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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0】15-1 북한산성 12성문 종주를 효자리 시구문이였던 서암문 부터 출발 합니다.

순도리(칠이) 2014. 4. 3. 05:30


▣ 북한산성 12성문 종주



 

    ○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규모는 길이 12.7km이며 내부 면적은 6.2㎢[약188만 평]에 달한다. 축성 이후 한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북한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일찍부터 있었다. 임진왜란과 봉자호란을 격으면서 한양 도성의 배후에 산선을 쌓아 국난에 대비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실제 축성은 1711년[숙종 37년]에야 이루어졌다. 이렇듯 진 논이 과정가는 달리, 성벽을 쌓는 데에는 단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아서 당시 축성 기술의 수준을 였볼수 있다. 성벽은 평지, 산지, 봉우리 등 지형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여 쌓았다. 계곡부는 온전한 높이로 쌓았고, 지형이 가파른곳은 1/2 혹은 1/4만 쌓거나 여장만 올린곳도 있다. 봉우리 정상부는 성벽을 아예 쌓지 않았는데, 그 길이는 4.3km이다. 성벽에는 주 출입시설로 대문 6곳, 보조 출입시설로 암문 8곳, 수문 2곳을 두었고, 성벽 바로 옆에는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 143곳이 있었다. 성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았던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주둔 부대인 유영[留營] 3곳, 이들 유영의 군사 지휘소인 장대 3곳을 두었다. 또한 군량을 비축하였던 창고 7곳, 승병이 주든하였던 승영사찰[僧營寺刹] 13곳이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성벽의 높이를 지형에 따라 달리 한점, 성문의 여장을 한 매의 돌로 만든점,옹성과 포루를 설치하지 않는 점, 이중성으로 축성한 점 등은 다른 산성과 구별되는 북한산성의 특징이다.

 

. 산행을 평상시 즐기던 분이라면 한번은 꿈을구었던 북한산성 12성문 종주길 일것입니다.

그래서 전저는 늘 함께 산행을 하던 지인1명과 함께 효자리에서 종주 산행을 시작 합니다..

참고로 12성문중 대서문은 빠졌습니다. 이유는 마지막 포스팅에 올라 갑니다..

 서암문 0.6km 먼저 서암문으로 출발 합니다.. 

 

 

 

 

 

 

 

    ○ 서암문[西暗門]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중 하나이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였으며,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할용됐다. 주로 적의 공격이 에상되는 추약한 지점에 설치 하였다. 서암문도 창릉천에서 쉽게 오를수 있는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를 마련하지 않았다.대부분의 암문 출입구가 네모난 현테를 보이는데 서암문은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 형태를 띠고 있다. 문 내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지도릿 돌과, 장군목 이라는 빗장을 건너 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서암문의 주변은 지형이 낮고 험하지 않아 취약지대에 속했다. 이를 감안해 다른 암문에 비해 성벽을 높게 쌓았다. 또한 성문과 연결된 성벽을 ㄱ자 모양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겨할수 있도록 했다.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屍身]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렀다.

 

. 서암문 위치에 안내문이다.

효자리 0.6km, 원효봉 1km 지점입니다. 

 

 

 

 

 

 

 

. 원효암 [元曉庵]

대한불교 태고종에 속한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좌선하면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숙종 때 승병장 성능[聖能]이 원효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원효암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 뒤 북한산성을 지키는 승병이 머무르는 사찰로 전승되었으며,

1734년[영조 10] 2월에 실화[失火]로 불타버린 뒤 곧바로 중건에 착수하였고,

1938년에 주지 영운[泳雲]과 그의 제자들이 법당을 중건하였다.

6,25 때 다시 불탄 뒤 비구니 월해[月海]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원효봉 [元曉峰]

지명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효암은 신라시대 원효[元曉] 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다.

원효봉 능선은 북문→염초봉으로 이어져 백운대로 향한다.

효자동→시구문[서암문]→원효암→원효봉까지 산행코스는 1.6㎞ 거리에 위치한다

서암문 1km. 북문 02km 지점입니다..

 

 

 

 

 

 

 

    ○ 북문[北門]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해발 43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형태를 보이는 안부[鮟部] 지점에 자리한다. 주변에 상운사와 흔련도감 유영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훈련도감 유영과 상운사에서 북문 지역의 수비와 관리를 맡은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산성에는 대서문,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중성문, 북문 등의 6개의 대문이 있으며, 큰길은 “대서문↔중성문↔대남문, 대성문”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였다. 대문 중 북문과 대동문은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는 한양 도성과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문으로서 북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던 것은 북문만이 “대[大]”자를 붙이지 않은 사실로도 알수 있다. 실제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를 보면 북문에만 도로망이 연결돼있지 않다. 성문은 석축기단 부분인 육축부[陸築部], 그 위에 올린 문루[門樓], 출입을위한 개구부[開口部], 출입을통제하기 위한 문짝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북문에는 문루와 문짝이 없는 산태로 육축부와 개구부만이 남아있다.문루 자리에는 초석만이 있으며, 개구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 돌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북한산성의 대문이 완성된 때는 1711년[숙종 37]인데, 30여 년 후에 간행된 『북한지』에는 북문의 문루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를 근거로 18세기 전기에 이미 문루가 없어졌으며,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북문에는 문루 자리로 보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물루는 없는 특이해 보이는 대문이다.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는 금년들어 처음으로 5번째주 일요일이 잇는 날로써 별다른 산행 일정이 없어

몇년전에 종주 하였던 산성 12성문 종주를 준비해 봅니다. 모두 12성문을 6번에 거쳐 모든 사진들오르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장씩 들러 보시면 무도 종주 하는느낌을 얻을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북문까지 이며 다음 포스팅은 2번째로 용암문 까지 준비 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운동 암문 까지는 1.5km 지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