대법고[大法鼓]”

법고의 명칭으로 한것은 크기가 끌뿐아니라 명부의 형태가 절묘허고 조형기법이 특이하며 우수하여

대자를 붙인것이라며 지금은 문화재 지정 겸사중이라며 접근및 만지지 말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좀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성령대군 유적지 대자암[大慈菴]앞을 지나

고려의 명장이였던 최영장군 묘지로 향하게 됩니다.

 

 

 

 

. 최영장군 묘지 입구에 도착 하여 인증 사진 남깁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70-2번지에 위치하며 경기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앞에 보이는 계단을 약100여계단을 오르면 장군 묘지를 만나게 된다.

 

 

 

 

 

. 계단을 오르면서 앞에 보이는 최영장군묘

지역에서는 민속신앙 무속인들이 최영장군 신을 섬기며 매년 가을이면 제를 올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 기념물 비와 함께 자리하고 잇는 장군묘소 에는

앞 뒤로 봉분이 두개가 있을음 알수 있다.

바로 뒤편에는 최영장군의 아버지인 “최원직”의 묘,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최영장군묘 이다.

 

최영장군[崔瑩將軍] 부친 최원직[崔元直]의 묘비

“贈推忠雅亮兼儉輔世翊贊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判門下

[증추충아양겸검보세익찬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판문하]

府事上護軍兼判藝文 春秋館 事東原府院君崔公墓

[부사상호군겸판예문 춘추관 사동원부원군최공묘]”

 

앞에는 2개의 묘비가 서 있다.

좌축으로는 옛날것으로 최영장군 묘[崔瑩將軍 墓] 오래된 충혼비 전면에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高麗盡忠奮佐命安社功臣判密直事大將軍門下侍中 [고려진충분좌명안사공신판밀직사대장군문하시중]

贊成事六道都巡察使鐵元府院君謚武愍東州崔公諱 瑩之墓 [찬성사육도도순찰사철원부원군익무민동주최공휘 영지묘]

三韓國大夫人文化柳氏祔左 [삼한국대부인문화유씨부좌]

 

우축으로는..무민공[武愍公] 최영 장군 충혼비 1970년 대한민국 국방대학원과 문화공보처에서 세운 것이다.

최영은 1316년(충숙왕 3)에 태어나 호군, 대호군을 거쳐 후에 문하시중에 올라...

고려 말 공민왕과 우왕 때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수차례 물리치고 1388년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좌절된 후 이성계에 의해 참형 유명한 그의 좌우명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부친의 유언이라고.

이거 잘 지키기 어렵다는 건 너도 나도 잘 알지요

 

 

 

 

 

. 최영 장군묘 곡장으로 올라와 한장 남겨 봅니다.

이렇게 보니 좀 특이하게 보이는 곳도 있다. 누구나 명당이라며 묘를 쓸때도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장군묘는 약간의 삐틀어짐을 볼수 있을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지는 저도 모르겠다. 앞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 같기도하다.

 

이재부터는 장군묘 곡장을 돌아 대자산 정상길을 향하면서

고양동 누리길이 이어갑니다. 

 

 

 

 

 

. 능선을 올랐을까 이정표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누군가 자져다 놓앗을 운동기구들도 간간히 눈에 띄인다. 

 

 

 

 

 

. 대자산이라는 안내문도 설치 되어있다.

대자산 기슭에는 만흥 문화 유산이 잇는것 같아 보이낟. 한번 찾아 보고 싶어진다. 

 

 

 

 

 

. 능선을 지나 고양동 향하는 길목에 이런 공간이 보이게 된다.

이곳에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데 고양향교 방향의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산길을 기준하여 설명드리자면 하산길 우축으로방향을 잡으면 향교로 하산하는 길이다

이점 숙지하여야 합니다. 

 

 

 

 

 

. 중남미 문화원을 먼져 인증해 놓습니다.

왜냐하면 ..

향교는 약간의 회손으로 지붕에 보기 않좋은 천막으로 덮어 놓았기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검색해 보니 천막을 올려 놓은것이 오래된듯해 보이던데

어찌 그냥 방치해 놓은것인지 모르겠더군요... 아쉽다.. 

 

 

 

 

 

. 빠져 나오면서 향교를 인증해 놓습니다..

하마비 비석과 함께 입구임을 알수 있게 되어으며..

