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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송강이 사촌 김인제[沙村 金允悌]선생을 만나 공부하던 환벽당[環碧堂]

순도리(칠이) 2012. 6. 27. 09:17


▣ 환벽당[環碧堂]



 

 




    ○ 환벽당[環碧堂]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며, 당호는 신잠[申潛]이 지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林億齡],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환벽당 주인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 그가 낮잠을 자다 바로 옆 연못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꾼 후 달려가보니, 정철이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옛날 화장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 환벽당에서 내려다본 정원의 풍경들 입니다.

여사롭지 않게 보이는 배룡나무[백일홍] 수령이 많이 되어 보인다.

 


 

. 정문옆 으로는 건물은 옛건물 그대로 보존되 있으며

 내부 시설은 현대식 화장실 입니다.

 


 

. 사촌 김인제[沙村 金允悌]선생이 나주목사로 있다

고향에 돌아와 벽간당[碧澗堂]에 거처하며

따로 환벽당[環碧堂]을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으로 지금은

마을분들이 휴양 공간으로도 사용하는것 같았습니다..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쓴 판액 아마도 조선후기에 쓴것으로 보여진다... [우암 선생은 조선후기 인물이다.]

 


 

. 임억령[林億齡],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걸려 있다. 당시 함께 교유 하던 시인분들이다.

 


 

. 사촌 김인제[沙村 金允悌]의 환벽당이 광산김씨의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지금 현재 영일[迎日] 정씨 문중[정일택]에서 관리하며 이분들 중에 문중이 있는듯 하더군요..[관라인]

 


 

. 사진 좌축으로는 작은 연못이 있는대 사촌 김인제[沙村 金允悌]선생이

잠결에 꾸었던 꿈속에 연못에서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는

바로뒤 제자 송강 정철[松江 鄭澈]선생을 만났다 한다.

 


 

. 연대를 보면 당시에 제일 먼져 환벽당을 지었을것이며. 식영정. 면앙정.소쇄원.등을 보면

누각에 방을 한칸으로 만들었지만 환벽당만이 두칸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아마도 주변에서 문학인들이 자주 찾아 오는것을 대비하여 두칸으로 만들어 지지 않았을까? 보여진다.

 


 

. 환벽당 또한 이번에도 관람을 마치고 내려서면서 계단으로 바라봅니다.

 


 

. 무등산 역사길 이란 이정표와 함께 만들어 놓은 환벽당 앞에 있었다. [아래 비문을 보면]

 

"짝 맞는 늙은 솔일랑 조대[釣臺]에 세워 두고

그아래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던져 두니

홍료화 백빈주[紅蓼花 白蘋洲] 어느사이 지났길래

환벽당 용[環碧堂 龍]의 소가 뱃머리에 닿았구나."

--- 성산 별곡 중에서 ---

 

조대[釣臺] : 낙시대

홍료화 백빈주[紅蓼花 白蘋洲] : 붉은 여귀꽃 흰 마름꽃이 피어있는 작은섬.

[백빈주는 흰색 가구리밥 풀꽃을 말한다.]

 

--- 환벽당[環碧堂] 이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