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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왕 계비 안순왕후 능 창릉[昌陵]

순도리(칠이) 2012. 4. 2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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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제8대 예종대왕 계비 안순왕후 능



 

 



    ◎ 산행장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 여행일자 : 2012년 03월 31일 [토요일]

    ○ 조선 제8대 예종[睿宗] 조선 제8대 예종[睿宗, 1450년~1469년 재위1468년~1469년] 세조와 정희왕후와의 사이에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 1월 1일 사저에서 태어났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18세에 요절하였을 때, 의경세자의 아들인 원손 월산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이 적통계승의 원칙에 맞는 것이었으나, 월산군은 불과 4세의 어린 아이였으므로 그 해 8세가 된 세조의 둘째인 해양대군(훗날 예종)이 1457년(세조 3) 11월 15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1468년 9월 7일 19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성년이 되지 않아 모친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의 중신이 섭정하는 원상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병약했던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만에 요절하였다.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각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세조 때 입안하였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으나, 채 반포하지 못하고 1469년 11월 28일 20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 일화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 모음집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이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년 ~ 1469년] 안순왕후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태어났다. 예종의 첫째 부인 장순왕후가 세자빈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62년 가례를 올리고,1463년 예종의 즉위와 동시에 왕비가 되었다.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만에 승하하자 1471년(성종 2) 인혜대비에 봉해지고, 1497년(연산군 3)에는 명의대비에 진봉되었다. 예종과 안순왕후 사이에는 제안대군이 있었으나, 할머니 정회왕후의 뜻에 따라 덕종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세자에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였다.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 12월 23일 승하하여 이듬해 2월 14일 부군인 예종이 잠든 창릉에 안장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서오릉 관리소

 

 


 

. 창릉[昌陵] 홍살문옆 안내문에서

 

창릉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 ~1498]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世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1450] 세조2년[1457]에 세자가되었고,

세조 13년[1468]에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지13개개월 만에 20세로 경북궁에서 돌아가셨다.[1469].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의 딸로 예종 즉위년[1468]에 왕비로 책봉 되었으며.

연산군[淵山君] 4년[1498]에 돌아가셨다.

 


 

. 이번에는 예종왕릉에 관해 알아 보도록해 보겠습니다... 

우선 서오릉 정문 매표소에서 들어서면서 제일 멀리 있는곳으로 군부대와 인접하여 있으며

지금은 이곳을 관람후 산책로 개발로 우축으로 돌아 넘어 갈수 있으며 께속 따라 산책 하다 보면

익릉 앞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어 그나마 많이들 찾는것 같아 보였으며.

예종왕릉을 둘러 보고 그곳으로 돌아 갈것입니다..

 


 

. 홍살문을 들어서면서 다른 왕릉과 다른곳은 없었 그냥 사진만 담았으며.

보이는 곳이 참도를 걸어 정자각으로 들어갑니다.

 


 

. 다른 릉에서는 터만 남아 있었던 수복방터. 수라간터.. 이곳에서는 흔적 마져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배위터는 홍살문 옆에 있었으며.수복방터 라도 찾아 보겠습니다.  

 


 

. 예종왕릉과 안순왕후릉을 바라 보면 확연히 나타나는 "동원이강"

지금까지 보신분 이라면 알수 있을것이다.

 


 

. 동호회 회원분들 같은대 인증 사진을 담는다.

뒤로 보이는 곳은 안순왕후 릉 이며 우선 예종왕릉을 먼저 관람하고 다음으로 올라갈것이다.

 


 

.비각 내부에 있는 비석 비문을 살펴본다.

 

"조선국[朝鮮國]

예종대왕 경릉[睿宗大王 昌陵]

안순왕후 부좌강[安順王后 祔左岡]"

다른점은 없어 보인다.

 


▣ 예종왕 릉


 

. 예종[睿宗]에 대하여

 

1450년[세종 32]∼1469년[예종 1]. 조선 제8대왕. 재위 1469년. 이름은 이황[李晃].

자는 명조[明照], 초자[初字]는 평보[平甫]. 본관은 전주[全州].

 

세조의 제2왕자로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尹璠]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원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장순왕후[章順王后]이고, 계비는 우의정 한백륜[韓伯倫]의 딸 안순왕후[安順王后]이다.

 

처음에는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가, 1457년[세조 3]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68년 9월 7일 세조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수강궁[壽康宮]에서 즉위하였다.

 

즉위 초에는 세조의 유명을 따라 한명회‧신숙주[申叔舟] 등 대신을 원상[院相]으로 삼고,

이들로 하여금 서무를 의결하게 하였고, 1468년(예종 즉위)에는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였다.

이해에 남이[南怡]‧강순[康純] 등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형되었다.