이재는 다음 목적지 “벽제 관지로 발길을 제촉 합니다. 

 

 

 

 

 

. 벽제 관지 도착 하였습니다.

안내문에는 예전 사진까지 있더군요 그럼 복원은 않하는것인가..?

터[址]만 자리하고 있으니 아쉽다.. 

 

 

 

 

 

. 벽제 관지[碧蹄館址] 사적 제144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55-1 번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역관터로서 중국을 오가던 고관들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관설로에 역관이 10여 군데 있는데, 한양에 들어가기 하루 전에 반드시 이곳 벽제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예의를 갖추어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의 사신들도 이곳에서 머물렀다. 지금의 벽제관터는 인조 3년[1625년]

고양군의 관아를 옮기면서 지은 객관 자리를 일제 강점기에 건물의 일부가 헐렸고 6.25전쟁 때 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그 후 객관의 문도 무너져서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건물은 중앙의 천사와 좌우릐 익사로 구성되는데,

모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 출처 : 안내문 발취

 

 

 

 

 

. 벽제 관지 아래로는 “고양동 송덕비군”“고양 벽제관 육각정”터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비석군들을 살펴 봅니다. 

 

 

 

 

 

. 면장 신규선 치적비[面長 申圭善 治績碑]

신규선은 1932년 1월 30일 ~ 1939년 10월 14일 까지 벽제면장을 역임 하였다. 

 

 

 

 

 

. “군수 홍진유 청덕예민 선정비[君守 洪晉猷 淸德善政碑]

홍유진은 영조 6년[1730] 11월 27일 ~ 영조 7년[1731] 10월 21일까지 고양군수를 지냈다.

 

 

 

 

 

. “군수 영사비[君守 永思碑]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건립되었는데 비문의 마모가 심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다.

 

 

 

 

 

. “군수 최창대 선정비[君守 崔昌大 善政碑]

최창대는 숙종 40년[1714] 11월 7일 ~ 숙종 41년[1715] 5월 7일까지 고양군수로 지냈다.

 

 

 

 

 

. “군수 유시중 창덕선정비[君守 兪是曾 淸德善政碑]

유시증은 인조 14년[1636]에 건립된 이 비는 장방형의 대좌에 비신을 갖추고 있다.

고양군수로 역임한 인물이다.

 

 

 

 

 

. “관찰사 이재원 영세불망비[觀察使 李載元 永世不忘碑]

건립 연대는 고종 14년[1877]인데 화강석의 비신과 대좌를 갖추고 있다.

이재원은 경기도 관찰사로 그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영세불망비라 하였다.

 

 

 

 

 

. “군수 정진묵 애민선정비[君守 鄭晉默 愛民善政碑]

정진묵은 고종 12년[1875] 3월 2일 ~ 고종 14년[1877] 8월 24일까지 고양군수를 지낸 인물이고,

이 비는 1877년에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 되었다.

 

이와 같이 도료 한컨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군수 및 관찰사, 면장이

선정[善政]과 치적[治積]을 기르기 위한 송덕비들이다.

 

 

 

 

 

. 고양 벽재관 육각정[碧蹄館 六角亭] 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235번지[추정] 위치한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내에 있다고 합니다.

1918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명나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벽제관 전투를 기념 하고자 벽제관 앞 연지터에 있던 육각정을 반출하여

자신의 고향인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에 기증 하였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제 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高陽洞] 읍내마을에 위치한“벽제관지[碧蹄館址]”는

고양향교, 향교골 은행나무와 함께 이 지역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 유산이다.

이곳 지명을 고양동이라 하는 것도 1625년 ~ 1914년 까지

289년간 고양군청과 벽제관과 같은 중요한 공공기관이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오늘 “고양동 누리길”을 이렇게 완주 하였지만 걸음길에 소중한 문화유산을 배웠으며

고양시의 유래등을 알수 있게 한듯 합니다.

저는 이번 설명절을 지낸후 혹독한 몸살로 많은 고생을 격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완전치는 못하나 포스팅을 미룰수 없어 이렇게 한장 남겨 봅니다..

모든 불친님들 저의 불충에 죄송스러움 마음을 함께 전하며 건강하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기 조신 하셔요..

 

아래 링크는 최영 장군묘에 관한 도움이 될것 같아 올려 놓았습니다..

 

 

 

 

※ 최영장군 묘 [꼭 들러 보셔요] 클릭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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