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장소 : 경남 통영시 사량면에 있는 산
◎ 산행일자 : 2010년 03월 07일[일요일]
◎ 함께한이 : 본인외 3명 [개인 산행]
◎ 움직임로 : 내지항[0.15] → 금복재[0.75] → 지리산[1.3] → 달바위[1.2] →
가마봉.항봉[0.7] → 옥녀봉[4] → 대항 항
《총 8.1KM 4시간 30분 소요》
사량도『蛇梁島』[뱀사(蛇),물결량(梁)]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간지점에 동쪽으로 길게 뻗어 서로 마주 보는
사량도의 두섬중 <윗섬>을 상도라고 한다.
상도에는 진촌.옥동 등 7개의 행정마을이 있다.
주민들 대부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섬마을 특유의 인심이 후하다.
섬 동쪽에는 전국 100대 명산인 지리산과 옥녀봉의 능선이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수우도, 북쪽으로 삼천포와, 고성 지역이 보이고
남쪽으로 아담한 대섬(죽도)뒤로 욕지도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 지리산에서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등산코스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기암절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섬과 바다와 모험,
낭만을 함께 즐기기 위해 전국의 많은 관광객이 상도를 찾고 있다.
지역 유래
두 사량도 가운데 서북쪽 위편에 위치해 있는 섬에서 유래한 토박이지명인
“웃사량섬‘의 한자지명. 조선 초기 원래의 지명은 ’상박도‘였다.
사량면 : 사량면은 통영시의 가장 서쪽 해역에 위치한 사량도 및
수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지역이다. 사량도의 옛 섬이름은 박도였으며,
고려시대에 박도구당소가 있어 봄. 가을로 관할 고성수령이 남해의 호국신에게
남쪽변방의 보전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를 지냈었다.
조선초기 이 박도는 인접한 구량량만호진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정박처가 되었으며,
섬에 영전을 일구어 병사들이 내왕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진영을 이곳 섬으로 옮겨 사량만호진이 설치되고
성종 21년(1490) 사량진성을 축성하여 비로소 진영의 위용을 갖추었다.
사량진은 임진왜란 때에 호남과 영남 해역을 잇는 조선수군의 중요 거점이었으며,
그후 통제영이 설치된 이래 통영군창둔전과 통영둔우의 방목처와 더불어
거북배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에 장졸 합 216명 규모의 병력이 상주하며
이곳 해역을 지켰다.
행정구획상으로 사량면 지역은 조선초기 고성현 서하리,
그리고 후기에는 고성현 하일면에 각각 속했다.
그러다가 광무 4년(1900) 이 고장이 고성군에서 진남군으로 분군되면서 섬이름
‘사량도’를 따서 진남군 사량면 그리고 1909년 용남면 사량면이라 칭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 지방핸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 사량면과
인접한 원삼면 (지금의 욕지면 지역)을 통합하여
‘원삼면’의 ‘원’자와 ‘사량면’의 ‘량’자를 따서 통영군 원량면으로 개칭했다.
광복 후 1955년 원량면을 분면하여 옛 원삼면 지역은 욕지면,
그리고 옛 사량면 지역은 다시 종전의 사량면으로 구획되고 최근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의 통합에 따라 통영시 사량면이 되었다.
‘사량’은 크고 작은 두 섬으로 이루어진 ‘사량도’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조선초기의 사량도 지명은 ‘박도’였으며,
두 섬은 ‘상박도’와 ‘하박도’, 이를 아울러 일명 ‘상하박도’라 칭했다.
한편 여기 두 섬 사이를 가로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것에서 유래하여 이 해협을 사량이라 일컬었는데, 당시의 수군진이 육지로부터
여기로 옮겨와 설치되면서 이 사량 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진영이 더욱 번성해지자 점차 원래의 섬이름인 ‘박도’보다는
‘사량진’. ‘사량’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군영의
이름이 섬지명으로 전용되어 보편적으로 ‘사량섬’. ‘사량도’라 칭하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즉 ‘사량’은 원래 두 섬 사이를 흐르는 해협을 일컬었던 옛 이름명에서 유래했다.