 

1469년 3월 삼포[三浦]에서의 왜[倭]와의 사무역을 금하였으며,

같은 해 6월에는 각 도, 각 읍에 있는 둔전[屯田]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해 6월에 《천하도[天下圖]》가 이루어졌고, 7월에 《무정보감[武定寶鑑]》이 이룩되었다.

9월에 상정소제조[詳定所提調] 최항[崔恒] 등이 《경국대전》을 찬진하였으나 반포를 보지 못하고 승하하였다.

 

예종은 18세에 즉위하였으나 세조 비 윤씨가 수렴청정하였으며,

신숙주‧구치관[具致寬] 등이 원상으로서 정사를 좌우하였으므로 왕권은 약화된 시기였다.

그러나 예종은 세자로 있을 때인 1466년부터 승명대리[承命代理]로 정치의 경험이 있었으므로

세조의 정치방법에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세조처럼 언관[言官]에 대하여 강경한 태도를 보여 좌천‧파직 등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위기간이 약 14개월에 불과하였으므로 이 시기는 세조시대에서 성종시대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시대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예종 재위 기간은 아버지 세조왕 [세조 14]1468년 9월8일 죽음으로 바로 즉위 하여 약14개월 재위 하였다.

한명회[韓明澮]를 영위정으로 복직 시키고 [세종 32]1450년~[예종 1]1469년 11월 28일에 죽음으로 제9대 성종왕으로 이어진다.

 


 

. 예종왕 문인석과 무인적 뒤로는 안순왕후 한씨 묘지가 보인다.

 


 

.혼인석. 장명등 특히나 이곳은 장명등은 8각형으로 다른르와 다르지 않았다.

 


 

. 지대석. 난간석등은 시간의 흐름으로 많이 손상됨을 알수 있다..

각이 없으며 둥굴둥굴해져 간다..

 


 

. 예종릉에서 정자각을 바라본다 정갈함으로 위엄을 알수있을것 같아 보인다.

 


 

. 예종왕 릉을 내려 오면서 다시 한번더 담아 본다...

능재의 특성으로 보이는곳이 있다,

상. 중. 하계가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다는것이다

 


 

. 예종왕릉 내려와 정자각 좌축으로 비각있는곳으로 왔습니다.

사진앞에 있는 주춧돌 같아 보이는곳이 아마도 수복방터 같아 보인다...

 


 

. 안순욍후 한씨 릉을 오르면서 건너에 예종왕 릉을 바라 본다.

 


▣ 안순왕후 릉 


 

.안순왕후[安順王后]에 대하여

 

미상∼1498년[연산군 4]. 조선 제8대왕 예종의 계비.

본관은 청주한씨[淸州韓氏]. 청주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의 딸이다.

 

1460년(세조 6)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장순왕후(章順王后)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으나,

이듬해에 병사 하였므로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여 1471년(성종 2)에 인혜대비[仁惠大妃]에 봉해졌다.

 

1497년[연산군 3]에 명의대비[明懿大妃]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제안대군[齊安大君]과 현숙공주[顯肅公主]가 있었으니,

제안대군은 특히 효성이 지극하였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무 표정한 문인석. 무인석등은 표정이 너무 굳어있다.

 


 

. 예종왕릉 보다는 지대석. 난간석등은 오래도 어 보이지 않는다 릉이 형성된 시기도 그렇게 나와있다.

 


 

. 다른왕릉보다 특이한곳이 보입니다..

지대석 상단 부분에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왕릉에서는 보이지 않턴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 망주석도 쫌특이해 보이기도 하다..높아 보이며 상단 부분도 좀 달게 보인다.[원인 미상]

 


 

. 안순왕후 한씨 릉에서 바라본 정자각 예종왕릉에서 바라본것 과는

좀 다른 느낌. 양지 바른곳이라 그러나 보다.

 


 

. 다시 왕후릉 주변을 다시 한번 본다.장명등도 8각형 보습....

 


 

. 이곳 또한 문인석 표정도 무표정한 모습 왜일까...??

 


 

. 혼인석.장명등 예종왕릉과 다르지는 안타... 8각형이다.

 


 

. 예종왕릉 보다는 위엄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평소에 왕후재위 기간중의 업적에 강함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 곡장 담장을 한번담아 본다. 아주 깨끗하다. 최근에 보수 하였나...??

 


 

. 이재는 왕후릉도 내려 온다 다음은 산책로 따라 한참을걸어 익릉으로 갈것이다.

 


 

. "동원이강" 을 또렷하게 볼수있게 되있는 곳으로 서오릉의 맨끝에 자리 하고 있으며

서오릉에서는 추존 덕종왕릉인 경릉 말고는 연대가 제일 오래된 묘지다.

또한 경릉에 있는 추준 덕종왕은 조선 제8대왕인 예종왕의 형이..

아버지인 조선 졔7대왕 세조의 아들들이며.

그래서 왕릉으로써는 서오릉에서는 제일 오래된 릉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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