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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당 선바위

◈ Climbing [예전]/◈ 서울시 지역

by 순도리(칠이) 2009. 2. 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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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禪岩)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아파트군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만나는데 그중에 하나가 선바위다. 무속을 믿지 않는 내가 보아도 묘하게 생겼다.

 

신성한 대상물이 되고 있는 바위로, 마치 중이 장삼-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중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이와같이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석불님ㆍ관세음보살님, 또 이 두 개의 바위를 양주(兩主)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바위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과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임신을 원하는 부인들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남아있다. 이를 붙임바위라고 한다.

또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천도할 곳을 찾다가 현재의 서울을 찾아냈으나 국운이 500년밖에 유지 못 할 것을 알게 되자

이 선바위에서 천일기도를 하였다고 하며 그 뒤부터 이 바위가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朝鮮) 태조(太祖)가 성(城)을 쌓을 때 문신(文臣) 정도전(鄭道傳)과 왕사(王師)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하느냐 성 밖으로 하느냐로 크게 의견 대립을 보였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만일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문신들은 힘을 못쓰고,

성 밖에 두면 반대로 승려가 힘을 못쓰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태조는 결정을 미루고 돌아와 잠을 자는데 꿈에 4월인데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낮에 회의하던 곳이 보이고 안쪽으로 들여쌓은 쪽의 눈이 녹아 버렸다.

 태조는 이것이 하늘의 계시임을 알고 정도전의 주장대로 선바위를 성밖으로 두게하자

무학대사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이제 중들은 선비 책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양도성(서울성곽)을 설성(雪城)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祭日)은 개인별로 와서 치성을 드리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불교 신자들은 4월 초파일, 7월 칠석날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고 하며,

영산제(靈山祭) 때에는 여러 스님과 신도들이 이곳에 와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있는 자연석으로서, 직접적인 신앙대상물은

아니지만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 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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