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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07-5 겨울 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는 국립공원 속리산 문장대 코스에 상고대길...

◐ Climbing[2014]/├ ④ 경상도 권역

by 순도리(칠이) 2014. 2. 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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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리산 문장대 산행길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청화산 건너편에 속리산(俗離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리산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리산은 고을 동쪽 44리에 있다.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 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이라 불렀고 중사[中祀,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지낸, 대사(大祀) 다음가는 제사]에 올렸다. 산마루에 문장대가 있는데, 층이 자연적으로 쌓여 높이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넓이는 3000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큰 구멍이 가마솥만 하게 뚫려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에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한강)으로 들어갔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여 기묘한 석봉들이 구름 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 아름다운 연꽃을 의미하며 눈[설(雪)]의 아칭) 같아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이라 하게 되었다”라고 한다. 일찍이 고운 최치원이 법주사1) 일대의 암자를 돌아보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멀리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멀리한다” 하고 노래한 속리산(1051미터)은 백두산에서 비롯한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보은군에 자리한다.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은 천황봉ㆍ비로봉ㆍ입석대ㆍ문장대ㆍ관음봉 같은 기기묘묘하게 솟은 빼어난 봉우리를 자랑하며, 이와 함께 국보급 문화재들이 즐비한 법주사를 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속리사가 속리산 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속리산에서 속리사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김구용의 시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달마암(達磨岩) 가에 등불 하나 밝았는데 문 열고 향 피우니 마음 다시 맑아라 혼자 깊은 밤에 잠 못 이루니 창 앞에 흐르는 물, 솔바람 소리에 섞여 들리네 한편 속리산 하면 떠오르는 절 법주사를 두고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박효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높다란 사면 푸른 연꽃 같은 봉우리 장갑(長岬)의 신령스러운 근원 몇 겹인고 문장대는 천고의 이끼 그대로 있고 우타굴(于陀窟) 그늘 만 그루 소나무일세 용이 탑 속으로 들어가니 진골이 남았고 나귀가 바위 앞에 누웠으니 성종(聖鐘)을 찾네 길이 삼한(三韓)을 복되게 하는 건 누가 주인인가 산호전(珊瑚殿) 위에 자금용(紫金容, 자금색의 부처의 몸빛)일세.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이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창건한 절이다. 혜공왕 12년에 창건했고 모악산 금산사를 중창한 진표율사가 중창하면서 큰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오층목탑 형식의 법주사팔상전(국보 제55호)과 석련지(국보 제64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 유일의 오층목탑이다. 벽의 사방에 각 면 두개씩 모두 여덟 개의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각주 1 법주사 : 속리산 하면 떠오르는 절인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이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창건한 절이다. 속세를 벗어나서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 화북 탐방지원센타[10:07] → 성불사 → 문장대[12:40] → 냉천골 휴계소 →

보현제 휴계소 → 용바위골 휴계소 → 세심정[14:47] → 법주사 → 법주사 탐방지원센타 주차장[15:50]

 

 

. 보현제 휴계소에 도착 하며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이곳은 법주사에서 들머리 삼아 오르게 되면 얼마나 힘들었던지 할딱고개로도 이름을 같이 하고 있는 곳이다. 

 

 

. 휴게소 한컨에 이런 비석이 있어 주인장 에게 여쭙니다.

그런대 주인장은 잘은 모르겠으나 옛남부터 있던것이라 잘 보른다고 한다.

그러나 휴게소에 이익이 되지 안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로 보여습니다.. 

 

 

. 수 많은 산악회 사람들이 지난 흔적들로볼수 있는

꼬리표 이런 풍경은 바라 보기에 다른 모습으로도 보일수 있겠지만 어찌보면 지져분 한 분위기를 주기도 합니다.

오히려 사장님은 좋아라 하는듯해 보였습니다.. 

 

 

. 추녀밑으로 빼빽히 들어차 있는 꼬리표 성황당을 방불케 하내요.. 

 

 

. 보현재 휴게소라 현판을 볼수도 있는 휴게소

ㅇ런곳이 잇어 안전을 위해선 많은 도움이 될수도 있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 식사류와 음료수 종류는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보여지지만....

