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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철저한 준비로 강화을 지켰던 화도돈대 [花島墩臺] 인천문화재자료 제17호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2. 2. 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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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도돈대 [花島墩臺] 인천문화재자료 제17호



 

 



⊙ 화도돈대 [花島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仙源面]에 있는 조선시대의 국방 유적지로 나들길로 새롭게 뜨고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는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깎아서 높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하였다. 간척지 벌 가운데의 작은 동산 위에 위치하는 화도돈대는 오두돈대[鰲頭墩臺]·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광성보[廣城堡]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쪽으로 700보 거리에 오두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1,390보 거리에 용당돈대[龍堂墩臺]로 이어진다. 강화외성과 연결되어 있으나 현재 주변의 외성은 소실되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수구[水口] 옆에는 강화유수 한용탁[韓用鐸]이 1803년 세운 '화도수문개축기사[(花島水門改築記事碑]'가 있다. 성벽터로 볼 때 평면은 사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북쪽에 무너진 성벽의 석재들이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성벽의 터만 남아 있을 뿐 완전히 소실되었다. 돈대 내부는 과일나무를 심은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강화군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 화도돈대는 이곳이 입구 인듯해 보이는대 복원을 하던중에 그만 두었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설명은... 읍다... 아쉽다....

 

. 화도돈대 [花島墩臺] 인천문화재자료 제17호

 

숙종5년[1679]에 강화 해안에 쌓은 여러 돈대중 하나다.

해안 절벽폭으로 장축을 기대고 있는 면의 길이가 35M이고 다른면은 32M로

한면이 약간 앎은 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성벽의 석축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성벽의 뿌리는 어느정도 남아 있다.

돈대의 남쪽 아래에는 고려 외성을 가로 지르는 물길을 건너는 화도 수문[水門]이 있다.

2002년 발굴 조사를 거쳐 복원 정비되었다. 저기 안내판엔 이것 밖에 읍다. 아쉽다.. 

 

. 아직도 복원중인지.?? 가운대 부분을 보면 원형으로도 만들다만 흔적..??

설명이 부족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 홀로서 있는 감나무 밑에 보니 까지밥으로 남겨 놓은것이 떨어져 있더군요. 

 

. 화도수문 개축기사비[花島水門改築記事碑]

 

순조3년[1803]에 세워진 비석으로 화도수문의 개축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조복양[趙復陽.1609~1671]이 석문을 설치하여 조수를 막았고.영조때에 외성을 축조하면서 다시 수문을

쌓았다는 기사[記事]등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어 강화도 간척사업과 강화외성의 축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강화도 짬뽕 화도 돈대 앞에 있어 호국돈대길에 들러 식사 하는곳이기도 하다.

메뉴는 옛날짜장.짬뽕.홍합짬뽕..등등 몇가지 않되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더군요

저는 옛날짜장 곱빼기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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