종래의 지명유래설에 의하면 이곳 옥녀봉에 얽힌 비련의 설화에서 연유되어 ‘사랑’이
‘사량’으로 변천되었다는 설과 섬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설,
그리고 섬의 형상이 뱀처럼 기다랗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민간어원설이 있다.
사량면은 본래 고성군 지역으로 사량도를 사량면이라 하여,
동변, 서변, 옥동, 내지, 돈지덕동, 읍호능랑, 외지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00년 (고종 광무 4년) 진남군에 편입되었다가(1909년 진남군을 용남군으로 개정)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합하여 통영군을 설치하면서
원삼면의 연화, 두미, 노대, 읍동, 옥동, 청사, 도동, 덕동, 유동을 병합하여 원삼과 사량의
이름을 따서 사량면이라 하여 금평, 돈지, 읍덕, 양지, 연화, 두미, 노대, 동항서산의
9개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55년 9월 1일 법률 제371호에 의하여
금평, 돈지, 읍덕, 양지의 4개리를 자라서 도로 사량면으로 고쳤다.
동쪽에는 바다 건너 산양면, 남쪽에는 바다 건너 욕지면, 서쪽에는 바다 건너
남해군 삼동면과 창선면 북쪽에는 바다 건너 고성군 하일, 하이, 삼산의 3면이 자리하고 있다.
하도와 사도를 합쳐서 사량면이라 일컫게 될 때,
섬의 형상이 긴뱀형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랐다고 한다.
* 조선초기 : 고성현 서하리 박도
* 조선후기 : 고성현 하일면 사량도
* 1900년 : 진남군 사량면
* 1909년 : 용남군 원량면
* 1914년 : 통영군 원량면
* 1934년 : 통영군 원량면 사량출장소
* 1955년 : 통영군 사량면
* 1995년 : 통영시 사량면


우리는 이곳을 노원역에서[관광버스] 아침 6시 출발 하여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사천IC를 거쳐 삼천포항에
오전 11시 도착 하여 배를 이용 40분 이동 하니 내지항에 도착 산행 시작 하여 금복고개로 지리산 을 항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에는 비가 조금와서 인지 등산로가 질척거리는 등로를 오르다가 바위길을 오르니 미끄러워 조심 스럽게
오르기를 1시간 30분여 만에 정상 도착 하였습니다. 많으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정상적인 진행을 어렵기만 하여
서둘러 점심 식사를 30분 만에 마치고 다시 열심히 산행 시작 합니다. 우리는 타(모집 산악회)를 이용한지라
그곳 일정에 마추어야 하기에 바쁘게 음직일수 밖에 없어 서둘러 달바위 지나 삼거리 도착 하니 산행대장이
가로 막고 있더군요 .이곳에서 하산 하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산 식사와 하산주를 포기 할것이니 완주를
선택 하기로 약속을 하고 통과 정말 시간이 촉박 하였습니다. 이곳 부터는 조금 험한 코스라 다른 산행팀들로
아주 많이 정채 되더군요. 그러나 양의 구하여 배시간 마추기 위해 서둘러 통과 가마봉.항봉 지나니 완전 정채.
통과 하니 옥녀봉을 지나게 됬습니다. 다시 시간을 책크 하니 인도 도착 하니 오후 4시 배시간은 4시 30분이라
우리는 시간을 마추어 하산 하였습니다 ...
오늘 산행은 모집 산악회 따라온 것이라 온통 바쁘기만 하여 모든지 "빨리 빨리"..참으로 대단합니다.
다시 서울 노원역에 도착 하니 오후 10시30분 이더군요 이렇게 빨리 도착 할수가...???
여상 하지 못한 시간에 좋은 산행지 산행을 하였구요 저는 옛적에 댕겨온 산행지를 다시 할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구요 "가마봉과 항봉" 통과 할때는 사디리와 로프로 잘 안내되 있지만 공포심이 아주 약하신
분들은 이곳을 피하는것이 좋을듯 하며 산행 시간을 여유로 간다면 즐겁게 할수 있는 산행지 입니다...
감사 하고 고맙고 수고 하셨습니다.
== 집에서 산행 정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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