주류와 안주류 이곳도 간단한 음주는 도움이 될것 같기도 하지만 음주 산행은 권장 하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 주변 분위기를 담아 봅니다..

제가 올라온 부분에는 평균대 설치 해놓은것을 보아 주인장 께서는 평상시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것 같내요..  

 

 

. 앞으로도 4KM 내려가야 법주사 주차장까지 오늘 목적지 입니다.. 

 

 

. 굴뚝에서는 여전히 흰연기가..

이곳에서 살아온지 60여년 되었다는 사장님의말씀에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으며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옮겨졌을지도 궁금해 지내요..   

 

 

. 이잰 분위기를 보면서 저도 잠시 고향 생각을해 보게 되는군요..

이런 산골이 고향집이 있었거든요.. 

 

 

. “재”라고 표현돤곳은 항상 고개를 만나면서 이름붙여진 고개로 보여지는곳

보현 이라는 이름은 주변에 옛날 암자가 있던곳이있어 “보현재”라 붙여진 이름이다. 

 

 

. 이곳 같기도 하지만 주변에 아무런 안내표지도 없어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분위기상으로는 휴식 공간으로만 보여 집니다.  

 

 

. 주변에 흩어진 돌들을 보더라도 사각으로 다듬어진 돌들이 있으면서

그곳들을 앉을 자리로 만들어 놓은것 같은 분위기로 보여지는 곳이다. 이렇게 한참을 내려가본다.

 

 

. 이번에 3번째 만나게 되는 휴게소는를 보면 들어 섭니다.  

 

 

. 산들어가기전에 입구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기둥 뿌리만남아있내요..

주변에 안나문이 있어 읽어 봅니다.. 10여년전에 매비 태풍때 손상을 입은 나무라고 하내요

않타갑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 휴게소 올라오니 이렇곳이 있내요..

아마도 여름 장마철에는 이쪽게곡으로 많은 수량 때문에 사고가 많은곳으로 느껴진다.. 

 

 

. 어서들 오셔요,.. “용바위골 휴게소”입니다.

정겹게 느껴지는 말로 보이내요. “어서들 오셨나 ~~” 

 

 

. 휴게소 풍경이내요.

이곳은 모두들 살림을 하는것으로 보여지지만 어떻게 이곳에서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갑니다.. 

 

 

. 이곳은 산장 같은 분위기 보단

별장 같은 분위기 여전히 동동주가 인기많은 곳으로 보여지내요.. 

 

 

. 동료분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에 잠시 돌아보개 되는군요.. 

 

 

. 이곳은 자동차 올라오는곳이며 주차장에는

한대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장이 타고 다니는것 같내요.. 

 

 

. 장독대 까지 만들어 놓아 있는것은 정겹내요.

이곳 휴게소를 지나면서는 등산로가 아닌 도로로 보여지는 길을 한참을 내려 가다 보면 세심정이 나오게 됩니다..

법주사 까지는 3.3KM 남은 지점입니다. 

 

 

. 세심정 내려 가던길가에 석벽에 있는 비문이 한아 있내요..

이곳 주변에는 내려 가던중에는 금표도 있었으며. 지금은 별다른 읨가 없는듯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하는 느낌을 주면서 않타갑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세심정 휴게소 지나 갑니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어 간단히 지나며 소개만 합니다.

입구에 한시가 눈에 들어 오내요..

 

세심정 [洗心亭]

道不遠人 人道遠 [도불원인 인도원] 도는 사람에 멀리 있지 않은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山非離俗 俗離山 [산비리속 속리산]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아니 하였는데 세속은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지은 시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김장호의〈한국백명산기〉를 보면

조선 선조 때 선비 백호 임제가 속리산을 두고 읊은 시라고 한다.

네 차례의 사화[士禍]를 겪고 속리산에 들어와 읊었다고 하니 최치원이 지었다는 설보다 설득력이 있다.

 

 

. 속리산 등산코스중 개방되어 있는 코스는

모두 이곳에서 갈려지며 다시 합류하게 되는 지점으로 우축으로는 천왕봉, 좌축으로는 문장대 방향이다.  

