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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27] 고양향교『高陽鄕校』

순도리(칠이) 2010. 6. 28. 10:28

◎ [10.06.27] 고양 향교를 찾아서



        ○ 고양향교[高陽鄕校] 문화재자료 제69호 [고양시] 종 목 : 문화재자료 제69호 (고양시) 명 칭 : 고양향교 [高陽鄕校] 분 류 : 유적건조물.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지정일 1985.09.20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6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처음 지었으며, 이후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만들었고, 그 외 건물들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고 한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사 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뒤쪽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전사청은 서무 뒤쪽에 자리하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교관이 머물던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전문 설명 이 향교는 조선 숙종(肅宗) 때 뛰어난 유학자들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경사진 언덕에 자리를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로 이루어지는 강학 공간을 전면에, 그리고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무)로 이루어지는 제향 공간을 후면에 배치한 소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수법을 따르고 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內三門) 등은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수법을 보여 주며, 여러 차례의 보수가 이루어졌고 명륜당, 전사청(典祀廳), 외삼문 등은 한국 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84년에 신축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강당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중앙의 3칸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교생들이 모여 앉아 공부를 하던 곳이었고 양측 각 한 칸씩의 방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 교생들을 가르치던 교관(敎官)이 기거하던 곳이다. 명륜당의 양측에 있는 동재와 서재는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을 하던 곳으로 당시 통학 거리가 멀거나 이 곳에 기거하기를 원하던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를 하던 건물이다. 대성전은 중국의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비롯한 5성(五聖)·정자(程子)·주선(朱善)·고순(固順)등 송조6현(宋朝六賢) 및 우리나라 설총(薛聰)·안향(安珦)을 비롯한 18현(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현재의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의 위패만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전면을 퇴간으로 구성하여 제향의 기능을 원활하게 유도하였으며, 기둥 머리에는 보 방향으로 촛가지가 놓인 초익공 형식의 공포 구성을 이루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처마는 서까래 위에 각진 부연(浮椽)을 덧달아 놓은 겹처마로 구성되었다. 서무의 뒤쪽으로 전사청이 비스듬하게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제례 때 전사관이 집무하면서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점검하는 곳으로서 현재 이 곳 향교에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고양군의 유림에서 봄·가을에 공자를 제사 지내는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