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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3】법주사 벽암대사비[法住寺 碧巖大師]

◈ Travelog/⊙ 고찰 문화재

by 순도리(칠이) 2010. 10. 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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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주사 벽암대사비[法住寺 碧巖大師]<시도유형문화재 제71호>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 조선중기의 스님. 승병장. 자는 징원(澄圓), 호는 벽암(碧巖), 성은 김(金). 1575년(선조 8) 12월23일 보은에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0세에 화산암(華山庵)의 설묵(雪黙)에게 공부했으며, 1588년(선조 21) 스님이 되었다. 부휴 선수(浮休善修)를 만난 후 줄곧 선수를 따라 속리산· 덕유산· 가야산· 금강산 등을 유력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중에는 산중에 피란해서도 공부를 쉬지 않다가, 이듬해 사명 유정(四溟惟政)이 선수를 천거하여 전장의 진두에 나서게 하자 그는 선수를 대신해서 전장에 나가 명나라 장수와 함께 해전(海戰)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1624년(인조 2) 조정에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을 쌓게 했을 때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3년만에 완성했다. 이 공으로 보은천교원조 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 國一都大禪師)라는 호를 받았다. 그 뒤 화엄사를 수리하고 교화 활동에 힘쓰다가 병자호란을 만났다.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을 듣고 3천명의 승병을 모아 항마군(降魔軍)이라 이름한 뒤 스스로 승병장이 되어 북상했으나, 도중에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군을 중지했다. 그 후 법주사에 주석하며 전쟁 중에 의병의 본거지라고 불태워버린 법주사의 대웅보전, 팔상전, 원통전 등을 복원하여 법주사를 중창하고, 송광사· 해인사· 백운사(白雲寺)· 상선암(上仙庵)· 보개산(寶蓋山)· 묘향산 등으로 옮겨다니며 교화 활동을 펴다가 화엄사로 돌아가서 1660년(현종 1) 1월12일 나이 86세, 법랍 72년으로 입적했다. 법주사 입구 수정교 앞에 벽암대사비(지방유형문화재 71호)가 남아있어 대사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 비는 조선 현종(1664) 때 건립된 벽암대사의 비로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이오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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