 

 

. 세심정 갈림길 에서 0.9KM지잠에있는 이정표 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탑골암, 복천암. 모두 들러 보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지나는 마음 아쉽내요..

이재 부터는 하삼길 발걸음이 빨라지내요... 

 

 

. 식수원 저수지로 이곳은 법주사와 가가운곳에 있으며

철저히 보호 되고 있으면서 이곳을 이어지는 개천을 달천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 저수지 옆길을 따라 법주사로 향합니다.. 

 

 

. 이잰 법주사 잠시 들러 보겠습니다..

법주사는 수 많은 문호재가 산적해 잇는 사찰로 널리 알려진곳이라 대충 담아 봅니다.. 

 

 

. 팔상전[捌相殿]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공사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心柱]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전각 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 청동 미륵대불 

 

 

. 범종각[梵鐘閣]

 

 

. 팔상전[捌相殿] 

 

 

. 법주사 사찰 경내 풍경 눈 덮여 있어 또다른 분위기를 주는군요.. 

 

 

. 법주사 철당간지주[法住寺 鐵幢竿支柱] 금강문 옆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당간지주[鐵幢竿支柱]

당간이란 달리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寺]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寺]에 당간 즉, 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宗派]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해는 법주사 당건지주[당간지ㅈ]는 고려목종[1006년]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 높이는 전체 약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년]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當百錢]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에 다시 북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청동 미륵대불 모습

좀 요상해게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미륵불상이 앞으로스러지는 형상을 볼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 보니 불자님들과 얼굴을 마주 보기 위해 앞으로 쓰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 팔상전 앞에 사천왕문 

 

 

. 오늘 산행길이 즐거웠던것 같습니다.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 금강문에서 바라본 사천왕문[四天王門]

1977년 12월 6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의 금강문과 법주사 팔상전[국보 55] 사이에 있는

불사의 산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 1칸은 통로이고 양쪽 2칸에는 높이 5.7m, 둘레 1.8m의 천왕상을 2구씩 4구를 만들어 세웠다.

국내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사천왕상으로 법주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은 수미산[須彌山] 동쪽 승신주[勝神洲]를 지키며 손에 비파를 들고 있으며,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은 수미산 서쪽 우화주[牛貨洲]를 지키며 손에 용과 여의보주를 들고 있다.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 담부주[膽部洲]를 지키며 손에 칼을 잡고 있으며,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은 수미산 북쪽 구노주를 지키며 손에 보탑을 들고 있다.

 

 

. 이잰 모든 산행일정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이곳은 법주사 들어가기전의 모습으로 이곳을 돌아 들어가면 법주산 입구 탐방관람료 징수하는곳을 만나게 됩니다.

 

 

. 안내문도 한번 살펴 봅니다.

속리산은 천왕봉 보다는 문장대가 더 높이 평가 하는듯합니다.

안내문 사진에도 문장대가 잇으며 설명되 있내요..

 

 

. 산행 지도로 참고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 올려 봅니다.

 

 

. 이잰 주차장 찾아 갑니다..

이곳에서 주차장 까지는 약 1KM쯤 되는곳으로 도로 다라 가시면 고속버스 터미널 있는곳에

대형주차장과 함게 있습니다.. 내려 가던길중간에는 할모님들이 좌판을 별어져 있는곳을 지나면 상가지역을

지나면서 주차장 까지 만나게 됩니다.

 

    ○ 보은 속리 정이품송 [報恩 俗離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산오늘 산행은 9.1KM 5시간40분 소요되었지만 눈길을 산악회 회원분들과 함께 하게된 산행

화북을 들머리로 한것은 정상능선까지는 거리가 가까워 오름길이 무난하여 그곳을 선택 하였으며

법주사 탐방료는 4,000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기는 어려움을 느껴게 된점도 감안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후미로 걸음이 늦었지만 선두 그릅은 완주 할수 있는 코스로 무난하여 코스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점을 감안 하신다면 속리산 산행길이 아주 쉬워질것이니 참고 하시길 바라며

모든 속리산 산행 일정을 정리 합니다. 건강 하시고 다음에 또.... 

다음 포스팅은 무이도 국사봉으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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